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양계 여성 핸디캡, 소신있는 의정활동으로 극복
허영은과 남편 김효신 목사, 애견 이브와 함께.
부조리 판치는 교단에 염증, 5년 교수생활 접고 정계 입문
뉴저지 리틀훨스 타운역사 200년만에 최초 동양여성 시의원
지난 2006년 치러진 미국선거에서 뉴저지의 작은 타운 리틀훨스의 시의원으로 출마한 허영은 후보는 한인사회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고 백인 거주지역인 이 마을에 한인은 거의 살지 않았기 때문에 한인을 상대로 한 득표활동도 별도로 하지 않았다. 그가 출마한 사실조차 모르는 한인들이 많았고 ‘크리스티 허’란 미국이름으로 당선된 후에도 그가 한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이 많았다. 일부 한국신문의 ‘미동부지역 최초의 한인여성 시의원 당선’ 보도를 통해서야 비로소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가 별다른 배경도 없이 이 타운에서 우여곡절 끝에 시의원에 당선된 스토리와 임기 4년동안 동양계 여성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소신있는 의정활동을 통해 투쟁한 경험은 앞으로 미국정계를 노크하는 2세들에게 값진 교훈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
뉴저지주는 정치면에서 크게 후진적인 지역이다. 특히 시 단위 정부 관리들의 부패가 심해 뇌물을 먹은 저지시티 현직 시장이 쇠고랑을 차는 광경도 보았고 팰리세이즈팍 시 경찰이 한인주거지를 침입해 절도행각 끝에 FBI에 체포되는 경우도 보았다. 끼리끼리의 패거리 정치, 마피아가 판치듯 보스의 명령 하나에 정치인들이 소신 없이 따라 움직이는 모습도 엿보인다. 이런 정치판에서 배경이 없는 한인 정치인들이 살아남기는 정말로 어려운 현실이다. 숨죽이고 지시에 따라 순종하거나 정치판을 떠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허영은이 미국사회의 부조리를 처음 경험한 것은 박사학위를 마치고 뉴저지의 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였다. 학생들에게 리포트를 쓰라니까 인터넷에 올려져 있는 자료를 마구 베껴 내는데다 영작문 실력이 형편없이 떨어지는데도 ‘전학생 향상법’이라는 학교측 책임론에 따라 학점을 주어야 하는 압력을 받았다. 무엇이 선생을 선생답지 않게 하는가, 교육철학과 소신이 없다면 어떻게 열정적으로 가르칠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던지며 5년간의 교단생활을 떠났다. 바로 그것이 시의원에 출마한 동기이기도 하다.
반경 3마일의 리틀훨스를 도어-투-도어로 누비며 선거운동을 벌일 때 주민으로부터 칭크(중국인을 비하하는 말)라는 욕설과 얼굴에 물총 세례를 받는 인종차별도 당했다. 뉴욕과 뉴저지에서 10년간 인권옹호기관에서 인종차별 사건을 담당했던 그였지만 막상 자신이 희생자가 되고보니 두려움도 생겼다. 전통적인 공화당 텃밭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끊임없는 핍박 속에 허울과 명분뿐인 같은 민주당의 철저한 외면을 당하면서도 힘겨운 레이스를 끝내고 타운 역사 200여년만에 최초로 동양여인이 시의원에 당선되는 기록을 세웠다. 2007년1월, 임기를 시작하면서 크리스티 허의원은 시정에 대한 많은 연구를 하고, 주민들의 이익을 살피기 위해 이야기를 잘 듣고, 제대로 판단하는 공명정대한 정치인이 되고자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다.
조지워싱턴 브리지에서 서쪽으로 루트 80번 도로를 타고 15분 정도 되는 거리, 버겐카운티 경계선을 넘으면서 퍼세익 카운티로 접어드는 지점에 자리잡은 인구 1만4,000여명의 작은 마을 리틀훨스는 당시 몇가지 풀어야 될 문제점이 있었다. 첫째는 홍수문제였다. 타운에는 퍼세익과 패크먼이라는 두 강이 흐르고 있었다. 매년 홍수가 나면 지역내 400여 가구가 침수로 대피해야 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시가 투자를 하지 않아 50여년간 해마다 만성적으로 극심한 피해를 입고 있었다.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 허의원은 복잡하고 기술적으로 어려운 홍수 관련 리포트를 술술 읽게 되었고 동료 민주당 의원들과 연합으로 홍수 완화계획을 4년동안에 걸쳐 수립하게 되었다.
두번째 시가 당면한 문제는 가정폭력이었다. 살인사건과 같은 중범죄는 거의 없는 마을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가정폭력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교회나 성당에 나가는 교인들조차 대부분이 어느 형태로든 가정폭력의 피해자이며 가해자였지만 그렇게 사는 것이 익숙해져 단순히 개인의 성격문제로 돌리고 있었다. 마침 그가 한미교회여성연합회 총무와 회장을 지내면서 가정폭력 희생자들을 위해 15년 정도 일한 경력이 이때 발휘됐다. 당선 직후 그는 시에 ‘가정폭력방지 자문위원회’를 창설했다. 타운의 정치지도자, 경찰서장, 각 커뮤니티 단체장, 정신과 의사, 검사, 여성 보호소 관계자들을 임원으로 초대하여 위원회를 조직했다.
평화스럽던 타운에 갑자기 동양여성이 나타나 ‘가정폭력은 대물림되는 무서운 문제’라고 지적하고 나오자 이를 반기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허의원은 캠페인을 드라이브하면서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뒤에서 타운의 지도자들을 조종하는 큰 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작은 타운의 정치는 상상할수 없을 정도로 살벌한 경우도 있었다. 그는 보이지 않는 큰 손이 있다는 것을 알뿐 그 실체는 몰랐다. 아마도 분명 만났고 대화도 나누었겠지만 굳이 알고 싶지도 않았다. 실의에 빠질 때는 타운내 미국인 회중 교회인 리틀훨스 연합감리교회에서 시무하는 남편 김효신 목사의 격려가 큰 힘이 되었다.
허의원은 임기동안 가정폭력 방지 캠페인을 끈기있게 추진했다. 피해자를 위한 추모예배를 타운홀 앞에서 시장, 시의원, 지역주민들과 함께 치렀다. 위원회 멤버들은 브로셔에 보라색 리본과 로고를 붙여 타운의 나무들에 달면서 단결되어 갔고 4년간 심혈을 기울인 결과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임기 마지막 시의회 때 가정폭력방지 자문위원회로부터 감사장을 받으면서 그는 다른 어느것 보다도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캠페인은 요즘도 지속되고 있다.
한국서 고교를 마치고 1973년 버지니아주 페어팩스로 이민 온 그는 아메리칸대를 졸업하고 컬럼비아대서 교육행정학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윌리엄 패터슨대, 나약칼리지 맨해튼센터 등에서 부교수로 강의를 했으며 90년대에는 뉴욕시 엘리자베스 홀츠먼 감사원장의 특별보좌관, 뉴욕시 인권국 복지담당 분석관 등으로 근무하면서 뉴욕한인회와 연결 노력을 기울인 적도 있다. 뉴욕시 인권국으로부터 뛰어난 인물로, 버겐카운티 정부로부터는 90년대의 파이오니어 우먼으로 표창도 받았다. 금년 안식년을 맞은 이들 부부는 그간 쌓인 온갖 집착과 갈등을 털고 심신을 달랠 겸 캐나다와 미서부지역 대자연의 품속을 여행중이다.
그는 최근 의정생활을 통해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에서 정치인들이 갖추어야 할 조건들을 챙겨보았다. 1.뚜렷한 정치신념, 비전, 열정 2.많은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자신에게 주목할수 있게 만드는 의젓함(Presence) 3.짧고 간결한 표현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귀 기울이게 하는 설득력있고 진심이 담긴 연설능력 4.누구나 안심하고 다가설 수 있는 열린 편안함과 신뢰감 5.주민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그들의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는 판단력 등 15개 항목에 달한다.
조종무<국사편찬위 해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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