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공주, 그 연상하나로 우리는 이미 다섯 살 어린이로 되돌아간다. 지금도 바다 속 세상은 여전히 신비롭고 경외의 대상이다.
넓다고는 하지만 직접 밟을 수 없는 곳이기에 바다를 상상한다는 사실 하나로도 마냥 신난다. 어렸을 적에 할아버지가 숭어 낚시를 다녀와서 조락을 열어보면 죽어있는 숭어가 얼마나 불쌍했던지 용왕님께 죄를 지은 우리 집이 무사하지 못할까 봐서 끔찍했다.
“바다 속 물고기들이 뭍에 있는 나뭇잎을 모두 하나씩 물어도 나뭇잎이 부족하단다.” 할아버지가 하신 얘기가 지금도 생생하다.
판소리에 ‘서역’이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서쪽에 있는 곳을 지칭하니 자연스레 문물이 전래되었던 중국을 생각해 볼 수가 있겠으나 중국보다 더 멀리 있는 미지의 땅, 바다 건너 어느 곳엔가에 있을 유토피아를 그려 보는 것이 고달픈 삶에 잠시나마 등불이 되었을 것임이 자명하다.
그 상상의 끝자락에 용궁이 있는 듯하다. 용을 보았다는 것은 항상 이야기로만 들려오는 것도 그러려니와 그런 꿈이라도 없다면 얼마나 삶이 팍팍했을까,
그 유토피아에 다다르는 중간에 있는 용궁, 해초가 펄럭이고 형형색색 물고기들이 용궁주변에서 군무를 치듯 휩쓸리는 그곳으로 다가가면 그곳이 바다 속 깊고 깊은 곳이 아닌 또 하나의 별세계가 펼쳐진다.
꼬리 달고 장창을 세운 수문장을 지나면 넓지 않는 마당에 공기 줍기 하는 어린 물고기들의 왁자함과 용궁 귀퉁이 처마 밑에서 서너 명의 궁녀들이 숙덕거리는 모습이 스친다. 이윽고 방문이 열리면 독특한 복장들에 수염달린 만조백관이 도열해 있고, 그 맨 끝에 진맥을 하는 도사와 머리띠 동여매고 비스듬히 누워있는 용왕이 보인다. 모두 입으로는 근심걱정이나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다.
그 용왕의 용체에 이상이 생기니 용하다는 의관, 신농씨초약을 죄다 동원해 보지만 백약이 무효라 신통방통하다는 도승을 부르는디, 진맥을 해 본 도사는 뜬금없이 ‘진세산간의 토끼간’이 특효하오며, 즉시 회춘할 수 있다고 고지해 놓으니, ‘만승지의 위력으로 장생불사하려고 어린 남녀 5백 명을 허송삼삼했던 진시황도 수명장단은 재천이라’ 하였거늘, ‘바다 밖 밝은 세상의 백운청산에 정처 없고 시비 없이 다니는 토끼를 바다 속에 있는 내가 어찌 구하며, 차마 내가 죽는 것이 쉽지 토끼는 구할 길이 없으니 다른 처방을 알려주오’ 하면서 용왕이 흐느낀다.
백의재상들인들 별 수가 없고 서로 입으로만 충신 다툼하는 사이 하관말직 별주부인 자라가 주변에 하직 인사를 하고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는데 바깥 세상에서도 날짐승, 길짐승이 상좌다툼이 그치질 않으니, 이윽고 호랑이가 나타나자 벌써 평정이 되어버린다.
귀가 쫑긋 빨갛고 똥그란 눈의 토끼를 만나서 큰 벼슬을 주겠다고 꼬드겨서 용궁으로 데려 오는디, 속고 속이고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면서 임기응변과 신출귀몰 세태만상의 탐욕과 술수들을 소리와 풍자로 다스리니, 듣는 이에 따라서 주인공이 별주부가 되었다가 어느 마당에서는 토끼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스릴과 재치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수궁가를 ‘토끼전,’ ‘별주부전’으로 달리 부르기도 한다.
어디 수궁가 한번 들어 볼라요?
강창구
워싱턴 소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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