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 목사가 1996년 미국 애틀란타올림픽에서 열여섯 나이에 북한의 첫 금메달(유도)을 따낸 계순희 선수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연합>
북한상대 3억달러 손배소송 ‘증거불충분’기각
“김 목사에 가해진 고문 입증할만한 직접적인 증거 제출 못해”
로버츠 판사, 상반된 해석 가능성 열어...원고에 ‘즉결항소권한’부여
중국에서 탈북자를 돕다가 2000년 1월 납북된 김동식(65) 목사의 고문살해 사건에 대한 북한 정권의 책임을 묻는 미국 연방법원 소송이 14일 기각됐다.미 연방 콜롬비아(워싱턴 D.C.)지방법원 리차드 W. 로버츠 판사는 이날 김 목사 가족이 북한을 상대로 낸 3억2,500만 달러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증거불충분으로 재판권한이 없다며 이 같이 판결했다.그러나 로버츠 판사는 이번 판결의 근거가 된 증거에 대해 자신의 법률해석과는 상반된 해석의 가능성이 충분함을 인정하고 원고에게 신속한 항소 권한을 부여하며 최종판결을 유보했다.
■가족의 소송
이번 소송은 김 목사의 동생 김용석(캘리포니아 거주)씨와 아들 김한(미주리 거주)씨가 2009년 4월8일 북한과 북한 당국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며 시작됐다.김 목사 가족은 소장에서 김 목사가 “북한 공작원들에 의해 중국에서 북한으로 끌려간 뒤 수용소에서 불법감금과 고문을 당하고 굶겨져 죽었다”고 주장했다.
또 “김 목사의 납치는 이를 목적으로 북한과 중국의 국경도시인 중국 옌지(연길)에 파견된 북한 보위부 요원들에 의해 행해졌다”며 피해 보상금 2,500만 달러와 징벌금 3억 달러 등 총 3억2,500만 달러 손해배상을 청구했다.법원기록에 따르면 소장을 접수한 법원은 2010년 1월14일 국제우편 DHL을 통해 북한의 박의춘 외무상 앞으로 영문과 한글 번역본 소장, 그리고 북한이 60일 이내에 소송에 대한 입장을 법원에 제출하도록 명령한 소환장을 전달했다.
그러나 북한은 소환장에 응하지 않았고 법원은 같은 해 5월21일 북한이 소송대응 권한을 포기했음을 확인하는 ‘궐석’(Default)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김 목사 가족은 2011년 4월12일 법원에 ‘궐석재판’(Default Judgement) 신청과 궐석재판에서 북한의 책임을 입증할 ‘진실확인 제안서’(Proposed Finding of Facts)를 제출했다.
■궐석재판
김 목사 가족은 또 궐석재판을 통한 법원의 최종판결을 얻어내기 위해 ‘진실확인 제안서’를 뒷받침 하는 증거로 북한 전문학자, 인권운동가, 탈북자들의 진술서와 관련 정부기관 및 민간비영리단체 보고서들, 언론보도 기사들, 김 목사 납치 사건에 가담한 북한 공작원을 형사 처벌한 한국 법원 재판 기록 등 방대한 자료를 법원에 제출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담당한 로버츠 판사는 지난 해 8월17일 김 목사 가족에게 소장의 주장을 입증할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추가 증거를 제출토록 명령했다.
로버츠 판사는 구체적으로 고소인들이 제출한 증거들이 “김 목사가 북한 수용소에 비인간적인 상태로 수감돼 육체적, 정신적 고문을 당했다”는 주장을 입증하기에 불충분하다고 지적했다.그는 특히 법이 규정한 ‘고문’(Torture) 피해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김 목사가 북한에서 실제로 구타를 당하고 비인간적인 학대를 당한 사실을 확인하는 증거를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추가증거 제출
이에 따라 김 목사 가족은 2월1일 기존의 ‘진실확인 제안서’를 대폭 수정한 92 페이지 분량의 개정 ‘진실확인 및 법정판결 제안서’(Proposed Findings of Facts and Conclusions of Law)를 법원에 제출했다.
또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북한이 제도적으로 정치범 수용소에서 저지르는 인권범죄를 실제로 체험한 탈북자 신동혁씨의 대필 자서전, 북한 관리·교화소 실태를 조사한 민간비영리단체 ‘북한인권위원회’의 전문보고서와 관계자들의 진술서, 마르즈끼 다루스만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이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한 북한 인권 보고서 등을 추가 증거로 제출했다.
김 목사 가족은 ‘진실확인 및 법정판결 제안서’에서 이 같은 추가 증거들을 김 목사가 북한으로 끌려가 극심한 고문을 당하고 사망한 사실을 충분히 입증하는 ‘상황에 의한 증거’(Circumstantial Evidence)로 “만일 북한이 소송에 대응했더라면 재판에서 김 목사가 입은 피해가 명백하게 드러났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목사 가족은 이어 “북한이 이러한 사실을 세상에서 감추고 재판을 통한 원고의 진실확인 권리를 억눌렀다고 해서 그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법원 기각 판결
그러나 법원은 지난 14일 김 목사 가족의 ‘궐석재판’ 신청을 기각시켰다.
로버츠 판사가 이날 내놓은 ‘판결설명 및 판결문’에 따르면 김 목사 가족은 미 연방법원에서 북한 상대 소송을 가능케 하는 법률적 근거인 ‘외국주권면제법’(Foreign Sovereign Immunity Act:FSIA) 상의 ‘고문’이 실제로 가해졌음을 입증하지 못했다.
따라서 이번 소송을 다룰 법원의 재판권이 성립되지 않았다는 판결이다.
로버츠 판사는 구체적으로 “김 목사에 대한 북한의 처리 주장과 관련된 원고의 증거는 본 법정이 인정하는 FSIA의 기준 높은 ‘고문’ 정의를 충족시키기에 불충분한 것으로 보인다”며 “고문을 입증하기 위해 세워진 높은 기준을 만족스럽게 충족시키는 증거가 없을 경우 FSIA는 외국 주권을 상대로 한 소송을 다룰 수 있는 법원의 권한을 제외 한다”고 결론지었다.
로버츠 판사의 판결은 김 목사 가족이 고문을 비롯해 북한에서 행해지고 있는 제도적이고 극심한 인권 현황을 입증하는 충분한 증거를 제출했으나 이 같은 행위가 실제로 김 목사에게 가해진 사실을 입증하는 직접적인 증거를 제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단 로버츠 판사는 김 목사 가족이 제출한 증거가 김 목사에 대한 북한의 ‘고문’을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다는 결론을 내린 자신의 법률적 해석과 상반된 법률적 해석을 내놓을 수 있는 범위가 매우 넓다며 원고에게 ‘즉결항소권한’(Certified for Immediate Appeal)을 부여했다.
로버츠 판사는 또 김 목사 가족에게 ‘법원에 재판권이 없다’고 내린 자신의 판결에 대한 ‘중간판결항소권한’(Certified for an Interlocutory Appeal)을 부여하고 항소가 제기 될 경우 그에 대한 판결이 내려질 때 까지 소송 진척을 동결시킨다고 명령했다.
이는 김 목사 가족이 항소법원에 로버츠 판사의 ‘법원에 재판권이 없다’는 중간판결에 대한 항소를 제기해 승소할 경우 김 목사가 북한에서 고문을 당한 사실을 증거로 입증했음을 항소법원이 인정하는 것으로 로버츠 판사가 이번 내린 ‘궐석재판’ 기각 판결을 뒤집고 승소함을 의미한다. 법원 기록에 따르면 김 목사 가족은 25일 현재 로버츠 판사의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상태이다.
한편 미 연방법원은 2008년 12월 북한에 나포된 미 해군 프에블로호(1968년 1월)의 선원과 선장 가족이 북한을 상대로 제기한 FSIA 의거 소송에서 총 6,500만 달러 손배금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으며 2010년 7월에는 북한이 이스라엘 텔아비브 공항에서 발생한 일본 ‘적군파’(JRA)의 무장테러(1972년 5월)를 지원한 책임으로 미국인 피해자들 유족에게 3억7,800만 달러 손배금을 지불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신용일 기획취재 전문기자> yishi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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