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한탁 씨 드디어 딸 살해 누명벗고 풀려나나
이한탁씨가 1989년 딸 살해혐의로 체포되던 모습.
딸 살인방화 혐의 23년째 옥살이...재심청구 번번히 기각
지난해 항소법원서 받아들여, “단순화재”증언도 채택
검찰 반박증거 제출 못해...올해 안에 석방될 듯
“나는 내 딸을 죽이지 않았다. 억울하다.”
미국에서 자신의 딸을 살인방화 한 죄로 지난 23년간 감방 생활을 해 온 뉴욕 한인 이한탁(사진·79세)씨가 곧 풀려날 전망이다. 이 씨는 1990년 9월 펜실베이니아 주 법원에서 8일간 열린 재판 끝에 유죄 판정을 받고 수감됐다.
당시 이 씨의 변호인은 이 씨가 아니라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딸이 자살을 목적으로 불을 질렀다고 주장했으나 배심원들을 설득하지 못했다. 결국 법원은 이 씨에게 조기 석방이 불가능한 종신형을 선고했고 옥살이를 하게 된 이 씨는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한 기나긴 싸움을 시작했다. 그 결과 이 씨가 미 연방 펜실베니아 중부지방법원에 억울함을 호소하며 주 교도소, 주와 카운티 검찰을 상대로 제기한 ‘인신보호영장’(Habeas Corpus)의 최종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이 씨는 이달 중으로 예정된 법원 결정에 따라 20여 년 전 펜실베니아 주 법원 재판 당시 검찰이 제출한 치명적인 증거가 과학적으로 잘못된 것이었다는 결론과 함께 부당한 수감을 인정받아 드디어 석방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 딸 살해혐의로 체포
이 씨의 악몽은 1989년 7월29일 새벽 3시 뉴욕 순복음 교회(담임 목사 김남수) 헤브론 수양관에서 발생한 화재로 시작됐다. 뉴욕 퀸즈 엘머스트에 거주하던 이 씨(당시 55세)는 우울증 증세를 보이던 대학생 딸(당시 20세)을 기도로 치유해 보려고 함께 펜실베니아주 포코노에 위치한 이 수양관을 찾아 머물고 있었다.
그런데 그 곳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딸을 잃었다. 재판 기록에 따르면 잠을 자고 있던 이 씨는 불이 난 것을 알고 옆방에 묵고 있던 딸에게 달려갔다. 그러나 딸을 발견하지 못하자 “이미 피신했다”는 생각에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과 소방관들은 화재를 진압한 뒤 욕실에 있는 딸의 시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 씨를 살인방화범으로 체포했다.
이 씨는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했으나 경찰은 현장 출동 당시 이 씨가 딸을 잃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고 긴급한 상황에서 잠옷이 아닌 평상복 차림으로 밖에서 태연하게 불을 구경하고 있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또 이 씨 옷에서 화염물질이 발견됐으며 이 물질의 흔적이 화재가 발생 현장에서도 감지됐다고 밝혔다.
경찰은 딸의 시신을 부검한 결과 연기에 의한 질식사로 드러나자 이 씨가 딸을 성폭행 한 뒤 이를 은폐하기 위해 불을 질렀다는 결론을 내렸다. 따라서 먼로 카운티 검찰은 같은 해 8월4일 이 씨를 1급 살인과 방화 혐의로 기소청구 했고 대배심에 의해 기소된 이 씨는 펜실베니아 주 법원에서 진행된 재판 끝에 9월17일 유죄 판결과 함께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당시 이 씨의 재판에서 검찰이 제기한 가장 치명적인 증거는 이 씨가 화염물질을 방에 뿌리고 직접 불을 댕겼다는 것이었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전문 화재감식 결과였다.
■ 지루한 법정공방 시작
그 후 이 씨는 펜실베니아 주법원에 “변호인의 무능한 변호”를 주장하며 재심을 요청했으며 이어 재판부에서 열린 증거심문에서 뉴욕시소방국 화재수사관 출신 존 렌티니가 몬로 카운티 검찰과 경찰, 소방국 등이 문제의 화재 발생 후 실시한 방화 수사가 과학적으로 잘못됐다는 결론과 화재는 방화가 아니라 단순사고였다는 내용의 전문가 진술을 제출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씨가 증거심문에서 “변호인의 무능한 변호” 주장을 입증하지 못했고 따라서 주 정부가 입증한 방화를 뒤집을 만한 증거 역시 제출하지 못했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이 씨는 즉각 재판부의 판결을 주법원에 항소했으나 주법원은 재판부의 판결을 확인했다.
그러자 이 씨는 사건을 주 대법원에 항소했으나 주 대법원은 항소를 기각했다.
이어 이 씨는 1995년 몬로 카운티 법원에 주 정부를 상대로 문제의 화재 사건에 대한 방화 수사 기록 공개를 요청하는 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은 “주 경찰에 부당한 부담을 안겨준다”는 이유로 이를 불허했다.
따라서 이 씨는 2005년 몬로 카운티 법원에 개정소장을 제출하고 ▲새로운 방화수사 과학 기술에 따라 이 씨의 재판이 다시 열려야 할 것과 ▲항소 절차 과정에서 이 같이 진전된 새로운 과학 사실을 충분히 제출하지 못했다는 입장을 전개했으나 카운티 법원은 이 역시 기각했으며 그 같은 판결에 대한 항소, 또는 재심요청에 대해서도 주 대법원 판결을 상기시키며 허용하지 않았다.
■ 무죄 하변 드디어 받아들여져
이에 이 씨는 2008년 10월 연방 펜실베니아 지방법원에 펜실베니아 주 검찰과 몬로 카운티 검찰, 주 교도소를 상대로 부당한 수감을 주장하는 ‘인신보호영장’ 소송을 제기했으나 지방법원 역시 이를 기각했다. 법원은 이 씨가 주장한 새로운 방화수사 과학 기술이 이 씨의 무죄를 입증할 수 없으며 따라서 증거재심도 불필요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이 씨는 지방법원의 이 같은 판결이 부당하다는 소송을 연방 제3순회 항소법원에 제기했으며 항소법원은 지난 해 1월27일 이 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지방법원이 증거재심을 열도록 명령했다.
즉 항소법원은 이 씨가 첫 재판을 받을 당시 주 정부가 기용한 방화수사 방법이 그 후 과학적으로 진전된 새로운 방화수사 방법을 기용할 경우 다른 결과에 도달했었을 가능성이 렌티니 증언으로 충분히 입증됐으며 만일 그렇다면 이 씨가 부당하게 수감돼 있음을 의미 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따라서 항소법원은 지방법원이 이 씨가 제기한 ‘인신보호영장’ 소송을 재심하고 이를 위해 주 정부가 애당초 주 법원에서 이 씨의 유죄로 이어진 판결의 결정적인 증거가 된 화재수사 기록과 모든 관련 증거들을 이 씨 측의 검토를 위해 제출토록 명령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지방법원은 이 씨 사건에 대한 증거재심을 열고 그 결과 주 검찰과 카운티 검찰, 교도소 등에게 지난 달 15일 까지 애당초 이 씨가 방화를 저질렀다는 결론을 내린 화재수사 방법이 현재까지도 과학적으로 유효한가의 여부와 방화수사 전문가 렌티니가 주장한 새로운 화재수사 방법을 반박할 증거를 제출토록 지시했다.
그러나 주 정부는 20여 년 전 첫 재판에서 이 씨를 방화범으로 몰아넣은 잘못된 방화수사 결과 이외에 그가 실제로 화염물질을 뿌리고 불을 질렀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제출하지 못한 것은 물론 당시 화재가 과학적으로 볼 때 단순사고였다는 결론을 내린 렌티니의 증언을 반박하지 못했다.
따라서 이 씨를 변호하는 템플 대학교 법대의 ‘펜실베니아 무죄 프로젝트’는 지난 달 18일 법원에 제3순회 항소법원의 명령을 상기시키며 주 정부가 법정 명령을 이행하지 못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인신보호영장’에 대한 최종 판결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즉 이 씨의 석방을 요구한 것이다.
이와 관련사건 발생 당시 필라델피아 동아일보 기자로 재판을 직접 취재했던 뉴욕의 김광수 변호사는 “연방 제3순회 항소법원이 지난 해 1월 이한탁씨의 결백을 입증할 수 있는 렌티니 증언을 받아들인 순간 사실 판사가 ‘인신보호영장’ 소송에서 이 씨의 손을 들어준 것이나 다름이 없다”며 “과학적으로 당시 화재가 방화가 아니라 단순사고였음이 확실한 마당에 이제 석방은 시간문제”라고 분석했다.
이 씨는 한국에서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교사로 재직하다 1978년 뉴욕으로 이민 와 옷가게를 운영했다.<신용일 기획취재 전문기자> yishi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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