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빙사절단으로 미국에 왔던 홍영식 선생의 직계후손인 홍석호 전 우정박물관장이 홍영식 선생과 함께 미국 땅을 밟았던 변수 선생의 묘지를 찾았다.
고종황제의 특명을 받고 10명으로 구성된 보빙사절단이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워싱턴에 도착한 해가 1883년. 워싱턴 방문이 이번이 처음인 홍영식의 증손인 홍 전 관장이 꼭 128년 만에 워싱턴을 찾은 셈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제주라도 준비할 걸...” 난감한 표정으로 아쉬운 표정을 짓는 홍 전 관장의 얼굴 위로 가을비가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다.
약 열흘 전부터 미주를 횡단하며 선조의 유적과 기록을 탐사하고 있는 홍 전 관장은 마지막 방문지인 워싱턴에 잠시 머물고 있다.
변수 선생이 공부한 메릴랜드대 농과대학도 방문했고 잠시 근무했던 농무부 건물도 들렀다. 현재 한국의 KBS 방송이 홍 전 관장의 미국 내 한인 선조들의 역사 탐사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기 위해 동행 취재하고 있고 기독교 방송 CBS-워싱턴도 그의 일정을 밀착 취재하고 있다.
홍영식(洪英植)은 구한말 개화파 정치인으로 갑신정변의 주역이었으며 한국 우편, 우표 제도의 선각자이다. 1884년 김옥균, 서재필, 박영효, 윤치호 등과 함께 갑신정변에 가담하였으나 실패하고 처형되었다.
변수(邊燧)는 1883년 조선의 친선사절단인 보빙사가 미국에 파견될 때, 민영익을 전권대신으로 홍영식, 유길준, 서광범 등과 함께 사절단의 한 사람으로 임명됐다. 1884년 김옥균 등 개화파와 함께 갑신정변을 주도하였으나 정변 실패로 일본으로 망명했다가 1886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1887년 메릴랜드 대학교에 입학해 농학을 전공하고 1891년 졸업한 한국인 최초의 미 대학 졸업생이다.
홍 전 관장은 “갑신정변의 실패로 개화의 꿈은 사라졌지만 이제 조국은 당시 젊은 외교관들이었던 그들의 희생과 헌신을 바탕으로 올림픽, 월드컵, 세계육상대회 등 모든 국제 행사들을 다 개최할 수 있는 자랑스런 나라가 되었다”며 선각자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한편 변수 선생 묘지 방문에 동행한 미주한인재단-워싱턴의 이은애 회장은 “미주 한인 자녀들을 위해 훌륭한 선조들의 역사를 돌아보는 일에 힘써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홍 전 관장에게 워싱턴한인사 영문판과 미주한인 이민100주년 기념사업회 자료 등을 전달하기도 한 이 회장은 “차세대 리더십 개발 등 중요한 사업이 많이 있지만 묻혀버린 선조들의 기록을 정리하고 보존하는 일도 역시 미래를 위해 지금 해둬야할 일이라고 본다”며 일일 유적 견학 프로그램 등 2세들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에 주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병한 기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