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이 정의 문화읽기
▶ 메이 정 <앤드류샤이어갤러리 관장>
바흐(Johann Sebastian Bach)의 음악을 접하면 자주 등장하는 용어중 하나가 푸가 (Fugue)이다. 어린 시절 우리가 배운 ‘퐁당퐁당 돌을 던지자…’ 같은 돌림노래처럼 하나의 성부가 연주한 주제를 또 다른 성부가 모방하며 진행되는 것인데 그 기원은 1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오늘날같은 의미의 푸가가 시작된 것은 16세기부터이며 바흐의 작품에서 그 표현효과가 최고에 도달했다.
바흐는 푸가의 달인이다. 그가 만든 천여곡의 음악 속에는 늘 푸가가 밑그림처럼 깔려있고, 특히 급격한 시력약화로 미완성인 채 출판된 마지막 작품 ‘푸가의 기술’(The Art of Fugue)은 푸가를 만들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예시한 거대한 연습곡이자 인류에게 남겨준 음악의 교과서이다.
음악에서 각각의 다른 선율을 서로 조화롭게 배치하는 작곡 기술을 대위법이라고 한다면 푸가 역시 대위법을 지키는 음악형식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동시에 진행하는 여러 선율이 하나의 주제를 체계적으로 모방, 반진행, 역진행 반역진행 등을 하며 그것들이 합쳐서 조화로운 짜임새를 이루어야하니 복잡하고 가장 고난이도 형식중 하나라 하겠다. 특히 (대위법 음악의) 최고 걸작 중 하나라는 ‘푸가의 기술’의 여러 성부들이 서로 밀고 당기면서 어우러져 빚어내는 화음들은 우주질서의 음악적 구현이라고까지 평가받기도 한다.
먼저 주제가 반주 없이 시작되는데 느리게 흘러가는 강물처럼 넘실거리는 음표위로 뒤따라 응답하는 음표들이 님프와 목신들이 공중에서 춤을 추며 내려오듯 스며들어 이내 서로 몸을 섞는데, 음표들로 절묘하게 엮어진 음의 다발은 헝클어진 세상사에서 드물게 조우하는 조화의 세계라 하겠다.
그런데 푸가는 우리의 인간관계와 참으로 많이 닮았다. 살아온 환경이나 세월만큼 다른 존재들이 마음을 열고 친해져서 모방하고, 사소한 오해로 반진행을 하기도 하고 결국 이별이라는 역진행으로 가기도 하니 우리의 인연맺음이라는 것이 푸가와 그리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특히 부부가 되어 살아간다는 것은 독립적 존재인 ‘나’와 전혀 다른 곳에서 온 ‘그’가 그동안 따로 연주되던 삶을 함께 합주하고, 변주하고, 느리게 따라가기도 하고, 가끔은 반진행을 하기도 하지만 함께 연주한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되기. 그래서 잘 어울리는 짝이라는 것은 멜로디의 시작, 박자, 조성, 쉽표는 다르지만 그 구조안에서 아름다운 화음을 이뤄내는 푸가와 같은 조화일 것이다. 특히 긴 세월을 살아낸 노부부를 보면 잘 짜여진 푸가 에서만 느낄 수 있는 질감과 두터움과 여유가 엮어진 음악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우리는 ‘자유롭다라는 것’을 ‘틀에 갇히지 않음’과 동일선상에 놓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음악학자 앨프리드 아인슈타인이 “어느 하나만 건드려도 전체가 다칠만큼 완성”되었다고 감탄했다 하는 바흐의 음악들은 제한된 틀 속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은 채 충분히 풍성하고 서정적이고 바람처럼 자유롭다. 하나의 선율이 주역일 경우에는 다른 선율이 뒤로 물러나 주역을 뒷받침하는 방식으로 서로 돕고 또 교대로 바꾸어가며 자기존재를 비상하게 드러내는 푸가는 주관적인 내소리만 과장되게 울려대다가 흐트러진 관계가 되기 십상인 우리들에게 남다른 감명을 준다.
관계의 비대칭적인 속성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조화로울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바흐의 ‘푸가의 기술’을 통해 경험하게되는 조화의 순간이며 우리는 완벽한 화음을 이뤄내던 사랑의 기억처럼 그 순간을 일생내내 소망한다. 아마도 우리가 가끔. 둔한 통증같은 첫사랑을 추억하며 우연히 삶의 길목에서 다시 마주치는 반역진행을 꿈꾸기도 하는 것은 서로 다른 두 선율이 어울려서 처음으로 화음을 이루던 그 최초의 순간의 강렬했던 소통과 환희를 잊을 수 없어서는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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