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저지 한인여성들에 ‘Y정신’ 심어...AWCA의 산증인
▶ 플러싱 Y 설립멤버...뉴저지로 건너와 회원10명 주부클럽으로 시작
미주 한인사회에 여성들의 YWCA 정신을 심는 일은 대체로 성공적이다. 여성들의 사회참여와 봉사활동을 근간으로 하는 Y정신이 뿌리를 굳게 내릴 수 있었던 것은 한인여성 특유의 근면과 맹렬성이 신앙심과 결합해 투영된 결과라고 생각된다.
뉴욕일원에서 독립적이고 모범적인 단체 운영을 보이고 있는 뉴저지 AWCA와 퀸즈 YWCA는 한인 여성파워가 지난 30여년간 일궈낸 우리 커뮤니티의 소중한 자산이다.
퀸즈 YWCA에 관해서는 창립의 산 증인 홍인숙을 통해 지난해 8월16일자 본 시리즈에서 상세한 기술을 한데 이어 이번 시리즈는 뉴저지로 건너와 또하나의 Y정신을 구현한 AWCA 창설자 장화인의 개척 스토리이다.
금년으로 창립 33주년을 맞은 AWCA가 퀸즈 Y와 다른 점이 있다면 미국 Y의 지부로서 출발한 것이 아니고 주부클럽이라는 자생적인 단체를 통해 지역내 아시안 여성들의 리더십으로 성장했다는 점이다. 한국어 명칭은 지역 현실에 맞게 뉴저지 여성사회봉사센터로 되어 있지만 본래의 영문 명칭은 Asian Women’s Christian Association이다. 다문화 사회에 걸맞게 현재 이 단체를 통해 혜택을 받고 있는 아시안 여성들의 비율은 125(한국) : 80(중국) : 50(일본)이다.
AWCA 프로그램 중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는 분야는 홈케어와 패밀리 카운슬링(가정상담소) 등 사회봉사 서비스 분야이다. 특히 센터 내 별도로 설치된 가정상담소는 뉴저지 정부로부터 인정받는 잘 알려진 기관이기도 하다. 창립 당시 목표했던 만큼의 성취를 이룬 분야이지만 또다른 하나의 축 여성 리더십 프로그램은 앞으로도 계속 발전시켜 나아가야 할 과제이다. 리더십은 시대에 따라 그 형태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항상 그 변화에 따라가며 발전시켜야 할 컨티뉴잉 에주케이선이다. 현 지도부인 원혜경 회장-제미경 사무총장(방송인 출신) 체제가 이를 잘 감당할 것으로 기대한다.
앞으로 AWCA가 지향하는 방향은 시대에 맞는 여성 리더들을 성장시키면서 카운슬링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다음으로 청소년 프로그램이 성공을 거두면 이제까지의 노인 프로그램 우선에서 탈피해 모든 연령계층(올 에이지)을 카버하는 봉사단체로 거듭나게 된다. 최근 어린이들로 구성된 ‘아이소리모아’ 합창단이 활성화되면 젊은 부모들도 자연스레 합류할 것이기 때문에 다음 세대를 향한 어프로치가 되는 셈이다. 매년 25명 선으로 선발해 무료로 가르치는 SAT와 장학금 프로그램도 청소년들의 활력소가 되고있다.
AWCA의 모태라고 할수 있는 뉴저지Y 주부클럽의 리더 장화인의 일생은 한마디로 Y와 더불어 산 인생이다. 이화여대 재학 중 전국 YWCA 대학생 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여성들의 사회참여 리더십에 앞장섰던 그는 미국에 와서도 Y운동과 신학교 공부로 일관했다.
“이민 초기 브루클린에 살면서 플러싱 Y의 설립 멤버로 참여하다가 뉴저지로 이사와 보니 여성들의 활동이 전혀 없는 거예요. 그래서 회원 10명으로 만든 것이 주부클럽이었어요. 주부클럽은 교회에서 배운 말씀을 사회에서 프랙티스하는 실천운동으로 온전히 Y의 정신 아래 뭉쳤습니다.”
1980년 프랭클린 레이크스에서 가정주부들이 주로 낮시간을 이용해 봉사를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운영이 어려워 모두 자원봉사로 참여했다. 여성들의 리더십을 기르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회의 진행법을 익히고 바이블 스터디, 기타, 오일 페인팅도 배웠다. 멤버 중 탈렌트가 있는 사람이 선생님이 되었다.
그레이스 교회를 빌려 만든 여성합창단이 너싱홈 방문공연을 했고 여력을 키우면서 커뮤니티에 근접한 포트리 쪽에 공간을 마련, 회원운동을 전개했다. 연회비 200달러에 회원 200명 확보 캠페인으로 펀드를 마련했고 당시 인기가 있었던 수지침 클래스에는 2,000명 가까운 수강생이 몰렸다.
2003년 홈케어를 시작하고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으면서 재정자립이 가능해졌고 자체 회관도 마련했다. 홈케어를 통해 정부에서 메디케이드 환자들에게 나오는 지원을 활용해 여성들의 직업창출 효과를 얻는 한편 AWCA가 뉴저지에서는 처음으로 서티피케이트(자격증)를 줄 수 있는 한국기관이 되었다. 76시간 트레이닝을 마치면 가정간호 보조원 자격증을 받게 되고 현재 125명이 트레이닝을 받고 있다.
단체 발전을 위해 기부한 사람들도 많았다. 주이시 커뮤니티센터 같은 역할을 해주기 바라면서 한인 밀집지역에 빌딩을 사준 독지가가 있었지만 지역 자치단체의 반대로 실패한 케이스도 있었고 2,000달러, 3,000달러, 1만달러를 쾌척한 기부자들이 있었다. 연례만찬 모금 디너를 통해서는 매년 15만달러 정도 펀드레이징이 가능한 저력을 갖추었다.
지금까지 AWCA를 이끌어온 주역들을 보면 초대 장화인에 이어 역대 회장으로 장기정 박경원 주금연 백희수 강윤희 위옥환 장화인 정미경 유방원 윤미옥 원혜경으로 이어졌고 역대 총무, 사무총장은 위옥환 주금연 장화인 홍영선 이경 조정복 유현주 박현림 전봉숙, 그리고 제미경으로 이어졌다.
AWCA의 살아있는 역사 장화인은 1970년 가족과 함께 이민, 초기 2년동안 세탁소에서 일한 것을 제외하고는 AWCA 운동과 세군데의 신학교인 프린스턴, 예일, 드루 등에서 12년간 신학공부 끝에 목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브롱스한인교회에 출석하던 1993년 미국교회와 합병하는 과정에서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장로로 피선됐고 현재는 뉴저지장로교회에서 봉사하고 있다. 2년전 AWCA 실무진에서 은퇴한 이후로는 뉴욕신학대학에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개나리 꽃이 다시 필때’, ‘하나님께 이끌려 산 삶”등 10권에 가까운 저서를 갖고 있다.
심장내과 전문의로 이름 난 남편 이원규 장로 역시 학생시절부터 YMCA 운동에 헌신했던 인물로 이 커플을 한국 YMCA와 YWCA의 결합이라고도 부른다. 한국 초기의 정형외과 의사 이용설 박사의 맥이 아들 이근영-손자 이원규로 이어졌고 이원규의 장남 이형일(잔)이 심장외과의를 계승함으로서 4대 의사가문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차남 흥철(찰스)과 딸 형숙(줄리)은 변호사로 활약하고 있다.
여성운동가로서 한인사회내 남녀평등에 대해 장화인은 ”젊은 세대에서는 동등성이 잘 이뤄지는 것을 엿볼 수 있으나 아직도 1세들의 사회는 불평등 속에서 그냥 그렇게 세상을 살아갈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여성 대통령의 탄생은 한국이 세계수준에 오른 것으로 인정받을 만한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축하했다.
조종무<뉴저지 고문/ 국사편찬위 해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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