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가끔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하곤 한다. 과연 내가 설 땅은 어디냐 라고 말이다. 이런 질문은 인간은 행동하는 존재라 스스로가 질문을 하는 자유인(自由人)이기 때문이다. 그의 자유란 내면적인 것이기에 ‘내가 설 땅은 어디냐’고 자문해 보는 것이라 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이 땅에 자기가 설 땅을 갖게 될까? 음식물을 입에 넣기를 거부한 손이 있으므로 그 몸에 큰 문제가 되고 모든 몸의 지체들이 불평을 터뜨렸다는 우화(寓話)가 있다.
이 우화는 인간이 사는 사회와 연관해서 현 사회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조직체로 설명을 할 때 자주 인용된다.
한편 이 세계에서 스스로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던지는 경우와 또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들 사이에 자기를 참여시키는 것에 의하여 자기의 설 자리를 마련한다는 것이다.
특히 현대의 젊은 사람들은 나날이 팽창해 가는 이 거대한 사회 속에서 어떻게 자기를 끼워 넣어 ‘내가 설 땅’을 만들 수 있을까 라고 고민하며 이리저리 살피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부조리의 한 단면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출생하기 전에도 세상은 이와 같이 계속 팽창하고 있었고 우리들이 죽은 후에도 세상은 역시 그렇게 나아갈 것으로 생각이 든다.
그러나 현실에 사는 우리들은 자기가 설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인구가 좀 감소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내 마음대로 생각하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 부조화 속에서도 의욕에 넘치는 젊은이들은 최선을 다해 몸부림치며 자기 설 땅을 찾다가 절망하고 이 부조리한 사회에서 이탈하기 시작하는 것으로 큰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는 것이다.
동서를 막론하고 이 넓은 땅 어느 구석이라 할지라도 나를 위해 준비해 둔 땅이라고는 아무데도 없는 현실 속에서 자기 안에 뻥 뚫린 허무와 좌절을 안고 “내가 설 땅은 어디냐”고 절규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젊은 사람들만의 문제 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절규이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설 땅을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몰려다닌다. 내가 서야 할 새로운 땅이 어디 없을까 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땅을 생각하며 새로운 풍요로운 땅을 기다리며 산다.
부귀영화, 새로운 사회, 새로운 발명품, 새로운 지도자 등등 애타게 새 땅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기막히게 기쁜 소식이 여기에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과연 내가 이 자리에 설만한 사람인가 자신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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