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선
나는 지금 고립되어 있다. 차가운 유리창 밖으로 펼쳐진 풍경… 눈은 눈으로 이어지고 나뭇가지 사이로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은빛 눈부신 눈보라가 하늘을 떠돈다.
호세.. 그는 십년을 한결같이 나를 대신하여 우리집을 관리해 준 사람이다. 그는 정직하고 성실하며 마음 넉넉한 사람으로 고용 관계를 떠나 언젠가 부터 우리는 이미 친구가 되어 있었다. 남들보다 유난히 이른 나의 출근 시간을 알고부터는 십년을 한결같이 늘 첫 새벽에 제일 먼저 우리집 눈을 치워주곤 했다.
그러나 이번 폭설 예보는 심상치 않아서 나는 전날 밤에 일부러 전화를 해 이른 아침에 눈을 치워 달라고 부탁을 했다. 사람 좋은 그는 그 밤에 달려와 저녁내 쌓였던 눈을 치워줬고 다음날 아침 일찍 오겠다는 고마운 약속을 남기고 갔다. 그러나 이튿날 차고 문을 여니 밤새 온 눈이 차고 문 중턱까지 그대로 수북이 쌓여 있었다. 운전은커녕 한 발짝도 디딜 수가 없었다.
순간 짜증이 밀려왔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가 조금 전 출발을 했으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나 두어 시간이 지나도 그가 오지 않았고, 잠시 후 그로부터 고속도로 곳곳이 폐쇄되어 있어 시간이 좀 더 걸리겠다는 응답이 왔다. 서둘러 직원들에게 휴무를 알리고 그를 기다리기로 했다.
창밖으로 바람소리가 나무숲을 지나 계곡으로 빠져 나가고 있었다. 그 이후로도 곧 오겠다며 나타나지 않는 그와 빨리 와달라고 부탁하며 짜증을 달래는 나의 보이지 않는 실랑이는 계속되었다. 끝내 나타나지 않고 시간을 미루던 그가 오후부터는 전화조차 받지 않았다. 현관 밖으로 한 발짝도 내딛을 수 없는 이 어이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기대했던 바깥세상을 향한 기대감이 무참히 꺾이는 순간이었다.
한편으로는 10년을 친구로 믿어왔던 그에 대한 실망감과, 그동안 이어졌던 인연의 끈이 끓어졌다는 허탈감마저 들어 절대의 고립감을 느끼게 했다. 숲속의 바람이 골짜기의 바람을 부르고 다시 그 바람이 눈보라를 일으키는 겨울 하늘은 고요하고 무심할 만큼 적막했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그를 기다리는 동안 책 한 줄 읽을 수 없을 만큼 조바심이 들어 전화기만 만지작거렸으나 더 이상 기대감을 버리니 오히려 편안해 졌다. 스스로 택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마음을 바꾸니 여유가 생기고 비로소 나무 가지에 쌓이는 눈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내와 사진기를 들고 눈밭에서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어주며 스스로 선택해 떠나는 휴가라는 이름의 시간으로 만들고 있었다. 큰 눈 오던 날… 나는 이렇게 마음안의 두 가지 세상을 보았다.
그런데 밤늦게 그에게 미안하다며 전화가 왔다. 내일 새벽에 오겠노라고… 나는 그의 말을 믿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눈 덮인 겨울… 그 씁쓸한 고립의 기억으로 부터 벗어나고 친구를 되찾는 기쁨을 누릴 것이다. 설령 그가 또다시 약속한 내일 오지 않더라고 그의 말을 믿음으로써 이 겨울은 충분히 따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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