이명박.손학규.홍준표
99년 낭인생활 함께 해
“형님.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제가 당 대표가 되었다니까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큰 표 차로 이겨 기뻤습니다. 그게 다 국민의 마음입니다.”
홍준표 신임 한나라당 대표가 8일 취임 인사차 국회 민주당 대표실을 찾아 손학규 대표와 주고받은 덕담이다. 홍 대표는 손 대표를 두 차례나 와락 껴안기도 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서로 물고 뜯는 여야 사령탑이 아니라 마치 한 지붕 밑의 가족처럼 따뜻함이 흘렀다.
홍준표 의원이 집권당의 새 대표가 되면서 이른바 ‘한국을 이끄는 워싱턴 3인방’이 화제다. 이들 두 사람과 이명박 대통령이 공교롭게도 1999년 무렵 워싱턴에서 1년가량 함께 정치낭인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하자 조지워싱턴 대 객원연구원으로 머물렀다. 홍준표 대표도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사퇴하고 워싱턴 인터내셔널센터 객원연구원으로 지냈다. 손학규 대표는 경기도 지사 낙선으로 역시 조지워싱턴 대 시거아시아연구센터의 객원연구원 자격으로 워싱턴에 체류했다. ‘동병상련’의 세 사람은 ‘유배지’에서 종종 모여 밥도 먹고 술잔도 돌렸다. MB는 맥클린에서 부인 김윤옥 여사와 비교적 여유있는 생활을 했으나 손, 홍 대표는 단칸 아파트에서 처음에는 라면 박스를 엎어놓고 식사를 할 정도였다.
홍 대표는 자신의 자서전 <변방>에서 “무작정 미국 워싱턴으로 갔는데, 이곳에서 이명박 선배를 만나 워싱턴 생활을 순탄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고 술회했다. 이 대통령은 고려대 후배이기도 한 홍 대표의 집 얻는 걸 도와주고 운전면허 취득 등 여러 면에서 뒤를 봐주었다. 두 사람은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됐다.
홍 대표는 손 대표와도 각별한 정을 쌓았다. 손 대표는 골프를 치지 않는 관계로 두 사람은 가벼운 술자리를 통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워싱턴의 지인들은 “당시 MB보다는 홍과 손 대표가 더 가깝게 지냈다”고 회고한다. MB와 손 대표는 체질상 거리감이 있었다. 홍 대표가 “셋이 밥 한번 같이 먹자”고 제안하면 MB는 농담조로 “됐다 마. 경기(고) 뺀질이하고 니나(너나) 밥 무라(먹어라)”라고 답했다고 한다. 손 대표는 “그냥 시골 고대생끼리 만나라”라고 웃어넘겼다. 너스레 좋은 홍 대표는 두 사람 사이에서 거간 노릇도 했다.
한국으로 귀국한 세 사람중 MB는 서울시장을 거쳐 현직 대통령으로, 손 대표는 경기지사를 거쳐 민주당의 수장이 됐다. 막내였던 홍 대표는 집권여당 대표로 우뚝 올라섰다. 워싱턴 오리알 3인방이 대한민국을 이끌고 있는 셈이다.
세 사람의 남다른 인연은 손 대표가 민주당으로 말을 갈아타면서 이제는 서로를 제쳐야만 살 수 있는 관계로 변모했다.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손 대표는 MB를 끌어내려야 하며 손과 홍 대표도 양보할 수 없는 승부를 벌여야 한다. MB 역시 홍 대표를 견제하는 한편 손 대표를 압박해야만 하는 숙명적 관계가 됐다.
워싱턴에서 맺은 ‘형님, 동생’ 관계가 이젠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고 상대를 꺾어야만 하는 경쟁자가 된 것이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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