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욤 아폴리네르는 상징주의가 저물고 모더니즘의 문이 열리기 시작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시대정신을 가장 충실하게 구현한 중추적 작가로 평가받는 시인이다 특히 화가이며 시인인 마리 로랑생과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기억을 노래한 ‘미라보 다리’는 아마도 현대 프랑스 시 가운데서 가장 잘 알려진 명편 중 하나일 것이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이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간다./ 그러나 괴로움에 이어서 오는 기쁨을/ 나는 또한 기억하고 있나니,/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여기 머문다” 흘러감과 머무는 대립의 공존 속에서 우리를 한숨짓게 하는 이 비가는 미라보 다리에 서보지 않은 사람에게조차도 이별의 내밀한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그 외에도 19세 때 만난 첫사랑 소녀와의 헤어짐의 심정을 노래한 유명한 시 ‘사랑 못 받는 남자의 노래’, 자신이 겪은 실연을 섬세한 서정으로 노래한 ‘알콜’은 프랑수아 비용의 ‘유언시’, 보들레르의 ‘악의 꽃’과 더불어 프랑스 문학사의 새장을 연 선구적 작품이다.
그러나 아폴리네르를 사랑과 실연을 노래한 시인으로만 기억하기에는 20세기의 새로운 모더니즘 예술을 발족시키는 전위적 선봉장으로서의 그의 역할이 너무도 컸다. 1차 세계대전 직후 서구 부르주아 사회에 대한 부정에서 출발한 새로운 신예술의 혁신적인 이념을 앞장서서 제시한 아폴리네르는 앙리 루소의 그림과 아프리카 조각을 동시대인들에게 소개했으며, 새로운 예술운동의 강력한 이론가이기도 했다.
우리가 지금 흔히 사용하는 쉬르레알리즘(초현실주의)이라는 말이 1917년에 발표한 희곡 ‘티레지아스의 유방’ 머리말에서 아폴리네르가 처음으로 사용한 용어이며, 큐비즘(입체파)이라는 말 역시 1911년에 열린 브뤼셀의 한 전시회의 캐털로그 속에서 그가 명명한 용어이다.
아폴리네르의 소개로 피카소와 브라크가 만나게 된 후 이 세 사람은 동일한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예술적 동지가 되어 그림만이 아니라 문학에서도 개혁을 시도하게 되는데 1913년에 간행한 시집 ‘알콜’에 실린 시들은 마치 피카소나 브라크의 파피에 꼴레처럼 꿈과 무의식, 감각과 기억, 과거, 현재, 미래가 아무런 원근법적 질서나 논리적 관계도 없이 뒤섞여있으니 분명 입체주의적 기법의 시적 형상화라 할 수 있다.
“마침내 너는 이 낡은 세계에 싫증났다 양치기 처녀여 오 에펠탑이여 오늘 아침 다리의 양떼들이 음매 운다(중간 생략) 너는 읽는다 큰 소리로 노래하는 광고지 캐털로그 포스터를 이것이 오늘 아침의 시다”(‘변두리’ 중에서) 또한 이 시에서 일체의 구두점을 빼버려 시구의 리듬을 완전히 유동화시켰다.
그 후에도 그는 카페의 소음 속에서 들리는 대화를 주워 모은 소위 대화시라든가 추상파 화가의 수법을 시에 적용시킨 추상시들 등을 마지막 시집 칼리그람에 담았는데 칼리그람(상형시집)이란 낱말도 그가 지어낸 새로운 단어다. 특히 그는 이 시집에서는 시를 구성하는 활자로 어떤 이미지를 표현하는데 비둘기와 분수의 형태를 입체적으로 재현한 실험시 ‘비수에 찔린 비둘기와 분수’ 같은 시가 대표적인 예이다.
38세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계속된 그의 파격적이고 지치지 않는 새로운 시도는 어쩌면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무겁고 음울하고 불안한 유럽 사람들에게 던진 경쾌하고 애수 섞인 유머였을 것이며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우리 생에 대한 끝없는 의미 부여의 몸짓이었을 것이다.
‘무게 없는 인생을 나는 얼마나 많이 손으로 달아 보았던가’ (아폴리네르의 묘비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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