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로 인한 경기 침체가 서민들의 생활을 옥죄면서 사회 경제적 불만을 표출하는 시위가 글로벌 현상으로 번지고 있다.
8월 초 영국을 강타했던 폭동을 비롯해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긴축반대 시위, 아직 한창 진행 중인 미국 월가 점령 시위 등이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이들의 성격과 배경을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힘들지만 그 이면에는 살기 힘들어진 젊은층, 서민층의 분노가 자리잡고 있다.
노동자들의 조직화된 파업이나 시위를 제외하고 영국 폭동이나 미국 월가 시위 등은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급조된 분노의 표출에 가깝다.
단발성 외침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사회 깊숙이 내재된 불만에 대해 원인을 찾아 제때 처방을 내놓지 않을 경우 상처는 곪을 대로 곪아 결국 터질 수 밖에 없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월가 점령 시위 어디로 가나 = 지난달 17일 1천여명이 뉴욕 로어 맨해튼에 모인 가운데 `월가를 피고인석에 앉히자’는 집단 행동이 처음 벌어졌다.
이어 지난달 24일에는 수백명이 거리시위를 벌였고 경찰은 최루액을 뿌리고 그물과 수갑 등을 동원해 강제 진압했다.
경찰의 과잉진압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시위는 과격성을 보였다.
맨해튼에서 출발한 시위는 동부 보스턴, 로드아일랜드의 프로비던스, 서부의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등에 이어 캐나다, 멕시코 등 외국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시위가 월가에서 시작된 것은 금융위기에 대한 금융계의 책임을 분명히하기 위한 취지였다.
금융위기 이후 금융계는 여전히 떵떵거리며 살고 있지만 경기침체로 인해 일자리를 찾지 못한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고 서민들의 삶은 갈수록 각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향후 시위가 향후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갈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구심점과 목표의식이 결여돼 지속성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라는 지적이 있는 반면 좌파들의 `티 파티’로 승화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월가의 탐욕을 폭로하고 금융당국의 무능을 질타하기 위해 시작된 시위에는 교육이나 의료, 사형제도, 마약 등 다양한 목소리가 가세하고 있다.
BBC는 "참가자들의 동기나 요구가 통일돼 있지 않다"면서 "그러나 미국 경제가 한차례 침체를 겪은 뒤 또 다시 침체가 올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는 상황에서 이번 시위는 미국 사회의 불평등에 관한 불만에 다가가고 있다"고 풀이했다.
BBC는 "경제적 어려움을 보고 자란 젊은이들이 사회의 1%에게 보상이 주어지는 듯한 시스템에 분노하고 있다"면서 "그들은 자신들이 99%라고 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방송은 즉흥적으로 출발했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월가 시위가 미국 정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좌파를 위한 `티 파티’로 바뀔지도 모른다면서 시위 참가자들의 열정이 가을의 햇살과 함께 사라져 버리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월가 시위가 벌어지기 하루 전날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은 수년째 이어지는 경기침체가 폭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지만 영국처럼 일시에 폭동으로 점화될 조짐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 방화에 약탈…무법천지 영국 폭동 = 지난 8월 6일부터 9일까지 영국을 뒤흔든 폭동에는 10대 초중반의 청소년들과 20~30대 젊은이들이 주축이 됐다.
가담자들의 피부색이나 출신 배경은 다양했고 특별한 이유없이 주변의 무질서와 혼란에 뛰어든 젊은 여성들도 있었다.
이 사건은 영국 사회 저변에 깔려있던 무법천지의 폭력성을 여실히 보여줬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줬다.
2012년 런던올림픽을 채 1년도 남겨두지 않은 때라 안전 올림픽에 대한 우려도 대두했다.
폭동 이후 원인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시도되고 있지만 영국 사회는 여전히 `도대체 왜?’라는 의문부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런던 폭동의 시발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홋스퍼의 홈 경기장 인근 도로에서 네 자녀를 둔 흑인 남성이 택시를 타고 가다가 경찰 검문을 받았고 이 과정에서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
이에 대한 항의 시위가 밤새 경찰 차량 및 건물 방화로 이어졌고 이틀째인 7일에는 런던은 물론 잉글랜드 중부 버밍엄, 리버풀, 맨체스터, 브리스톨 등으로 급속히 확산됐다.
무분별한 약탈과 방화, 폭력으로 모두 5명이 사망했다.
폭동이 끝난 지 두 달이 됐지만 정부의 강경 대응 방침으로 이후 비슷한 시위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감쪽같이 자취를 감췄다.
폭동의 원인을 놓고 보수당은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을 폭행하고 물품을 빼앗는가 하면 상가의 출입문을 부수고, 건물과 차량에 방화하고 약탈하는 행위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범죄행위일 뿐이라며 폭력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연설에서 "붕괴된 윤리를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면서 "아버지 없는 어린이, 훈육 없는 학교, 조정자가 없는 지역사회 등의 문제를 개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가담자를 `시위대가 아닌 범죄자’라고 규정하면서 거리 질서 회복을 위한 강경대책이 줄을 이었고 반사회적 범죄자에 대해 정부가 지원하는 임대주택 입주 자격을 박탈하는 등의 조치도 잇따랐다.
그러나 노동당은 청년 실업률 상승과 복지혜택 축소 등 보수당 정부가 지난해 5월 이후 강도 높게 추진해온 긴축 정책이 폭동의 배경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이 무차별 방화와 상가 약탈 등 폭력적인 모습으로 표출됐지만 이는 군중심리와 우발적인 것이지 폭력성만을 부각시키면 진단과 처방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11월 영국의 대학생들이 등록금을 3배로 인상키로 한 정부 정책에 반발해 정부 청사를 공격하고 찰스 왕세자 부부가 탄 차량에 테러를 가하는 등 과격한 방식으로 불만을 표출한 것도 이번 사건과 같은 맥락에서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당의 에드 밀리반드 당수는 "정치인들이 비난하는 데에만 열중할 것이 아니라 젊은이들에게 보다 많은 기회를 줘야 한다"면서 젊은이들이 자신의 미래가 있고 보다 나은 삶을 꾸릴 기회가 있다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강조했다.
◇ "못 살겠다" 유로존 시위ㆍ파업 몸살 = 유로화를 사용하는 유로존, 특히 국가 부채 위기가 심각한 그리스, 이탈리아 등에서는 파업과 시위가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지고 있다.
이들 국가의 파업과 시위는 정부의 긴축 정책으로 인해 일자리가 줄어들고 복지혜택이 감소하면서 과격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긴축에 반대하는 그리스 중앙부처 공무원들은 최근 구제금융 조건 이행을 점검하는 국제 실사단의 평가 회의를 막기 위해 청사 사무실을 점거해 시위를 벌였다.
그리스의 실업률은 고강도 긴축정책 속에 16%로 높아졌고, 15~24세 청년실업률은 40.1%에 달한다. 10명 중 4명이 실업자인 셈이다.
대학을 졸업한 후 정규직을 찾지 못해 슈퍼마켓 등에서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청년들도 수두룩하다.
그리스 전체 노동력의 4분의 1에 달하는 공공부문은 재정 적자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모든 공무원의 급여가 지난해 연초 이래 약 20% 삭감됐다.
스페인의 경우 사회당 정부가 지난해 5월부터 재정 적자 감축을 위한 긴축 정책을 펴면서 고실업률과 물가상승의 직접적인 피해자들이라 할 수 있는 중산층 이하 서민들의 고통은 깊어지고 있다.
스페인의 실업률은 21%로 세계 최고 수준이며, 특히 청년 실업률은 45.7%로 청년 2명당 1명꼴로 실업자 신세다.
긴축 정책으로 재정 적자 감축 목표는 어느 정도 맞춰가고 있으나 민간소비가 위축되면서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고 그에 따라 중산층 이하의 삶의 질도 바닥으로 떨어졌다.
스페인 주요 노조들은 정부 재정 감축에 반대하며 파업을 무기로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지난 8월 중순에는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가톨릭 청년축제 참석차 스페인을 방문하는 데 드는 비용이 1억 유로나 된다면서 수천명의 시위대가 교황의 방문에 반대하는 거리행진을 벌였다.
유로존 3위 경제국인 이탈리아는 월수입 992 유로(약 149만 원) 이하의 빈곤계층이 전체 가정의 11%에 달하며, 전반적인 가계 경제 상황은 최근 3년간 지속적으로 나빠졌다.
30%에 달하는 청년실업률이 개선될 전망도 불투명해 고등교육을 받은 젊은 인력의 해외 유출도 가속화되고 있다.
이탈리아 최대 노조인 이탈리아노동연맹(CGIL)은 정부의 재정감축안이 서민들에게 부담을 전가하고 있다며 지난달 6일 항공편과 열차, 버스, 여객선 등 대중교통수단을 멈춰 세우는 총파업을 벌였다.
국가 부채 위기에 몰린 이들 유로존 국가들은 유럽연합이 요구하는 재정적자 비율 감축 등 고강도 긴축을 추진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긴축의 영향에 그대로 노출되는 서민들의 불만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런던=연합뉴스) 이성한 특파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