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의 군중도, 불멸의 사자후도 없었다. 연사의 목소리는 어눌했고, 파워포인트가 없었다면 완전 독해하기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강연장의 열기는 시저의 연설장보다 뜨거웠고 감동의 깊이는 링컨기념관 앞에서 ‘I have Dream’을 외치던 킹 목사보다 더 가슴 벅차고 사무쳤다.
집념과 인내로 뇌성마비 장애를 극복한 가녀린, 그러나 강인한 한 여성의 잔잔한 이야기가 세모의 워싱턴 사람들을 울리고 웃겼다. 버지니아 훼어팩스의 성정바오로천주교회(주임신부 정인준)는 이날 낮 1시부터 정유선 조지 메이슨대 교수 초청 특별강연회를 개최했다.
정 교수는 “어릴 땐 놀림 받거나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대할 때면 죽고만 싶었다”며 “그러나 부모님의 무한한 사랑과 의지 덕분에 바로 자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말도 제대로 못하는 제게 어머니는 ‘넌 뭐든 할 수 있어’라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셨고 아버지는 교수가 되라며 꿈을 심어주셨다”며 “나는 한 번도 장애인이란 생각을 해본 적 없었다”고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바르게 키워준 부모님께 감사를 드렸다.
정유선 교수(41)는 세 살 때 황달로 뇌성마비 장애를 갖게 됐으며 한국에서 고교를 마치고 도미해 조지 메이슨대를 다녔다. 2004년 한국인 뇌성마비 장애인으론 처음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모교에서 특수교육의 일환인 보조공학을 가르치고 있다. 올해에는 이 대학의 최우수 교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정 교수는 “운명도 자신의 의지로 극복할 수 있다”면서 장애인들이 좌절하지 않고 바로 설 수 있는 조건으로 가족의 역할과 함께 스스로의 의지, 사회의 인식, 이 세 가지를 가장 중요하다고 꼽았다.
“저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고 나는 할 수 있다는 주문을 걸며 살아왔습니다. 제 두 아이들한테도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기 위해 먼저 제가 당당한 사람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제가 한국에 살 때는 길을 가면 10명 중의 7-8명이 쳐다봤습니다. 미국에 유학 오니 3-4명만 뒤돌아봅니다. 사회의 법과 인식도 장애자들이 바로 서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정유선 교수는 마지막으로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시간은 흘러간다”며 “우리가 기적이라 부르는 건, 간절하게 원하는 그 고지를 향해 열심히 다가가는 사람에게 주는 인생의 선물”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강연회는 모녀의 다정한 토크쇼 같았다. 어머니 김희선 씨와 빨간 장미가 놓인 테이블에 앉은 정 교수가 장애를 딛고 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면 어머니는 믿음과 간절한 기도로 그 역경을 이겨내고 뒷바라지 한 사연을 곁들였다. 아린 시절의 지난 이야기에 눈물도 쏟아질 법했지만 모녀는 끝내 유쾌함을 잃지 않았다. 본당을 가득 메운 방청객들은 기립박수로 모녀의 인생승리에 화답했다.
강연 후에 김희선 씨는 언니인 김천숙 씨와 자신들의 히트곡인 ‘울릉도 트위스트’와 ‘목석 같은 사내’를 불러 장내를 다시 달궜다. 두 자매는 60년대를 풍미한 원조 걸 그룹인 이 시스터즈의 멤버였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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