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자들이 임종이 임박한 환자들의 곁을 지켜주는‘노 원 다이즈 얼론’ 프로그램은 2001년 오리건에서 시작됐다.
바바라 파카스(68)는 죽음이 모든 것의‘끝’이라고 확신한다. 병원 자원봉사자로 2년째 임종이 임박한 환자들의 곁을 지켜온 파카스는“사후 세계 따위는 없다”고 단언한다.“천국도, 지옥도 없고 사망 후 새로운 여행이 시작되는 것도 아니다”는 그녀는“죽으면 그것으로 그만”이라고 강조했다. 임종의 자리는 그래서 더욱 엄숙하다. 파카스는 캘리포니아주 토랜스 소재‘리틀 컴퍼니 오브 메디칼 센터’의‘노 원 다이즈 얼론’(No One Dies Alone) 프로그램에 참여중인 32명의 자원봉사자들 가운데 한 명이다.
‘노 원 다이즈 얼론’ 프로그램 2001년 시작돼
환자 곁 지키며 짧은 대화·자잘한 간병 맡아
“잘 살았건 못 살았건 외로운 죽음은 없어야”
‘노 원 다이즈 얼론’ 프로그램은 2001년 오리건에서 시작됐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당시 현지의 한 병원에 입원해 있던 불치병 환자가 어느 날 담당 간호사에게 자신의 침대 곁을 지켜달라고 부탁했다. 간호사는 일단 회진에 참석하고 나서 그의 부탁을 들어주겠노라고 굳게 약속했다. 그러나 간호사가 회진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남성 환자는 이미 숨진 뒤였다.
큰 충격을 받은 간호사는 임종이 임박한 환자가 홀로 방치되는 일이 없도록 그들의 병실을 지켜줄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했다. 이것이 “누구도 홀로 죽지 않는다”는 뜻을 지닌 ‘노 원 다이즈 얼론’ 프로그램의 시초였다.
이 프로그램은 이후 빠른 속도로 전국으로 확산됐고, 리틀 컴퍼니 오브 메디칼 센터도 2009년 같은 이름의 자원봉사제를 도입했다.
파카스는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전 토랜스에 기반을 둔 반도체 생산업체의 고참 직원으로 근무했다. 30년차 경력사원인 그녀는 온종일 전화기에 매달려 상품 출하와 선적을 확인하고 신속한 주문 처리를 독려하며 바쁜 일과를 보냈다. 직장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늘 스트레스가 따랐고, 할당된 판매 실적을 올리기 위해 버둥대야 했다.
30년에 걸친 파카스의 연공은 2009년 4월로 끝이 났다. 2009년 4월 회사 인사과는 그녀를 비롯한 28명의 직원들에게 구조조정을 이유로 해고 통지서인 ‘핑크 슬립’을 건네주었다.
65세의 꽉 찬 나이에 새로운 직장을 잡기는 불가능했다. 고교 교사인 남편이 건재하기 때문에 가계가 무너질 염려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일손을 놓고 집안에 들어박혀 있기는 싫었다. 무엇보다 좀이 쑤셔 견딜 수가 없었다.
가디나에 거주하는 파카스는 일주일에 두 번씩 환자들을 토랜스의 병원까지 데려다주고, 거기서 간호사들을 거드는 자원봉사 활동에 뛰어들었다.
그러던 중 ‘리틀 컴퍼니 오브 메디칼 센터’가 곧 임종 도우미 프로그램을 시작할 것이라는 소식에 호기심이 동한 그녀는 병원 호스피스 병동 담당목사이자 자원봉사자 관리 책임임자인 데니스 헤스와의 면담을 거쳐 임종을 앞둔 환자들의 간병을 시작했다.
간병이라고는 하지만 틈이 나는 대로 병실에 앉아 환자의 손을 잡아주고, 발을 마사지 해주거나 책을 읽어주고 짤막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거의 전부다. 간병인이라기보다는 임종 ‘파수꾼’에 가깝다.
지난 2년간 파카스는 죽음을 목전에 둔 30여명의 환자들과 시간을 보냈다. 이들 중 파카스가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둔 환자는 단 한 명에 불과했다. 당시 파카스는 그에게 성경 신약을 읽어주고 있었다. 책을 읽던 중 그녀는 환자의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들었다.
자원봉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하루 코스의 교육을 받으면서 파카스는 환자의 임종이 감정의 회오리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우려했었다. 그러나 막상 실제상황을 접하게 되니 걱정했던 만큼 마음이 심란하지 않았다. 환자가 완전한 타인이라는 사실이 슬픔을 완화해 주었다.
환자들과의 대좌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늘 예측불가였지만 매번 자신이 도움이 됐다는 뿌듯한 느낌이 뒤따랐다. 한마디로 보람찬 일이었다.
함께 일하는 자원봉사자들 가운데 일부는 임종 환자들을 돌보며 신앙심이 더욱 굳건해졌다며 기꺼워했지만, 파카스에게는 애초부터 그런 신앙심이 없었다.
인디애나의 감리교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열두살 때부터 교회에 발길을 하지 않았다. 남편은 가톨릭 신자이고 딸도 어릴 때 세례를 받았지만, 그녀에겐 별 해당사항이 없다.
그녀의 신앙심은 이미 오래 전에 식었는지 몰라도 임종 환자 지킴이 역할만은 어느 누구 못지않게 열성적으로 해낸다. 환자에 대해 그녀만큼 따듯하고 진지한 태도를 취하는 자원봉사자도 드물다.
암 환자 병실은 늘 고약스런 냄새로 가득하다. 세균과 종양부위의 짓무른 살 썩는 악취가 진동한다. 하지만 파카스는 몇 시간씩 꼼짝도 하지 않고 환자 곁을 지킨다.
지독한 악취로 하루 두 차례 목욕을 해야 하는 난소암 환자의 옆에 네 시간 동안 계속 앉아 있어 간호사들을 놀래게 만들기도 했다.
파카스는 지난 2년간 외로운 임종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너무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어서, 직장일 때문에 도무지 시간을 낼 수 없어서 등등의 이유로 환자를 홀로 떠나보내는 친지들이 적지 않았다.
생전에 벌어진 사이를 좁히지 못해 세상을 뜨는 환자를 차갑게 외면하거나 죽음을 지켜보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워 아예 발길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이에 대해 헤스 목사는 “누군가를 홀로 방치해선 안 되는 경우를 우리는 본능적으로 안다”며 “임종도 그 중 하나”라고 말했다.
파카스 역시 주어진 삶을 잘 살았건 못 살았건,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종착점에 도달한 환자를 외롭게 보내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믿는다. “세상에 입장할 때 그랬듯 퇴장할 때에도 결코 혼자여서는 안 된다”는 게 그녀의 신조다.
파카스는 친구들이 집에서 죽고 싶다는 말을 할 때마다 쌍지팡이를 짚고 반대한다. 다른 무엇보다 자식들에게 못할 짓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런 말을 하는 친구들에게 파카스는 “환자의 식사를 준비하고, 목욕을 시키고, 약을 먹이는 일이 얼마나 부담스러울지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라”고 권한다.
요즘 그녀가 지키는 환자는 비인두암에 걸린 테일러 홀이라는 이름의 57세 된 남성이다. 종양이 목 외쪽의 피부를 뚫고 돌출한 상태지만 홀의 손을 잡는 순간 파카스는 그가 한동안 버텨낼 것으로 확신했다. 미미하지만 악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명이 질기다는 사실을 그녀는 경험을 통해 터득했다. 음식을 입에 대지 않은 채 진통제에만 의존하면서도 끈질기게 목숨을 이어가는 환자들을 여러 명 겪었다.
그녀가 파악한 사망 징후는 탈수와 소변을 흘리는 요실금 현상, 울혈, 호흡 곤란에 따른 패닉이다.
생애의 마지막 순간을 향해 나아가는 환자들을 돌보면서 자신에게는 없다고 생각했던 인내심과 침착성, 인간에 대한 연민을 발견했다는 파카스는 죽기 전 남편과 이탈리아 여행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은 다음 번 교대시간을 짜는 것이 급선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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