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목요일 병원에 가곤 한다. 주로 혈액검사를 하고 결과에 따라 의사선생님의 지시를 받는다. 출근에 지장을 받지 않으려고 아침 8시30분 첫 환자로 가기에 배려해주는 의사선생님께 감사하였다. 의사선생님은 멀리 오렌지카운티에서 엘에이 한인타운의 오피스로 오시므로 아침식사를 거르고 오신다고 간호사에게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뒤로는 닥터 오피스로 갈 때마다 따끈한 떡이나 갓 구운 빵 등을 아침대용으로 사가곤 하였다. 의사선생님뿐 아니라 간호사나 스태프 모든 분들이 좋아하셨다. 작은 마음 씀에 고마워하고 친절하게 대해주시니 병원 가는 일이 싫지 않았다.
그러다가 10월에 신장이식을 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고 큰 충격을 받았다. 나름 친하게 지냈다 생각했던 의사선생님과 간호사들에게 배반을 당한 기분이랄까? 아픈 결과가 전적으로 내 탓임에도 진단을 내린 의사의 잘못인양 화가 나는 거였다.
집에 와서 남편에게 이리저리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속상함이 불만으로 나오는 것이다. 그러다가 “아침마다 잘 봐달라고 떡도 사다주었는데 이런 진단을 하다니” 하는 유치한 말도 입에서 튀어나왔다. 본심은 아니었으나 어떻게든 화풀이를 해야 해서 뱉은 말이었다.
듣다 못한 남편이 한소리 한다. 아무리 떡을 사다준들 빵점 맞은 학생에게 100점 주는 선생이 있겠느냐고. 따질걸 따지라며 제대로 된 선생 만난 걸 감사하라고 브레이크를 건다. 그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남편 말이 맞긴 하다. 그래도 심정적으론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 남편이 야속했다. 뭐든 내 말에 태클을 거는 당신 탓에 병이 났다며 엉뚱한데 화살을 돌리고서야 분풀이는 끝이 났다.
나를 위해 이곳의 친구나 친지는 물론, 교인들과 문우들이 기도하고 있다. 한국의 가족이나 지인들도 마찬가지이다. 기도리스트에 나를 올려두고 기도중이라는데 정작 나 자신은 그러하지 못하다. 간절한 기도가 나오지 않고 그저 막막할 뿐이다. 새벽기도로 중보기도로 나를 돕는다니 주님이 귀찮아서라도 그들의 간청을 들어주시겠지 막연히 생각했다. 남편이 또 한마디 거든다.
하나님이 선물을 주려는데 옆에서 “얘에게 선물주라”고 아무리 졸라도 본인이 가만 있으면 주지 않는다고, 그러니 당사자가 기도해야 한다고… 하다못해 이 신장이 좋은지 저 콩팥이 좋은지 본인의 의사를 표시하라나? 마치 금도끼 은도끼를 정하는 나무꾼이 된듯하여 웃었다.
여고동창들이 위로차 다녀갔다. 지난번에 왔을 땐 서로 눈물범벅이 되어 울며 기도하더니 이번엔 남편의 어록을 되뇌이며 한바탕 웃고 갔다. 모자를 쓰고 온, 항암치료중인 친구도 웃다 갔으니 엔돌핀이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가면서 한마디씩 한다. “야! 일찍 죽지마라. 너 죽으면 우리 너무 심심하다” 소설을 쓰는 이 선생님도 “오래 살아서 재미있게 놉시다” 이러신다. 동화를 쓰는 정 선생님을 비롯한 ‘참 좋다’ 동인들은 “우린, 너를 죽어도 살릴 것이야” 이러면서 우셨다.
갚을 길 없는 사랑의 빚이 늘어간다. 나는 참 행복한 환자다. 종종 나의 삶에 균형감각을 일깨워주는 남편에게도 선물을 해야겠다. 휴대폰에 저장된 남편의 이름을 Wensoo(웬수)에서 Guardian Angel(수호천사)로 바꾸었다. 아프더니 철 났다.
이정아 / 재미수필문학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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