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네쿠보 아케미 지음
정순분 옮김ㆍ김영사 발행
일본의 ‘천황’은 한국인에게는 달갑지 않은 존재다. 강화도조약을 시작으로 청일전쟁, 아관파천, 을미사변, 러일전쟁, 을사조약, 대한제국 강제병합 등을 몰아 부친 메이지(明治) 일왕과 그를 이어 만주사변에 아시아태평양전쟁까지 일으켰다 결국 연합군에 항복한 쇼와(昭和) 일왕에 대한 기억이 일본 천황의 거의 전부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와 ‘미래 파트너십 선언’을 해 한일관계가 순풍에 돛 단 듯 보이던 시절이 있었다. 국내 언론들 여럿이 그때까지 써오던 ‘일왕’이라는 표현을 일본이 쓰는 대로 ‘천황’으로 바꿨지만 지금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일왕’으로 다 돌아왔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일본을 내려 잡아 보려는 한국인들에게는 “천황은 무슨 천황”이라는 식의 거부감이 적지 않다.
<천황의 하루>는 이런 국내 정서를 거슬러 마치 조선의 임금과 그 주변을 미시적으로 살피듯 일본 ‘천황’의 일상을 소개하려는 시도만으로도 눈길이 간다. 중학교 교사이면서 일본 근대 궁정의 의식과 예법을 연구해온 저자는 ‘천황’을 직접 보좌한 사람들의 회상록과 수기 등을 토대로 일본이 근대화의 문을 열고 동시에 제국주의 침략에 나선 메이지 일왕의 하루를 복원했다.
일본 최초의 근대화된 궁전인 메이지 궁전은 일왕이 공적 행사나 정무를 보는 ‘궁전’과 사적 공간인 ‘나이기(內儀)’로 구성됐다. 일왕은 오전 8시 잠을 깨고 이때 기상을 알리는 외침으로 왕실의 하루가 시작된다. 자리에서 일어난 일왕은 시의(侍醫)에게 몸 상태를 진찰받고 양치질과 세수를 했다. 점심부터는 왕후와 함께 먹지만 아침은 혼자 먹었다. 품위와 격식을 갖춘 일본식 정찬인 가이세키 요리였을까, 아니면 적은 양의 정갈한 상차림이었을까. 둘 다 아니다. 서구문화가 본격적으로 유입된 메이지 시기의 일왕과 왕후의 아침은 카페오레 한 잔에 빵 한 조각이었다. 점심과 저녁은 갖은 음식이 큰 그릇에 푸짐하게 담겨서 나온다. 왕은 거기서 일부만 덜어서 먹고 나머지는 신하들에게 하사했다. 업무를 보기 위한 출어는 오전 10시 30분. 메이지왕은 이때 일본 전통옷에서 육군복으로 갈아 입었다.
중세식 계급사회의 전통이 그래도 남아 있는 나이기를 자유분방하게 활개치고 다닌 건 일왕도, 그를 받드는 여관(女官)들도 아니었다. 죽어서 모두 하라주쿠의 비구니 절에 묻힌 애완견들이었다. 이밖에도 나른한 오후의 졸음을 내쫓기 위해 청소를 하거나 게임을 하는 시녀ㆍ시종들의 모습, 일왕의 반신욕 모습 등 메이지 일왕의 하루 일과를 요모조모 그렸다.
일본 사람들은 드라마 ‘대장금’이 인기를 끈 뒤 조선의 궁중문화에 적잖은 호기심을 보였다. 어설프고 얄팍하지만 이런저런 지식도 갖고 있다. 하지만 한국인은 일왕에 대해 그 정도의 관심을 갖게 될까. 그를 다룬 일본 드라마나 영화가 한국인들 사이에 회자되기 전까지는 어려울 테고, 그런 날이 과연 올 것인지는 알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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