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선 <전 한인회 회장>
삶의 여정은 개개인에 따라 그 무게와 색깔이 다르지만 어느 한 순간도 중요하지 않거나 호락호락하지 않다. 수도 없이 오는 시련을 피하기도 하고, 운 좋게 넘어 서기도 하지만, 쓰러지고 패배를 인정해야 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다. 그래서 쌓아지는 경험을 사람들은 연륜이라고 부르고, 인정하고 받아들임을 순응이라 하며, 어떤 이는 더불어 함께하는 동행이라고도 한다.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마음 안에 묻어둔 가슴 아픈 사연 하나쯤 지니지 않은 이가 없겠으나, 수도 없이 들은 어느 지인의 이야기는 들을 때 마다 마음 한편이 먹먹해 진다. 미국땅에 처음 와서 겪은 기막힌 고생담은 이제 세월이 흘러 술 한 잔 기울일 때마다 무용담이 되어버렸지만 그가 마음 안에 묻어둔 상처는 굳은살이 되어 남아 있는듯하다.
하루 14시간이 넘는 일을 하고도 간신히 손에 쥐는 푼돈으로 만족해야 했던 시절, 쪽방에서의 삶을 살면서도 희망의 끝을 놓지 않았던 원동력은 가족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3년간 모은 돈을 가장 가까운 동료에게 송두리째 날려버리고 절망했을 때 가장이라는 책임이 없었더라면 삶의 의지를 잃었을지 모를 일이다.
오래전 인터넷에 소개된 한 개그맨의 강연을 본적이 있다. 다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인생의 짐을 함부로 내려놓지 마라’는 주제로 젊은 청중들 앞에 선 그는 지리산 등반 때 자신의 일화를 소개했었다. 자신이 지고 가는 배낭이 너무 무거워 벗어버리고 싶었지만 참고 정상까지 올라가 배낭을 열어보니 “먹을 것이 가득했다”며 “인생도 이와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쉽게 포기해 버리는 요즘의 젊은이들에게 공감이 되었던지 큰 박수를 받으며 강연을 마치는 그를 보며 무명의 시기를 극복하고 자기 분야에서 우뚝 선 그의 인생철학이 다시 보였었다.
요즘 들어 그의 말이 자꾸 생각난다. 몇 년째 이어지는 불황으로 세상 살기가 더욱 어려워지면서 많은 사람이 무거운 짐을 지고 힘들어 하는 것 같다. 이 땅에 이민 와 오랜 세월 고생 끝에 일군 삶의 터전을 스스로 접어야 하는 사람들의 현실이 마음 아프고, 한창 꿈에 부풀어 있어야 할 대학문을 나서는 젊은이들이 직장을 찾지 못해 한없이 처진 어깨가 안쓰럽고, 그걸 지켜봐야 하는 그들 부모들의 눈길이 안타깝다.
돌이켜 보면 아프고 시린 가슴 없이 살아 본 적이 있었던가? 따뜻한 봄날인가 싶다가도 끝 간 데 없는 미로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자신을 만나는 게 인생인 것 같다. 그러나 내 등에 업힌 고민과 가족이 더 이상 짐이 아니고 축복이 되는 날이 곧 오리라 믿는다. 아프리카의 어느 원주민은 강을 건널 때 큰 돌덩이를 진다고 한다. 급류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 등에 지는 무거운 짐이 자신을 살린다는 지혜를 깨우친 것이다. 지금 닥친 현실이 당장은 힘들더라도 등에 업은 삶의 무게가 나를 겸손하게 하고 터 큰 선물이 되어 올 때까지 용기를 잃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봄이 찬란한 빛이 되어 아침을 깨운다. 희망은 이런 것이리라.
끝으로 정호승님의 ‘내 등의 짐’ 이라는 시 한줄 소개한다.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겸손함과 소박함에 대한 기쁨을 몰랐을 것입니다./ 내 등의 짐 때문에 나는 늘 나를 낮추고 소박하게 살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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