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욕한인 열정.저력에 감동...2세들에 거는 기대도 커”
지난 9월 13일 뉴욕에 부임하여 오는 21일로 취임 100일을 맞는 손세주 뉴욕 총영사, 그는 이제 한인사회에 대한 느낌을 말할 수 있다 한다. 결코 평범치 않은 외교관의 삶을 살고있는 그를 만났다.
▲한인사회 곳곳 방문 중
취임 100일을 맞은 손세주 뉴욕총영사는 부임이후 굵직굵직한 일이 계속 터져 그동안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했다. 뉴욕한인사회를 제일 먼저 알려면 우선 발로 뛰어 몸으로 체득해야 하기 때문이다.“어느 자리에서나 맡은 지 100일이 돼야 기본적으로 아는 것같다. 동포사회 수준이 높고 미국에 정착을 잘하고 있다.
이민 1세대가 헌신한 바탕위에 2세대가 활약하고 있어 그 역량에 기대가 크다.”손 대사는 부임후 참여한 큰 행사로 10월6일 코리안 퍼레이드에 그랜드 마샬로 참가했고 11월11일 베테랑스데이 매디슨 스퀘어팍 오프닝세러머니에서 마이클 블럼버그시장과 함께 기념연설을 했다.
“처음 코리안 퍼레이드를 보고 어려운 여건에서도 우리 문화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고 미국사회에 보여줄 수 있는 저력에 감격했다. 이렇게 대규모 퍼레이드는 아시아계로는 유일하다고 들었다. 또 뉴욕지구 보훈병원에서 백발이 성성한 참전용사를 만나보니 노장이라기보다 보람있는 인생을 살아온 것을 느꼈다. 한국전 노고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일은 앞으로의 한미관계에서도 중요하다.
동포들은 한국전 참전군 초청모임을 갖고 원호병원 위문공연을 가는 등 좋은 유대관계를 쌓아왔다. 60,70년대 한국이 가난하던 시절 못한 일들을 미주동포들이 해왔다. 참전용사모임에 가보니 한국전 용사들이 이렇게 자신들을 챙겨주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오히려 자신들이 더 고맙다고 하더라.”
그는 지난 9일(일)에도 시라큐스 한국전 참전용사회장을 만나고 그 지역 참전용사 행사에 참여했다. 이번 11, 12월달에는 고국의 대통령을 내손으로 뽑는 재외선거에 총영사관은 앞장서 한인들을 독려했다. 세계적으로 일본 동경에 이어 두 번째로 유권자 등록(1만1,105명)이 많았고 10일 마감한 최종투표율도 68%였다. 유권자들에게 교통편을 제공하고 대기실을 마련, 따스한 차와 커피를 제공했다.
그외 미동부지역에 몰아닥친 허리케인 샌디로 인한 한인피해상황을 점검한 후 본국에 건의, 한인회와 뉴욕한인봉사센터를 통해 신속지원했고 최근에는 맨하탄 지하철 사고로 한인이 사망하자 사고당일 뉴욕경찰 수사책임자에게 손대사가 직접 전화를 걸어 신속수사를 촉구하는 등 연일 큰일들을 해결했다.
틈틈이 SBA 수출금융보증 프로그램 설명회, 미국에서 사업하기 세미나도 개최하여 실질적인 도움을 주어야 했고 각 한인 직능단체는 물론 모임에 참가하거나 못갈 경우 축사도 전해야 한다. 뉴욕, 뉴저지, 커네티컷, 델라웨어, 펜실베니아 지역 등 뉴욕총영사관 관할 지역 한인사회를 두루 살피자면 아직 그는 긴장을 놓을 수가 없다.
▲저 너머 다른나라로
1954년 경북 울진 평해 출신으로 월송초, 평해중, 대광고, 서울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80년 제14회 외무고시 합격으로 외무부에 입부하여 30년이상 엘리트 외교관의 길을 달려온 그는 왜 외교관이 되고 싶었을까.
“교사인 아버지는 몇 년에 한번씩 부임지를 옮기셨다. 아버지가 멀리서 근무할 때 4남매는 어머니를 도와 농사를 지어 쌀을 자급자족해야 했다. 고등학생인 형을 도와 농사를 지었는데 모자리를 반듯하게 만들기가 너무 힘들었다. 인건비와 자재비를 빼면 남는 것도 없었다. 탈출하는 법을 꿈꾸었다.”소년 손세주는 고향 가까이 있는 동해를 자주 보러갔다. 바닷가에 앉으면 멀리 바닷길이 보였다. ‘저 너머 다른나라로 가고싶다.’
그는 좀더 넓은 세상에서 살고자 68년도에 서울에 올라와 자취를 하며 공부를 열심히 했다. 5년전 튀니지로 부임하기 전에 울진 기성쪽 초등학교 분교가 있던 고향의 산간벽지를 찾은 적이 있다. 분교장이던 아버지를 따라 간 분교는 같은 학년에 달랑 세명이 공부했었고 그 중 한 친구를 40년만에 만나 회포를 풀었다. 울산시청에서 일한다는 그 친구 이야기를 하면서 경상도 사투리가 살짝 튀어나오고 저절로 미소가 떠오르는 손대사의 모습은 소탈하고 다정다감하기 그지없다.
1983년 그가 처음 부임한 곳은 아프리카였다. “불어를 하면 주로 아프리카에 발령이 났고 그곳에 가면 새로운 것을 배우면 좋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봉에는 75년 봉고대통령이 내한한 후 우리 기업이 진출하여 쌍룡 백화점이 있고 동포 600명이 살고 있었다. 새우잡이 선원, 미용실, 이발소, 사진관 등을 하고 살며 사건사고가 많이 발생했고 외교관으로서 보람도 있었다. ”1983년 주가봉 2등서기관, 1989년 주프랑스 1등서기관, 1993년 외무부 총무과 인사계장, 1995년 주 이집트 1등 서기관, 1996년 외무부 의전2담당관, 1997년 중동과장 등을 했는데 어느 지역에 부임하더라도, 힘든 곳에 갈수록 적응력이 높아진다는 그가 못갈 곳은 없었다.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부인 남영희씨와 슬하에 둔 두 딸도 아버지의 부임지를 따라 다녔다.
“아이들이 영어, 불어 등 외국어를 잘하고 주말이면 한국학교에 보내 한국말도 잘한다. 해외 나가기 어렵던 시기에 외국에 살면서 공부까지 하니 좋은 기회로 삼았다.” 현재 큰딸은 서울에, 작은딸은 샌프란시스코 대학원을 졸업한 후 필라에서 취업을 준비 중이다. 이렇게 매사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성격인 그는 1998년 대통령 비서실(의전)행정관, 2000년 주 UN 참사관으로 뉴욕에서 3년 근무할 때에는 한인사회와 별로 교류가 없었다. 2003년 인사기획관, 2004년 외무부 아·중동과장, 2006 외무부 중동문제담당 대사, 2006년 주 튀니지 대사로 있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외국의 한국에 대한 대접도 달라졌다. “1989년 프랑스에 나갔을 때와 작년에 갔을 때, 프랑스 사람들이 한국을 대하는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 한미 FTA도 맺었고 사업 파트너가 될 정도로 한국이 성장하니, 격세지감이다. ”
▲미국내 가장 모범적인 한인사회
올 한해동안 독도 명칭과 뉴욕위안부 기림비 문제로 한인사회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손세주 대사 역시 2009년 재외동포재단 기획실장을 거쳐 2010년 경상북도 국제관계자문대사로 일할 당시 경상북도 관할인 독도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지리와 역사적으로 우리 땅인 독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주권을 수호하겠다. 뉴욕위안부기림비는 일본과 전세계간의 문제다. 미국에서 일본의 반인류적인 범죄를 알리고자 세우는 것으로 이에 동포들이 장한 일을 하고 있다. 동포는 한국의 가장 큰 자산이다. 언어장벽과 문화적 차이를 성실함, 열정으로 극복하고 미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시민사회로 성장했다”고 말한다.
“뉴욕동포들이 한국에 송금한 돈이 수백만 달러이다. 어딜 가든 잘 살 수 있는 적응력을 키워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파이를 키워나간 동포들은 진정한 애국자다. ”고 강조하는 그는 뉴욕에서 일하며 한인들과 인연을 맺게되어 무척 기쁘다고 한다. “프린스턴이나 커네티컷 지역에 가보니 1.5세 회장들로 세대교체가 되고 있었다. 조만간 뉴욕도 그럴 것이다. 1세의 노하우, 물질적 후원을 바탕으로 2세들의 활동이 더욱 활발해지고 동포사회와 미국, 한국과 미국간의 다리 역할을 해주기 바란다. 특히 뉴욕 유수의 디자인 스쿨에 한국인이 40%라니 한국인에게는 열정적이고 창조적인 DNA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아직 뉴욕이란 대도시의 매력에 대해서 잘 모르기도 하고 늘 공관과 주류사회, 한인사회를 오가며 일하다가 시간이 나는 주말이면 자연 속으로 들어간다.
좋아하던 골프를 잠시 접고 베어마운틴 세븐 레이크 등지로 드라이브를 나가 자연 속에서 호연지기를 느낀다. 넉넉한 자연의 품은 그의 어깨에 짊어진 막중한 임무와 책임감에 대한 부담을 덜어준다.
“오전9시부터 오후5시까지 공관문은 언제나 열려있다. 어떤 협의사항이나 건의사항이 있으면 방문해주기 바란다”, 그의 방문은 활짝 열려있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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