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이정의 문화읽기
▶ 메이 정 <앤드류샤이어갤러리 관장>
어느 곳으로 떠나든지 여행은 삶의 씻김굿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한 번쯤 익숙한 것들, 우리를 규정짓는 가족, 직장, 혹은 사람들에게서 슬쩍 비켜서서, 아주 낯선 곳에서 나를 낯설게 하고 싶을 때 아프리카처럼 알맞은 곳이 또 있을까?
이제는 문명 속으로 실종되어 잃어버린 그 옛날의 사람들이 가난 속에서도 편안한 호흡으로 살아가는 곳. 막힘없이 펼쳐진 하늘과 대지, 그곳은 거대하다. 암스테르담에서 갈아탄 비행기가 아프리카 대륙의 상공으로 들어서면 이내 커피 같은 검은 땅이 휘휘 저으면 사라질 것 같은 구름아래 펼쳐지는데 그 끝 간 데 없는 거대함 속으로 나 정도는 금세 자취도 없이 흡수될 것 같다.
몇 번의 경비행기, 소형 버스 등으로 갈아탄 후 도착한 작은 마을 어귀에서 귀를 둥글게 뚫어 구멍을 낸 마사이들이 붉은 옷깃을 휘날리며 맞아주었다. 불과 백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태어난 내가 아프리카의 마사이족을 만날 일을 상상이나 했을까? 교통과 산업의 발달이 이렇게 한 개인을 드넓은 세상과 조우할 수 있게 해주니 놀라울 뿐이다.
바람에 삭아 내린 원색 판잣집들과 나부끼는 색색의 남루한 빨래, 그리고 너무도 생뚱맞게 칠해져서 마치 무언의 농담 같은 페인트 색들,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버려진 깡통이나 골판지, 단추, 노끈 등으로 아름다운 뭔가를 만들어 집을 장식한 그들의 표현력과 손재주이다. 햇빛 아래 을씨년스럽게 드러나 있는 무너진 곳간 벽에도 기하학적 문양의 바구니, 노끈으로 만든 새, 색색의 콩을 꿰어 만든 장신구, 골판지를 잇대어 만든 벽걸이가 뉴욕 첼시의 유명 갤러리에 전시된 작품 이상으로 빛나고 있으니 온갖 물질의 결핍과 가난에도 불구하고 이곳 무명의 예술가들은 자연을 통해 생명의 시원을 경험하고 표현하고 있다.
특히 다음 행선지로 들fms 짐바브웨는 조각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으로 유명한 쇼나부족이 인구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데 밑그림을 그리지 않고 오로지 정과 망치만으로 쪼아내어 돌과 자연에 깃들어 있는 영혼을 불러낸 듯한 그 조각들은 “돌 속에 이미 내재한 형상을 자유롭게 했을 뿐이다”라고 한 미켈란젤로 만년의 작품들과 너무도 흡사하다.
20세기 큐비즘으로 이행하는데 선구적인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는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은 그가 당시 아프리카 민속조각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며 이러한 예는 마티스나 브랑쿠지에서 자코메티의 조각에 이르기까지 20세기 미술사에서 너무도 쉽게 발견된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서양 미술과의 형태적인 유사성만을 강조함으로써 아프리카 미술의 제의적 측면이나 서사적인 내용을 놓친다면 그들 미술의 본모습이 가려지게 된다는 것이다. 밤의 횃불 아래 추는 그들의 원시적 춤과 소리부터, 몸에 그린 문신에 이르기까지 모든 표현 속에는 일상과 생을 조화롭게 이해하고자 하는 그들의 주술적이고 서사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자연이 인간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거대한 자연 속에 침잠함으로써 우리 존재의 쓸쓸함이 회복되는 곳.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곳에는 조화로운 그들의 질서를 통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자아도취적 수식을 무색하게 하는 온갖 동물들이 우리를 위한 동물원의 전시품이 아니라 우리와 생김새가 다를 뿐 동일한 생명의 노래를 부르며 살아가고 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도 무한히 있었고 내가 죽은 뒤에도 무한히 이어질 그곳. 국제공항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초라한 킬리만자로 산자락 아루사 공항을 떠나기도 전 벌써 난 보랏빛으로 이동하는 아프리카의 구름이 그립고, 그 흘러가는 풍경 한 귀퉁이에 내가 잠시 있었음을 오래오래 기억하게 될 것을 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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