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민 지국장>
미국 추수감사절을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미국의 명절 중 이 추수 감사절을 가장 좋아한다. 감사함을 나눈다는 의미도 마음에 들고 물질만능주의에 찌든 다른 미국식 명절과는 달리 가족들이 함께 모여 한해를 돌아보며 감사를 드린다는 사실이 어렸을 적 한국의 추석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이 추수감사절의 역사를 통해 미국 역사를 들여다보면 현실이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다. 1620년 늦여름 영국을 떠난 청교도들이 우여곡절 끝에 11월 초 보스턴 남단 플리머쓰에 정박을 하였다. 이들은 당시 영국의 국교인 앵글리칸 교회 원칙에 반대한 복음주의자들이었는데 본국에서 박해를 받자 신천지 미국으로 발길을 돌린 것이다.
원래 목적지는 허드슨강 남단 현 뉴욕시였으나 선원들의 반란, 질병, 이주민들 간의 반목 등으로 플리머쓰에 닻을 내리게 된 것이다. 당시 매우 추운 날씨에 영국에서 가지고 온 식료품은 바닥이 나고 질병과 싸움으로 선원과 이주민 절반 이상이 죽었다. 해안에 상륙을 했으나 겨울인데다 낯선 환경으로 먹을 것을 구하기커녕 죽음만을 기다리는 처참한 처지에 놓였다.
그때 기적처럼 이 지역 원주민이었던 스퀀토인들이 옥수수, 감자, 스쿼시, 칠면조를 들고 이방인들을 살렸다. 이 부족의 족장 이름이 마싸오잇으로 현재 메사추세츠 주의 이름이 여기서 기원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 원주민들이 청교도에게 나눠준 음식이 미국의 추수 감사절 음식의 기원이기도 하다. 그런데 배불리 먹어 아사를 모면한 청교도들이 원주민들에게 감사는 고사하고 한 달도 안 된 12월 중순에 원주민의 옥수수 창고를 약탈했다.
여기에 그친 것이 아니고 나머지 식량과 원주민 여성과 아이들을 불태워 죽였다. 이는 원주민이 소유한 비옥한 땅을 빼앗으려는 악랄한 의도였다. 특히 다음해에 영국으로부터 보급품(총과 살상무기가 대부분)을 받은 청교도들은 자신들을 도와준 원주민 사냥에 나서게 된다.
영국 사회에 종교 탄압이 지긋지긋해 탈출한 이들이 영국에 살상무기를 요청했으며 또 이들을 범죄자 취급했던 사회에서 죄 없는 이들을 도륙하라고 무기를 보내는 실로 어처구니없는 역사였다. 당시 영국인을 비롯한 유럽의 기독교 신자들은 자신들을 제외한 사람들은 인간이 아니라는 편리한 이유를 내세웠다. 외모는 인간과 흡사하나 영혼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를 미국에서는 매니패스트 데스티니(Manifest Destiny)라는 종교 운동으로 불리는데 기본 사상은 미국 땅이 창세기에 나오는 에덴동산으로 기독교 왕국을 건설하는 것이 신이 부여한 소명이라는 설명이다. 그리고 원주민, 흑인, 황인종 모두 사람의 형상을 했지만 영혼이 없는 악마가 만들어낸 몹쓸 존재들로 죽여 없애는 것이 신성한 소명이라는 편리한 사고방식이었다.
이 사고는 현대에 조차 백인 근본주의 교회에서 그대로 답습한다. 헐벗고 굶주린 이들을 위해 자신들의 양식을 나눠줬던 미국 원주민들과 자신들이 믿는 종교를 내세워 이들을 도륙한 영국 청교도들의 대조적인 행동 양식이 불행하게도 이토록 아름다운 미국 추수 감사절의 기원이었다는 것이 안타깝다.동포 기독교인들이 초창기 영국 청교도들이 저질렀던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현재 미국은 다민족 다문화 사회이다. 내가 행복 하고 싶으면 타인의 행복 추구도 인정해야 한다. 문화의 다양함도 타종교 믿을 권리도 모두 다양한 행복 추구권의 일부이므로 타 종교와 타 인종에 대해 조금 더 관대해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번 추수감사절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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