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험·치료비 상관없이 무조건 치료부터 하라
병원 응급실은 1986년에 제정된 법에 따라 치료를 필요로 하는 환자를 내칠 수 없다. 보험유무나 치료비 지급능력 여부에 관계없이 병원은 응급 환자에게 필요한 조치를 취해 주어야 한다.
‘진료거부 금지’ 1986년 초당적 지지로 법 제정
무보험자 치료비 연 수백억달러는 결국 국민부담
논란 속 탄생‘오바마 케어’로 의료환경 변화 주목
워싱턴 DC에 자리 잡은 메드스타 워싱턴 하스피틀 센터의 응급실 외과의들은 교통사고로 머리와 얼굴이 피범벅이 된 채 의식불명 상태로 실려 들어온 젊은 남성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물론 중상을 입은 환자가 무보험자라는 사실도 몰랐고, 알려들지도 않았다. 응급실 외과 팀은 오로지 위태위태한 환자의 목숨을 건지는 데에만 집중했다. 각종 검사와 첨단 스캔촬영이 이어졌고, 뇌 내부 압력상승을 줄이기 위해 두개골을 일부 제거하는 응급 수술이 이뤄졌다. 신원조차 파악이 안 된 위급환자의 명줄을 붙들어두기 위해 말 그대로 가능한 모든 수단과 인력이 총동원 된 셈이었다. 그에게 들어간 응급치료비가 족히 수만달러에 달할 터였지만 의료진 가운데 그 누구도 환자에게 그만한 부담을 감당할 금전적 능력이 있는지 따위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 남성 환자는 특별대우를 받은 게 아니었다. 미국의 병원응급실은 그 어떤 이유로건 긴급 치료를 필요로 하는 환자를 내칠 수 없다. 무보험자거나 치료비 지불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이들에 대한 진료를 거부하는 행위는 1986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절에 제정된 법에 의해 금지되어 있다.
EMTALA(Emergency Medical Treatment and Active Labor Act)로 명명된 이 법에 따라 응급치료는 모든 미국인들의 권리가 됐다. 병원 측은 응급실로 들어온 모든 환자의 상태를 평가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 모두를 입원시키거나, 장기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의무는 없다.
이 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미국의 사설병원들을 중심으로 부모험자들에 대한 진료를 거부하는 ‘환자 내몰기’(patient dumping)가 다반사로 일어났다.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가 1985년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 일어난 임신부 진료 거부다. 당시 오클랜드 지역의 사설병원 두 곳은 야멸치게 그녀를 밀어냈다. 무보험자일 것이라는 지레 짐작에서였다.
포드는 공립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태아는 이미 숨진 후였다. 포드를 거부한 두 번째 병원의 응급실 진료팀은 태아의 박동이 비정상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축구공처럼 내찼다.
텍사스주 달라스에서는 한 민간병원이 기본적인 검사조차 하지 않은 채 심한 감염증상을 일으킨 18세 청년을 공립병원으로 떠넘겨 이송도중 숨지게 만든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가 하면 시카고의 사설병원은 응급실로 들어온 환자들 가운데 무보험자를 ‘색출’한 후 이들의 차트에 노란별 딱지를 붙여놓았다. 입원시키지 말라는 표시였다.
CUNY의 공중 보건학 교수인 스테피 울핸드러 박사는 EMTALA법이 제정되기 직전인 1980년대 중반까지 이 같은 응급환자 진료 거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났다고 전했다.
결국 주정부가 앞장서 응급실 환자에 대한 진료거부 행위 차단에 나섰고 이것이 전국 차원의 EMTALA 제정으로 이어졌다.
지난 26년간 EMTALA는 미국 응급치료제의 근간을 이루었다. 응급환자들에게 제공해야 하는 치료 범위를 둘러싸고 병원과 정치권 사이에 아옹다옹 다툼은 끝없이 되풀이됐지만 이 법의 적법성에 도전을 제기하거나 이를 폐기하려는 움직임은 전혀 없었다.
공화당과 민주당도 EMTALA 지지에 한 목소리를 냈다.
사실 응급치료 의무화에 더욱 적극성을 보인 쪽은 공화당이었다. 당시 공화당의 데이빗 듀렌버거 상원의원이 EMTALA 법안 처리를 주도했고 후일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된 밥 도울 의원이 막강한 지원사격을 제공했다.
이렇게 탄생한 EMTALA는 병원의 응급환자 진료 거부 행위를 근절했지만 핵심적인 문제, 즉 무보험자들의 치료비를 누가 부담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지난해 워싱턴 DC에서 가장 큰 의과대학 부속병원인 메드스타 워싱턴 하스피틀 센터 응급실을 찾은 환자는 총 8,400명으로 이 가운데 400명이 무보험자였다. 전국적으로 보면 응급실 방문 환자들의 20%가 보험을 갖고 있지 않았다.
응급실 과장인 빌 프로나 박사는 거의 모든 경우 의사와 간호사는 누가 무보험 환자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보험 유무는 적어도 응급환자의 치료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물론 병원이 무보험자들의 치료비를 대손처리 해버리거나 아예 산정조차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병원의 응급실 비용은 전체 헬스케어 지출 가운데 조그만 부분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부담이 안 된다는 뜻은 아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시간이 지날수록 병원이 느끼는 압박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유료 환자들이 병원 가기를 꺼려하는 극심한 불경기 상황에서는 특히 그렇다.
지난해 메드스타 워싱턴은 1억720만달러를 무보험 응급환자들의 치료에 쏟아 부었다. 전국적인 무보험 비용은 2008년 560억달러였다.
병원들은 복잡한 방식을 통해 이런 부담을 이리저리 분산해 전가한다.
병원들이 돌리는 부담은 무보험자 치료와 관련해 전국의 병원들에 연간 수백억달러를 지원해야 하는 정부의 몫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납세자들에게 떨어지는 짐이다.
병원이 의료비를 올리면 보험사도 프리미엄을 인상하게 되고, 이에 따라 개인 보험 가입자들의 부담이 커진다. 여기에 대한 대안, 다시 말해 정부와 개인보험 가입자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나온 처방이 2010년 숫한 논란 속에 제정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의료개혁법이었다. 극빈층을 제외한 미국인 무보험자들을 강제보험에 가입시킴으로써 정부에 전가되는 이들의 치료비용을 보험사들이 분담하도록 유도하는 내용이 이 법의 골자다.
정부의 부담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보험사들과 개인 가입자들 모두의 고통분담으로 전 국민에게 기초적인 의료보험 혜택을 제공한다는 취지의 이 법은 오는 11월 대선에서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맞설 공화당 후보 미트 롬니가 매서추세츠 주지사 시절 만들어낸 전 주민 의료보험제를 전국 차원으로 업그레이드 시킨 버전이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의 최대 입법 성과로 꼽히는 의료개혁법은 공화당 주도의 위헌 시비에 휘말려 연방 대법원까지 올라갔다.
롬니 역시 자신의 주지사 시절 치적으로 꼽았던 전 주민 의료제를 ‘실수’로 규정하고 이른바 ‘오바마 케어’ 반대의 선봉에 나섰다. 극빈층을 제와한 모든 미국인을 강제로 보험에 가입시키는 것은 위헌이라는 주장이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 이 법에 대한 반대가 지지를 다소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보험업계의 반대 로비도 치열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지난달 예상을 깨고 의료개혁법의 강제보험 규정은 합헌이라고 5 대 4로 판결, 오바마 대통령에게 정치적 승리를 안겨주었다.
이처럼 시끌벅적한 잡음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미국의 의료환경이 크게 개선되거나 변화할 것 같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경비분담이 어떻게 이루어지건 상관없이 지난 26년간 그랬듯이 응급치료가 여전히 미국인들의 권리로 남게 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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