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단데뷔 50년...공해 아닌 산소같은 글 쓰고파”
올해로 한국 문단 데뷔 50주년을 맞은 김송희 시인, 그는 뉴욕 한인들에게 문학의 기쁨과 빛을 선사하고 우리 자녀들에게 한국어의 중요성을 일깨워주었다. 미국에 살면서 모국어로 시를 쓰는 김송희 시인을 만나본다
▲일 좋아하고 친구 좋아해
“시는 사랑 없이는 있을 수 없다. 절망할 때가 아니라 인생을 사랑할 때 시가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나는 가장 성실한 나의 모습이 나의 시라고 생각한다” 는 김송희 시인. 그는 일을 좋아하고 친구를 좋아하는 천성으로 뉴욕한인사회의 인맥이 뿌리 깊다.
열정적으로 뛰어다니며 뉴욕 한인사회에 많은 족적을 남긴 그에게 가장 첫째는 시집과 수필집을 다수 낸 문학인으로서의 삶이다.그의 시는 ‘이국땅에서의 삶을 소망과 기다림으로 승화시켜 정제된 시세계를 갖고 있다. 푸른 소나무로 뻗고자 하는 의지력을 보여주었다’는 평을 받는다.
김송희는 “내 시가 산소가 되어 이웃들의 기쁨이기를 바란다. 공해가 되지 않기 바란다”고 한다. 그의 시는 까다롭지 않다. 기쁨, 슬픔, 미움, 고뇌가 어린아이와 같은 심성으로 표현되어 있어 누구나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 문외한도 문학을 가까이 하게 만드는 그의 맑은 시심이 수많은 한인들에게 글을 쓰게 만들었다.
“뉴욕한국일보가 주최한 신춘문예로 데뷔하여 글을 쓰게 된 문인들이 수없이 많다. 그들이 미동부한국문인협회 회원이 되어 회장도 하고 책도 내고 현재도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
김송희는 1975년~1995년까지 20년간 뉴욕한국일보사에서 일하며 편집위원, 편집국 국차장으로 은퇴하기까지 여성란과 청소년란, 문화 담당으로서 미동부한국문인협회 결성에 앞장섰다. 신인 발굴 및 글쓰는 모임을 후원, 한국일보 신춘문예 출신이 모인 ‘길벗’ 동인들에게 창작의욕을 고취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학교 교장(퀸즈한국학교, 롱아일랜드 한국학교, 롱아일랜드 한미한국학교)을 74년~94년 20년간 하면서 2세들에게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알려줘 바르고 성공적인 삶을 살게 만들었다.“말과 글은 그 나라의 영혼이고 상징이다. 어느 나라에서 살든, 어느 환경에 처해있든 우리나라 말과 글을 모른다는 것은 내 나라를 모른다는 것이 아닐까. 매주 토요일 아침 9시30분부터 12시30분까지 한국을 배우고 익히게 했다. ‘하이’하고 미국식 인사를 하던 아이가 한국학교에 다닌 지 몇 주 후에는 ‘안녕하세요’하고 의젓하게 한국말로 고개숙여 인사하면 보람 있었다. 초반에는 ‘미국에 와서 왜 한국말을?’ 하는 이도 있었지만 70년대 이후 사정이 달라져 요즘은 다들 한국학교에 보내고 있다.”
김송희는 이 일들 외에 미동부한국문인협회 회장, 재미한인학교 협의회 동부지역 3대 회장, 뉴욕주립대학교 스토니브룩 대학 한국학회 부회장 등등 사회적 활동을 활발히 했다. 집 거실 한쪽에 세워진 재미한인학교 협의회, 미동부한인학교 협의회, 스토니부룩 한국학회, 롱아일랜드 한국학교, 롱아일랜드 한미한국학교, 롱아일랜드 한인회, 미동부 한국문인협회의 감사패와 공로패들은 그가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 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82년에는 문교부장관상, 91년에는 대통령 표창상도 받았다.
▲대학시절에 문단 데뷔
“엄마이어야 할 때 선생이 되고, 선생이어서는 소녀의 꿈으로 헤매었고, 한 남자의 아내이어서는 엉뚱하게도 글쟁이로 돌아가고......”
늘 길을 잃고 헤매는 미아처럼 정신없이 살아왔는데 여학교 시절, 꿈도 야무지고 꿈을 향하여 전진하는 노력이 너무도 의욕적이고 끈기가 있어 친구들과 선생이 붙여준 별명은 ‘악종‘이었다.
“문학에 대한 열정과 상관없는 글재주만으로 쓴 시가 작문선생 눈에 들어 교실에서 읽히고 교지에 실렸다. 고교시절 학원사 주관 문예 콩쿠르에 당선되면서 시에 관심을 가졌다. 대학 1학년때 박성룡 선생과 함께 미당 서정주 선생댁을 처음 찾아갔다. 선생은 한복을 입고 방석위에 단정히 앉아계셨다. 박선생을 따라 큰절을 올렸다. 미당선생이 풍기는 면모에 매료되어 시를 쓰겠다는 굳은 각오로 1, 2주일이면 10여편의 시를 습작하여 찾아갔다.”
3년후 미당은 “됐어”하고 말했다. 숙명여대 국문과 4학년이던 62년, 현대문학 10월호에 서정주 선생 추천으로 ‘가을의 합창’이 실렸고 63년에는 첫 시집 ‘사랑의 원경’ 이 나왔다.
“시라는 것은 머리나 재주로 쓰는 것이 아니다. 노력과 끈기 없이는 생명이 긴 시인이 될 수 없어. 너는 재주만으로는 시인 자격이 있었다. 하지만 오래 붙잡아 둔 것은 생명이 긴 시인을 만들고 싶어서였어” 추천을 끝낸 서정주 시인의 예측대로 김송희는 지금도 시를 쓰면서 살고 있다. 이 문학이 이국생활에서의 절망과 슬픔 속에서 그를 구원했다.
김송희는 1941년 전남 목포 출생으로 검사 출신 변호사 아버지의 엄격한 가정교육 아래 성장했다. 문학을 좋아하고 예술을 이해했던 아버지는 1남3녀가 책 들고 있는 것을 최고의 기쁨으로 여겼다. 62년부터 65년까지 여상, 여원 기자, 65년~67년 중앙여자중고등학교 국어교사를 지내다가 1967년 박삼열 박사와 결혼하여 뉴욕으로 왔다.
서정주 시인은 “영어로 시를 쓰라”고 도미를 기뻐해 주었지만 막상 그가 뉴욕에 와서는 언어장벽에 부딪쳐 절망하고 말았다. 롱아일랜드 대학 수학교수인 남편이 학교로 가고나면 브루클린 아파트 14층에 갇혔다. 미국생활에 적응 못해 외로워하는 아내를 위해 남편은 71년 롱아일랜드 우드베리 숲속에 집을 장만했다. 이곳에서 1남 2녀를 키우며 직장일과 한국학교 일에 파묻혔다. 새벽에는 시를 썼다.
85년 가을 한국여류문학인회는 ‘역대 한국여류101인 시선집’을 엮었다. 문단의 선배와 친구들은 뉴욕의 김송희에게 연락하여 그의 시를 실어주었다. 95년 은퇴 후 2002년까지 한국에 체류하며 사단법인 국민독서문화 진흥회상임이사, 사무총장, 숙명여대 평생교육원 문예창작과 교수, 전국 시낭송대회 심사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빛과 소금 같은 글쓰기가 내꿈
“글을 쓰는 일, 좋은 글을 써야 하는 것은 나의 의무, 세상이 공해를 없애주는 빛과 소금 같은 글을 쓰고 싶은 것이 내 꿈”인 김송희는 정신없이 뛰어다닌 세월을 이렇게 말한다.
“2세교육도 나의 일,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우리 자녀들에게 모국어를 심어주는 일도 마땅히 내가 할 일, 그래서 20년의 그 많은 시간이 아깝지 않다.”
일하는 엄마를 자랑스러워 한 장녀 해린은 유전공학 박사, 차녀 아미는 변호사, 아들 대린은 직장인으로 성장하여 지금은 손주 넷을 둔 할머니이기도 하다. 그는 뉴욕에서 40년 이상을 살아오면서 속 상하고 스트레스로 목 근육이 바윗돌처럼 굳어있을 때면 바닷가를 찾았다.
“바다와 함께 있으면 돈이 안들고 저절로 치유가 된다. 영산강이 바라다 보이는 목포항 유달산에서 소녀 시절을 보내 계절도, 때도 없이 롱아일랜드 바닷가를 거닐거나 멍청히 앉아있기를 좋아한다.”다리에 힘이 빠지고 눈은 침침해도 마음은 언제나 소녀로 탈바꿈 하는 그는 센치하고도 단아한 모습을 보여준다.
현재 미동부 한국문인협회 고문,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시인협회 회원, 뉴욕 펜 고문 등등 많은 직함을 갖고 있다. 집으로 일주일에 두 번 시를 배우러 오는 ‘문학의 숲’ 모임이 있고 제자들은 현재 한국일보 독자문예난에 시와 수필 등을 고정기고 하고 있다.
김송희는 시집 ‘사랑의 원경’, ‘얼굴’, ‘얼굴 먼 얼굴’, ‘겨울 창가에 그리움의 잎새 하나’, ‘날아라 날아라, 내 영혼을 불 밝히게’, 수필집으로 ‘뉴욕에 살며 서울을 그리며’, ‘여자가 말할 땐 확실한 말만 합니다’, ‘나는 시도 때도 없이 배가 고프다’, ‘자녀교육의 이름으로 저지르고 있는 77가지의 죄’, 그 외 공저가 다수 있다. 이번 9월에는 문단 데뷔 50주년을 맞아 한국으로 새로운 시집을 출판하러 나간다.
김송희는 ‘한 올 한 올 벗겨지는 인간의 탈, 욕심투성이의 탈. 현실의 순간적인 만족을 위해 허둥대며 껴입었던 냄새나는 탈, 탈을 벗으며 서서히 벗겨지는 여름의 공기 속에서 가을을 품어보는’ 시인이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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