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입북→요덕 수용소 수감→행방묘연
북한 요덕수용소에 수감돼 있다 행방이 묘연해진 것으로 보도된 신숙자 씨와 두 딸의 구명 운동에 전직 내과 의사였던 한인이 뛰어들었다.
신 씨 세 모녀 구출을 위해 온라인 서명운동을 시작한 사람은 버지니아 게인스빌에 거주하는 박인영(61)씨. 그는 7일 기자회견을 자청, 자신이 신 씨 가족에게 관심을 갖게 된 동기를 설명하고 한인사회의 관심과 지원을 간절히 당부했다.
박 씨는 “공산주의와 북한에 대한 환상 때문에 1986년 신 씨(69)와 남편 오길남 박사(70), 그리고 두 딸이 북한에 들어갔다”며 “오 박사는 그후 동독으로 망명했지만 신 씨와 두 딸은 지금까지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했고 현재는 생사조차 모른다”고 말했다.
박 씨는 또 “1990년대 초 오 박사가 아내와 딸을 돌려달라는 내용으로 쓴 책을 읽은 뒤 관심을 갖게 됐다”며 “6.25 전쟁 후 비롯된 사상의 혼란, 생이별, 수용소의 비참한 삶 등 신씨 가족이 겪은 고통은 이산가족들이 당한 아픔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신 씨 가족의 비극은 2010년 2월 워싱턴 포스트에 보도된 바 있으며 최근 한국 언론의 조명을 받아 세간의 관심이 몰렸다. 신 씨의 고향인 한국 통영에서는 방수열 목사가 지난 5월부터 캠페인을 벌여 7만여 명의 서명을 받았다.
그러나 박 씨는 “통영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시작된 캠페인이다 보니 어려움이 많아 앞으로 미국 언론과 대학 내 한인학생회 모임, 한인교회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 서명을 받을 계획”이라며 “서명이 모아지면 반기문 UN 사무총장에게 신 씨 모녀의 구출을 호소하겠다”고 말했다.
박 씨가 목표로 하는 서명자는 최소한 100-200만명. 풀뿌리 운동인데다 아무런 조직도 없어 외롭고 힘든 작업이기는 하지만 바깥세상에서 누구도 돌보지 않는 딱한 가족을 위해 누군가 나서야 한다는 생각에 건강하지 않은 몸이지만 결심을 했다.
박 씨는 “신 씨는 남편이 돌아오지 않으면 자신과 딸들에게 극히 불리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오 박사의 망명을 종용했던 의로운 사람”이라며 “그가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 여사처럼 자유를 갈망하는 북한 주민의 상징이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오 박사는 독일이 통일되기 전 동독으로 가서 두 명의 한국인을 데리고 오라는 지령을 받았고 신 씨는 앞날이 양양한 젊은이들을 데리고 오는 것은 나도 공범을 만드는 것이라며 망명할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1976년 미국에 와 버지니아 블랙스버그 등에서 콩팥 전문 내과의사로 일한 박 씨는 2009년 은퇴했다.
온라인 서명은 시민운동을 위한 홈페이지 ‘www.change.org’에 들어가 ‘search petitions’ 란에 ‘shin sook ja’를 치고 오른쪽의 ‘search button’을 클릭한 후 신 씨 가족의 사진과 함께 나온 헤드라인을 다시 클릭하면 할 수 있다.
후원 문의 (571)222-7313,
(276)971- 7332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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