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아마르 카다피 얘기로 한동안 세상이 떠들썩했다. 8개월 내전 끝에 카다피가 마 침내 비참하게 최후를 맞았다는 소식이 전 해지자 그의 압제에 시달려온 리비아 국민 은 물론 온 지구촌이 들썩이는 분위기였다. 은닉해 있던 고향에서 탈출을 시도하다가 총상을 입고 반군에 붙잡힌 카다피는 압송 과정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 어이없게 횡사 하고 말았다. 27세 대위 때 쿠데타로 국가최 고지도자 자리에 올라 철권통치를 해온 지 42년만이다.
카다피는 처음 자기를 알아본 반군병사 에게“ 쏘지 말라, 원하는 것을 주겠다”며 목 숨을 구걸했다. 그는 악취가 진동하는 하수 구에 혼자 은신해 있다 잡혀 나왔다. 거의 반세기 동안 나는 새도 떨어뜨릴 것 같던 무소불위의 독재자가 어쩌다가 그처럼 처참 한 신세가 됐을까? 사람의 종말은 지위고하 를 막론하고 심는 대로 거둔다는 사실을 카 다피가 여실히 보여주었다.
인간은 세 가지 유형이 있다고 했다. 첫째 는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사람, 둘째는 세상에 있으나 마나한 사람, 셋째는 세상에 해악을 끼치는 사람이다. 세 번째 유형은 이 세상을 살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다. 살인범, 강간범, 강도범, 유괴범들과 남을 울리는 사기꾼들 이 이 유형에 속한다.
이들보다 더 나쁜 부류가 바로 카다피 같 은 사람들이다. 국민들에게 혹독한 고통을 주며 테러로 무고한 사람들을 살상한다. 히 틀러, 스탈린, 김정일 같은 사람들이 저지른 해악은 몇 세대 후까지 이어진다.
어떤 유형의 사람이 될 것인지에 대한 선 택은 전적으로 본인에게 달려있다. 그러나 본인이 스스로 어떤 형태의 사람인지를 객 관적으로 평가하기란 쉽지 않다. 자기가 어 떤 유형의 사람인지는 자기가 남기고 갈 빈 자리가 더 잘 말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날마다 힘써야 한다. 꼭 후대에 이름이 남을 거창한 일이 아니더라도 남에 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 면 그것이 곧 세상에 필요한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번뿐인 삶을 기왕이면 제대로 살아서 세상을 하직한 후 주위로부터 꼭 필요한 사 람이었다는 말을 듣는다면 성공적인 삶을 산 셈이다.
인터넷에서 좋은 글 하나가 눈에 띄었다. 어느 회사에 바보처럼 생긴, 그래서 동료들 이 있으나 마나하게 여기던 한 직원이 있었 다. 그는 후배들의 뒷치닥거리를 해주고, 아 무도 손 안대는 서류함을 정리하느라 날마 다 퇴근시간을 넘겼다.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쟁반에 여러 잔의 커피를 들고 다니면서“ 오후도 즐겁게 보내 세요”라고 인사하며 나눠줬다. 그 커피엔 설 탕 대신 그의 미소가 한 숟가락씩 들어 있 었다. 그러다가 그 직원이 부인의 병환으로 휴직하게 됐다.
동료들은 그가 휴직했다고 달라질 것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떠나고 며칠 지나자 그의 빈자리가 너무나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향긋한‘ 오후 커피’는 간 곳 없고, 휴지통에는 늘 휴지가 넘쳤으며, 책상마다 먼지가 수북하게 쌓였고, 캐비닛의 서류철도 순서가 뒤죽박죽이었다. 오래지 않 아 직원들은 짜증난 얼굴을 보였고, 서로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큰 소리로 다투는 일이 잦아졌다. 사무실에 감돌았던 화목한 분위기는 어느새 사라지 고 말았다.
어느 날 한 직원이 문득‘ 오후 커피’가 그 리워 휴직한 ‘바보’ 직원의 빈 책상에 갔다 가 작은 메모지 한 장에 눈길이 멈췄다. 거 기엔 “내가 편할 때는 누군가가 불편함을 견디고 있으며, 내가 조금 불편할 땐 누군가 가 편안할 것이다”라고 쓰여 있었다.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의 작가 레오 버 스카글리아가 자랄 때 아버지로부터 들었 다는 가르침이 떠오른다.“ 인간의 수명에는 한계가 있지만 배움에는 끝이 없다. 인간은 무엇을 배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카다피 가 섬김과 자기희생을 배웠더라면 적어도 개죽음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주영/ 뉴욕지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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