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헬리콥터 비행규제안 FAA 통과… 오랜 숙원 풀려
할리웃보울(사진)에서 음악회를 즐기고 있을 때 갑자기 분위기를 확 깨는 일은 두 가지, 누군가의 와인병이 넘어지면서 계단 아래로 굴러가는 소리와 머리 위로 요란한 엔진소리를 내면서 날아가는 헬리콥터의 출현이다.
와인병이 구르는 소리는 규제할 방법이 없지만, 콘서트가 열리는 시간에 헬리콥터의 비행을 규제하려는 시도는 오랜 노력 끝에 드디어 결실을 맺게 됐다. LA카운티 수퍼바이저 위원회는 지난 8일 연방 항공국(FAA)이 이 문제에 개입해 줄 것을 요청하는 안을 통과시켰다. 하워드 버만 주하원의원이 제안한 이 안은 비상사태를 제외하곤 주택가에서 헬리콥터 소음공해를 규제해 달라는 것이다.
할리웃보울 콘서트에 헬리콥터가 찬조 출연하는 일은 누구나 겪었을 정도로 악명 높다. 이 문제에 노이로제가 걸린 LA 필하모닉은 음악회가 열리는 밤마다 하늘로 라이트를 쏘아 올려 조종사들이 가까운 거리의 운행을 자제해 줄 것을 표시하고 있지만 거의 효과가 없다고 한다.
심지어 LA필은 4년째 봄마다 헬리콥터 조종사협회와 항공 관계자들을 보울로 초청, 오케스트라 리허설 도중 헬리콥터가 날아가는 실제상황을 연출함으로써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체험케 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별무효과라는 것이다.
데보라 보다 LA필 회장은 최근 LA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그야말로 소귀에 경 읽기”라고 통탄하고 “이 문제는 늘 있어 왔지만 요즘은 너무나 심해져서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하룻밤에도 4~5차례씩 일어나고 있으며 그 때마다 청중들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탄식과 저주를 보내고 있다”고 호소했다.
헬리콥터 소음은 단지 청중이 연주를 잘 듣지 못하는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더 심각한 것은 무대 위의 지휘자와 연주자들이 서로의 소리를 잘 듣지 못해 생기는 연주의 불균형으로, 최악의 경우 연주가 중단되는 일도 생긴다.
1985년 7월30일 말러의 8번 교향곡을 지휘하던 마이클 틸슨 토마스는 헬리콥터가 할리웃보울 상공을 선회하자 2악장에서 연주를 중지하고 무대 뒤로 퇴장했고, 30분 동안 계속된 경찰 헬리콥터의 수색이 끝난 후에야 다시 나와 연주를 재개했다. 올해도 LA타임스의 음악비평 기사는 ‘마치 전투기가 음악을 공격하는 것 같다’며 이 불청객으로 인한 괴로움을 몇 차례나 언급했었다.
보다 회장의 또 다른 우려는 만에 하나, 헬리콥터가 보울 상공에서 기계적 결함을 일으켜 추락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만 해도 아찔한 상황이다. 실제로 87년 한 조종사가 할리웃보울 상공을 날 때 기계 문제가 생겨 가까스로 유니버설 스튜디오 파킹랏에 불시착한 적이 있다고 고백했었다.
연방 상원은 최근 FAA가 뉴욕 롱아일랜드 상공에서 헬리콥터 소음을 규제하도록 하는 안을 통과시켰으며, 이에 따라 FAA는 조종사들과 커뮤니티가 서로의 이익과 안전을 해치지 않고 최소한의 소음을 내며 공존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할리웃보울에서 과연 평화롭게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날이 올지, 내년 여름 확인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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