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8년 이주해 온 노명수씨
▶ ■ 기획 - 어바인 올드타이머
“당시 LA타임스나 뉴욕타임스에 어바인이 철저한 도시계획으로 미국에서 가장 좋은 도시로 만들 계획이라는 기사가 계속해서 나왔다. 한국에 있는 남은 가족들을 불러들이면서 어바인으로 이사를 하게 됐다.”
1978년 어바인으로 이주해 34년 동안 거주해 온 노명수(70·사진)씨의 말이다. 노씨는 “바쁜 이민생활에도 불구하고 자녀 셋을 성공적으로 키울 수 있는 것은 어바인에 정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셋째 딸은 우드브리지 고교에서 최초 동양인 치어리더였다”고 회상했다.
노씨에 따르면 당시 어바인 인구는 1만3,000명 정도가 고작이었다. 어바인 중앙을 통과하는 컬버 블러버드 최고속도가 55마일로 당시 고속도로 속도와 같았다. 지역 커뮤니티와 커뮤니티 사이는 대부분이 딸기밭과 오렌지밭으로, 지금처럼 인구수가 급격하게 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는 “이사 왔을 때 한인들이 채 10가정 정도였다”며 “1990년대 후반부터 언론이나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어바인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급격하게 인구수가 늘어났다”고 말했다.
한인들이 상가를 오픈하기에는 너무 힘든 조건들이 많이 있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중국인들이 많이 유입되면서 아시안들을 위한 마켓으로 ‘99센트 마트’가 처음으로 생겼다.
노씨는 “2000년도에 들어서면서 한인마켓을 열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노력했지만 당시는 전화 응답도 제대로 되지 않아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며 “시에 한인 정치력이 신장되면서 한인에 대한 태도가 눈에 다르게 바뀌고 한인이 비즈니스를 여는데 많이 쉬워졌다”고 설명했다.
<신정호 기자> jhshi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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