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심 거르고 생계보조비까지 털어
▶ 하루에 300~400달러 쓰는 경우도
퀸즈 플러싱의 한 한인 델리 업소에 설치된 자동복권판매기에서 한 노인이 즉석복권을 구입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계없음.<천지훈 기자>
일부 노인 카지노 도박 중독 수준
지난 17일 점심시간을 막 지난 시각 일명 ‘먹자골목’이라 불리는 퀸즈 플러싱의 149가 41애비뉴 인근. 6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인 노인 3명이 연신 즉석(스크래치) 복권을 긁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이들이 복권 한 장을 긁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5분 안팎, 투자하는 돈은 장당 5달러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입에선 5분에 한 번씩 한숨 섞인 탄식이 흘러나왔다.
“빌어먹을~ 또 꽝이네… 알파벳 ‘D’ 하나만 나오면 딱 인데…”
뉴욕주 복권국이 발행하는 여러 종류의 즉석복권 가운데 한인노인들이 가장 즐겨하는 복권은 ‘캐시 워드(Cash Word)’로 아랫부분에 나온 18개의 알파벳을 낱말 맞추기 부분에 대입시켜 단어를 완성시키는 게임이다. 단어 3개를 완성시키면 본전에 해당하는 5달러를 받고, 4개를 맞추면 10달러, 그렇게 10개까지 맞추면 10만 달러의 당첨금을 지급받게 된다. 여기에 2배 혹은 3배 보너스까지 합치게 되면 최대 30만 달러를 탈 수 있다는 게 복권 판매 상인의 설명이다.
이날 노인들이 30분 남짓한 시간 동안 투자한 금액은 어림잡아 각 30달러. 그래도 이중 한 노인은 10달러에 당첨돼 새로운 복권 2장으로 교환받고 있었다. 이 노인에게 다가가 “많이 따셨냐”고 묻자 “남의 사생활에 왜 간섭하냐”며 대뜸 화를 내곤 자리를 떴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노인이 “이미 다른 가게에서 돈을 많이 잃고 와서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라며 이해를 구했다. 10분 정도가 흐르자 아까 화를 냈던 노인은 다시 돌아와 15달러를 더 주고 새로운 복권 3장을 더 구매한 뒤 가게 앞에 쪼그리고 앉아 연신 동전을 긁어댔다. 그리곤 얼마 후 이 3장은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한동안 잠잠하던 즉석 복권의 열기가 최근 플러싱 일대 한인 노인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타오르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무료한 시간을 달랜다”는 이유를 대며 주머니에 있는 돈을 몽땅 털어 넣으며 카지노에서나 쓸 법한 거액(?)을 소비하고 있다. 거의 매일 즉석복권을 구입 하다시피 하는 ‘매니아’ 할아버지들의 경우 하루에 적게는 50달러에서 많게는 100달러 넘게 쓰고 있다는 게 상인들의 귀띔이다. 심지어 매일 플러싱의 한 복권명당 가게를 찾는다는 노인은 하루에만 300~400달러를 쏟아 붓는 모습이 며칠 간격으로 목격되기도 했다.
주변 상인들은 “그 할아버지는 자녀들이 부자라서 용돈이 넉넉한 편이지만, 일부 노인들은 정부에서 받는 생계 보조비까지 동원해 복권을 구입하거나, 점심을 거르면서까지 돈을 쓴다”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즉석 복권은 추첨형식의 일반 복권보다도 구입비용이 비싸고, 또 당첨여부를 확인하는 시간이 매우 짧다는 것에 심각성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슬롯머신에 빠지는 도박 중독자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본보가 지난 4월 2010년~2012년 사이 뉴욕주에서 복권에 당첨된 한인을 분석<본보 4월11일자 A1면>한 결과, 즉석 복권으로 100만 달러 이상의 고액에 당첨된 한인은 2명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적었다. 당첨 금액을 확 낮춰 1만 달러 이상에 당첨된 한인을 집계한다 해도 모두 29명. 1년 평균 10명 수준으로 당첨자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얘기다. 더구나 한인 노인들이 즐겨하는 캐시워드의 1등 당첨 확률은 423만 분의 1로 맨하탄과 퀸즈 인구를 모두 합쳐 이 중 1명을 고를 만큼 희박한 수준이다.
가정문제연구소 레지나 김 소장은 “즉석 복권을 포함해 모든 도박은 끊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대신 “주변사람들의 관심을 통해 평생 꾸준히 관리돼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노인들이 모여서 할 일이 그것밖에 없다면 그것만으로도 심각한 문제”라며 “외로운 노인들에게 건전한 여가활동을 제공하고, 도박이 심각한 문제라는 걸 깨우쳐 줄 수 있는 프로그램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함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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