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인이 어느 집에 놀러 와 두 여인이 얘기를 시작했다. “댁의 며느리는 잘 들어왔나요?” 그러자 다른 여인이 “우리 며느리는 너무 게으르고 일도 집안일도 잘 못한다”고 하면서 “며느리가 잘못 들어왔다”고 하소연했다.
이번에는 “딸은 시집 잘 갔느냐”고 묻자 “예, 우리 딸은 시집을 참 잘 가서 물 한방울 손에 묻히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주 잘 살고 있다”고 말했다.
며느리는 남의 딸이니 와서 일하고 고생하는 것이 당연하고, 자신의 딸은 놀고 먹으니 시집을 잘 갔다는 말이다.
같은 여자인데도 딸은 내 편, 며느리는 남의 편 이라는 생각이 같은 상황인데도 대답이 틀리게 나오는 것이다. ‘며느리가 미우면 버선 뒷굼치도 밉다’는 말이 있다.
내 아들한테 시집온 며느리를 내 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저 예쁠 것이다. 그런데 남의 딸 이라는 이중잣대로 생각하니 사사건건 못마땅하고 미운 것이다.
내 딸이 소중하면 남의 딸도 소중하다. 그 부모한테는 더 없이 귀한 딸이다. 우리는 너무 남의 것 내 것을 따진다. 내 핏줄 남의 핏줄 심지어 한국에서는 한국인에게 입양이 어려워지자 모두 다른 나라로 입양을 보낸다는 소식도 들린다.
오늘날 수많은 한국인이 다른 나라에 입양돼 잘 살아 성공을 거둔 예도 있지만 가끔은 그 현실에 적응이 안되어 타락의 길로 빠진 얘기도 종종 듣곤 한다.
‘나와 남’이라는 이분법적 잣대는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이기심이다. 남의 입장은 생각지 않고 ‘나’ 라는 존재만 두각 시키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이 쓰는 용어에 “put yourself in my shoes”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라)는 말이 있다. 상대편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 보란 말이다.
그러면 답이 나온다. 왈가왈부 할 필요 없다. 언제나 내 입장만 생각하기에 불평불만, 불협화음이 나온다. 그런 사람은 어디를 가나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세상살이는 인간과 인간이 같이 더불어 사는 것이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고 한다. 다른 사람을 자기보다 천하게(낮게) 여기고 본인은 굉장한 지위에 있다는 우월감이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음을 비우고, 겸손해 질 때 우러름을 받게 되어 있다.
남들이 잘 낫다고 여겨야지 본인 스스로 우월감에 젖어 있으면 남들은 존경하지 않는다. 인간은 사회적인 규범 속에서 어울려 살게 되어 있다. 내 것이 중요하면 남의 것도 중요하다.
나를 너무 내세우기 전에 남의 입장에서 서서 한번 생각하면 이해하게 된다. 남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과 따뜻한 마음은 주위 사람의 마음을 감동되게 한다.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 점점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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