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헌 (맨체스터 대학 철학교수)
몇 년 전 딸아이가 공부하던 앰허스트를 다녀오다가 속도위반으로 티켓을 받은 적이 있다. 억울한 생각이 들어 법원까지 갔었다. 판사는 웃음 띤 얼굴로 69마일로 운전했지만 법을 어긴 것이 사실이라며 벌금을 선고 했다. 법은 법이요 원칙은 원칙이라는 것이었다. 특히 교통량이 많은 휴가철에는 원칙을 더 철저히 지켜야 한다고 토를 달았다.
시리아를 둘러싼 전쟁의 루머가 그치지 않고 있다. 화학무기를 사용해서 무수한 인명을 살상한 아사드 정권을 국제조약의 원칙에 따라 응징해야 한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주장에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원칙이 무너질 때, 뒤따르는 혼란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잘 알고 있다. 예컨대, 교통량이 많기로 악명 높은 I-95 고속도로에 속도제한이 없을 경우나, 혹은 교통량이 폭주하는 휴가철에 그 많은 운전자들이 전혀 속도제한을 지키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면 그 결과가 어떨 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오바마 대통령의 주장은 응징의 실용성이나 그 후유증을 걱정해서, 원칙을 무너뜨린 정권을 처벌하지 않는다면 국제 조약에 근거한 원칙들이 유명무실하게 되며, 그 결과로 더 큰 혼란이 올 수 있다는 것 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미국인들과 의회는 대통령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듯하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전쟁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는데 또 다른 곳에서 전쟁이라니, 그 돈으로 어려운 국내 경제를 되살리는 것이 보다 실용성 있는 선택이라는 것 이다. ‘알라’가 만든 혼란이니 ‘알라’가 해결하도록 버려두라는 것이요, 실용성 없는 원칙 보다는 실용성 있는 방편(方便)과 이익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공인되는 원칙은 도덕적 정당성을 그 기반으로 한다. 원칙을 지키는 것이 때로는 어려운 일이고 또 당장에 이득이 되지 않을 수는 있지만,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는 것을 국제 사회가 승인하고 조약에 서명했기 때문에 그 원칙이 존재하는 것 이다. 또 어려운 때 일수록 원칙을 잘 지켜야 할 이유는 간단히 말해서 그 것이 옳은 선택이기 때문인 것 이다.
예외가 있을 수 있지만, 어려운 때에는 잠시 원칙을 접어두고 이익을 추구한 뒤에 평화로운 시절에나 원칙을 지키자는 실용을 기반으로 한 주장은, 마치 교통이 폭주하는 휴가철에는 교통법규를 잠시 접어두고, 고속도로에 차가 없는 한가한 때에나 교통법규를 지키자는 주장과 별로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오바마를 지지하는 사람이 아니다. 항상 그의 지도력에 의문을 가져왔기 때문 이다. 오랜만에 그가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더니, 의회의 승인을 받고서 아사드를 응징하겠다고 한다. 의회는 휴가 중이었다. 포트 섬터가 남군으로부터 포격을 당했을 때, 링컨은 휴가 중인 의회의 승인을 기다리지 않았다.
오바마는 대통령의 고유한 권한인 군대의 작전권을 포기한 셈이다. 의회가 선전포고 권한을 갖고 있지만, 남북전쟁이 끝날 때까지 의회는 남군에 선전포고를 하지 않았다는 역사를 오바마는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뜻하지 않게 오바마는 러시아의 간교한 푸틴을 노벨 평화상 후보로 만드는 코미디를 각색 연출했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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