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17일 한국 외교통상부 상공회의실엔 60여명의 미국인들이 모여 연세대학교 하연섭 교수의 한국 교육에 대한 세미나에 참여하고 있었다. 여기 모인 미국인들은 1966년부터 1981년 사이에 평화봉사단 (Peace Corps)의 일원으로 한국에서 그들의 젊은 시절 중 최소한 2년을 한국 문화를 배우면서 한국의 영어 교육과 건강교육에 열정을 쏟았던 사람들이었다.
평화봉사단은 케네디 대통령의 아이디어로 1961년부터 현재까지 주로 개발도상국가에 가서 영어교육, 보건교육, 학교 설립 등을 도우며 두 나라의 문화를 서로 배우고 이해를 증진시키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한국에는 1966년에 첫 봉사단을 보냈고 한국의 경제적 자립을 인정한 결과로 1981년에 마지막 봉사단을 보냈다. 전임 주한미국대사 캐서린 스티븐스가 평화봉사단원이었음이 알려지기도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한국정부가 평화봉사단원을 초청, 한국의 발전상을 보여주며 그들이 2년간 일했던 곳을 다시 방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몇년째 실시하고 있어 이런 자리가 마련된 것이었다.
난 대학 졸업 후 첫 발령지에서 나보다 일년 전에 영어교사로 와 있던 단원과 결혼을 했고 결혼 후엔 단원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쳤기에 혈기가 넘쳤던 20대의 봉사단원들의 2년이 어떻게 소요되었는지를 가까이에서 볼 수가 있었다. 그들에겐 항상 배움의 태도와 가르침의 자세가 가득했다. 대부분의 단원들이 서울을 벗어난 시골에 있는 학교나 보건소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60년 말이나 70년 초기의 한국 시골을 기억해 본다면 얼마나 많은 불편함을 겪었을까는 짐작이 가능하며 특히 키 큰 미국인들이 낮은 문지방에 머리를 부딪치는 일은 다반사였고 시골 버스에선 아예 머리를 공기 환기통에 빼어놓고 서 있는 단원들도 있었다. 어떤 단원은 약국에 치약 사러 갔다가 ‘치’ 발음을 못해 ‘쥐약’을 사 왔다는 일화도 있었다.
이렇듯 낯선 언어와 문화를 배우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보내는 반면 그들은 더 많은 시간을 우리들을 가르치는 데 사용하였다. 가장 가까이는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가르쳤고, 의학과 기술을 전달했으며 가장 소중한 인간애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 시절 우리는 받는 자였으며 배우는 자였고 그들은 주는 자였으며 가르치는 자였다.
그런 그들이 외교통상부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한국의 교육제도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난 후 단원들의 토론 중 이런 얘기가 나왔다.“미국은 한국의 교육제도에서 과연 배워야 할 점이 무엇인가를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된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내 머리 속에서는 환희의 노래가 퍼지기 시작했고, “그래 바로 이거야, 우린 이제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는 수준이 된거야” 하면서 어깨를 한층 더 세우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하 교수의 말에 의하면 한국 선생님의 초봉이 세계 4위이며 15년 경력소유자의 경우엔 단연 세계 1위라 하였으며 일산에 있는 장애인 학교(경진학교)를 견학 했을 땐 그곳 유치부는 장애자와 정상아동이 같이 다니는데 정상아동이 입학할 수 있는 비율이 10:1 이라는 설명을 듣고선 마치 다른 나라에 와 있지 않나 하는 기분이었다. 장애인들에 대한 시선이 이렇듯 달라져 있다니 정말 흐뭇했다.
빌딩과 패션과 소비로 가늠되는 물질적인 성장보다는 이제는 국민의 의식과 제도가 인간으로서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정신적인 성장이야말로 바람직한 성장이라 믿는다. 며칠 전 라디오에서 한국 사람이 봄철의 황사 현상을 줄이기 위해 고비사막에 나무를 심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는 방송을 들으면서 우리 민족에 대한 정신적인 성장의 일면을 보는듯 하여 뿌듯한 마음이 따스하게 솟아남을 느꼈다.
이제 우리는 받는 자가 아니라 주는 자가 되었으며 배우면서 가르치는 자가 되었음에 은근한 자부심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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