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동 선 <전 한인회 회장>
병원에 도착하니 이미 소식을 들은 낯익은 교우 몇 분이 와 있었다. 신부님은 임종을 앞둔 교우에게 병자성사로써, 그가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천상의 나라로 들어가도록 따뜻한 위로의 말씀을 해주시며, 마지막 가는길을 평화롭게 인도하고 계셨다.
무의식속에서 언어로써 표현되진 않았지만, 교우의 눈가에 맺힌 눈물이 사제에 대한 감사, 남겨지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 회한, 사랑을 고스란히 담아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교우가 생전에 가장 사랑하던 딸은 아버지와 마주 잡은 손의 온기로 가시는 길을 배웅하고, 한국에서 황망히 달려온 아들도 아버지의 힘겨운 마지막 숨소리에 할 말을 잊은 듯 침통하게 서 있었다.
50년 가까이 함께했던 교우의 아내는 남편이 내려놓고자 하는 이승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가볍게 해주려는 듯, 오열 대신 그동안의 수고로움에 감사했다는 말로 작별인사를 대신했다. 가족들만의 시간을 갖도록 배려하시는 신부님의 말씀을 따라, 그 자리에 있던 우리들도 한 사람씩 작별인사를 하고 병실을 나섰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 교우의 부음을 들었다. 우리가 병실을 떠나고 채 10분도 안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동안의 고단했던 삶의 끈을 놓았다고 했다, 그날 밤 돌아오는 차안에서 우리 부부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람들 앞에서는 좀처럼 눈물을 보이지 않는 아내의 눈가가 젖어 있었다.
십여년 전의 일이다. 아내의 음성이 흔들리고 있었다. ‘아빠가 돌아가셨대요’ 아내는 겉으로는 울지 않았으나 울며 말하고 있었다. 서둘러 아내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아버지의 부음을 들은 아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고작 이것 뿐일까?’ 아내의 상실감을 온전히 함께 공감하지 못하는 내가 부끄러웠다. 서둘러 일을 마치고 집에 가보니 아내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아니 평정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저녁상을 차리고 있었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부음을 접하고도 한국행 비행기를 타지 못해 마지막 가시는 길조차 배웅하지 못하는 아내에게 나는 죄인이었다. 소식을 전해 들으신 신부님과 먼 곳에 사는 교우들까지 아내를 위로하고자 집으로 모여 들었다. 아내의 슬픔과 절망의 무게가 그날 밤 내 등 뒤편의 베개에 눈물로 쏟아졌을 것을 알면서도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없었다. 담담히 내색하지 않고 참아내는 아내를 보며 미안했던 기억들은 지금도 마음의 부채로 남아있다.
마음으로 가까웠던 교우를 떠나보내며 한국의 부모님이 떠올랐다. 연로하신 아버지와 오랜 투병 중에 계시는 어머니는 이미 예전의 모습을 많이 잃으셨다. 희미해진 기억속에서도 무의식중에 나를 찾으신다는 말을 전해 들을 때면 마음 한편이 먹먹해 진다. 일 년에 겨우 한 번도 찾아뵙기 힘든 나이든 자식에게, 먼 이국땅에서 무탈하게 지내는 것만으로도 효도라고 대견스러워하시는 부모님들께는 늘 죄송한 마음이다. 혹시라도 늦은 밤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위중하시다는 소식이 전해지질까 늘 마음 조리지만, 소식을 듣고도 한걸음에 달려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어서 안타깝다.
교회에서 어머니날 행사 중에 ‘어머니의 은혜’를 부르던 교우들의 눈물에서 나와 같은 회한을, 어머니들께 장미꽃을 건네던 사제의 따뜻한 손길에서 부모님의 무한한 사랑을 느꼈다. 한국의 부모님께 때늦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척박하고 낯선 이민생활에 지쳐 애써 모른 척 했던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5월을 보내며 부모에 대한 작은 관심을 가져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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