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운
인랜드 지국장
“하우스 마켓이 바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요즈음, 증권 쪽으로 투자하시는 것이 바람직하시고요, 투자하신 주식 값이 오르시면 배당금도 따라서 오르시잖아요?“ 어느 투자설명회에서 들은 말이다. 증권분야에 꽤 실력이 있어 보이는 한 젊은 강사가 강의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마구잡이 존댓말을 써대는 바람에 정작 강의내용을 놓치고 말았다.
“택스 포함 46불이 되시고요, 60불 받으셨구요, 거스름 돈은 14불이 되시겠습니다.” 며칠 전 타운의 한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계산대 앞에 섰는데 한 젊은 여자 종업원의 예의 바르고 깍듯한 태도로 이렇게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말솜씨가 영 불편해서 방금 먹었던 음식이 제대로 소화가 될 것 같지 않았다.
“물론 실력도 실력이지만 저의 학원에서는 가르치는 스킬이 계신 분을 강사로 채용하고 있으십니다.” 운전 중 라디오를 켰다가 우연히 듣게 된 진학 상담 프로그램에서 한 학원의 상담원이 자기 학원의 선생님들은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법이 특별하다고 선전하는 말이었다.
“그린 근처에서 이렇게 로프트가 높은 클럽으로 퍼팅하듯 하시면 볼이 홀을 향하여 똑바로 굴러가실 수 있으세요.” LA에서 방영되는 어느 한국어 TV 방송의 골프 레슨 프로그램에서 유명 여자 프로골퍼가 시범을 보이면서 하는 말이었다. 이들의 억양이나 경어법의 사회적 기능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듯한 유창한 말솜씨로 보아, 모국어가 서툰 1.5세 또는 2세들은 아닌 것이 분명해 보였다.
최근 한 인기 TV 드라마의 장면에서 샤핑채널 상담역으로 나오는 유명 탤런트가 고객에게 “배달된 물건이 파손되셨다고요?”라고 말하는 대사가 나오는 것을 들었다. 작가의 실수였을까? 아니면 경어법을 잘못 알고 사용한 탤런트의 즉흥대사였을까?
본국의 TV 드라마나 연예 프로그램에 나오는 연예인, 탤런트들의 말투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다 보면 이런 엉터리 높임말이 마구잡이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이런 어법은 특히 젊은 층에 널리 보편화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며 이런 말투를 예의 바르고 교양 있는 사람들의 어법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경어법은 의인화하여 말하는 몇몇 특수한 용법을 제외하고는 그 높임의 대상은 사람이며 그 인물의 신분에 따라 알맞은 예우를 언어에 반영하여 존대하는 윤리규범 성격의 어법인데도 말이다. 올바른 모국어 사용은 한 민족의 정체성과 문화적 유산의 버팀목이다.
존대를 하지 않아도 될 경우에도 높임말을 쓰다 보니 말하는 자신을 스스로 존대하는가 하면, “주식 값은 오르시고, 공도 굴러가시고, 상품은 파손되시며, 스킬이 계시는” 등 사물이 존귀의 대상이 되는 엉터리 경어법이 범람하고 있는 현실이 된 것이다. 이 같은 생뚱맞은 높임말로 수천년의 역사를 통하여 이어온 우리의 경어법이 크게 위협받고 있는 현실에 대한 불편한 느낌을 다른 이들도 갖고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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