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버님의 소원은 삼촌을 찾는 것이었다. 지금은 90세가 되셨을 그분은 60년 동안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 가족 모두는 그분의 생사를 알고 싶어 한다.”
미국으로 이민 와 버지니아 알렉산드리아에서 델리를 운영했던 이산가족위원회의 민명기 회장은 한국전이 발발하기 전 가족과 함께 월남한 사람. 그는 한국 전쟁 때문에 가족들과 헤어지는 비극을 경험한 많은 실향민 가운데 한 명이다.
그러나 며칠 전 김정일이 사망하면서 이들에게 한가닥 희망이 생겼다. 김정일의 뒤를 이어 권력을 잡은 김정은 정권이 이들이 원하는 대로 북한 내 가족에 대한 정보 공유를 더 오픈할 것이라는 기대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실향민들은 수많은 주민들을 기아로 죽이고 핵을 개발한 김정일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한편으로는 크게 축하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한편으로는 주저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김정일의 사망 소식은 지역 한인들에게 우려의 소재가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갑작스런 정권 교체가 북한내 반란이나 동요를 유발하고 결국 주민들을 더 힘들게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통일은 모든 한인들의 마음속에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이 평화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워싱턴한인연합회의 준 윤 부회장은 짧은 시간 내에 북한이 개방되거나 가족 상봉이 이뤄질 것이라는 생각은 근거 없는 희망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4년 전 워싱턴 평통위원으로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깊은 충격을 받았다. 모든 것은 회색빛이었고 슬퍼보였다.
젊은 세대의 한인들에게 북한은 멀고 희미한 곳이다. 전화도 인터넷도 없고 다만 관제 언론만 있는 곳. 그들이 보도하는 것의 5-10%만 사실이라고 보면 된다.
“모든 것이 러시아처럼 이국적일 뿐입니다. 부모님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단지 강대국 간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한국이 사라질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침례교 목사인 영 임(30)씨의 말이다.
그러나 중년 이상, 특히 북한 출신의 한인들은 박해와 탈출, 이산의 상처가 그대로 있다. 어떤 이들은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에서 미군과 함께 전쟁도 치렀다. 또 많은 사람들은 부모 세대로부터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의 비극적인 얘기를 들었다.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 워싱턴지회의 함은선 수석부회장은 선교사였던 할아버지가 북한에서 체포된 후 지금까지 소식을 모르고 있다. 북한에서 성공한 사업가였던 부모님도 모든 것을 버리고 고향을 떠나야했다.
“난 애국자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한국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분단의 고통은 제 머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미 적십자사에서 국제서신교환 프로그램에서도 일하고 있는 함 씨의 말이다.
민명기 회장과 같이 이산의 아픔을 직접 경험한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게는 시간이 없다. 그래서 평양이 열릴 것이라는 희망은 쉽게 접을 수 없는 바람이다. 그러나 뭔가 빠른 시일 내에 변할 것이라는 기대도 안하고 있다. 스위스에서 공부한 20대 김정은 말고도 보수적인 가족들, 그리고 실권을 쥐고 있는 군부가 있다.
“가장 큰 소원이라면 북한 지도자들이 이산가족 상봉에 대해 좀 더 마음이 열리고 관대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다리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아요.” 민 회장의 말이다.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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