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묘향산 가다 만난 가이드 처녀, 가보고 싶은 나라는‘ 미국’
이드는 이 대학의 역사에 대해 우리에게 자세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머니가 어렸을때 이 대학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지 또 어머니의 집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었는지 궁금해 졌다. 나는 투어가 끝난후 개성의 일반 동네 사진을 찍을 수있는지 가이드에게 문의했다. 나의 가이드인 미스터 한과 미세스 안은 심각하게 의논을 하고 사무실로 전화를 한 후 나를 전망대로 안내해 주었다. 그곳은 개성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이었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경치를 안겨다 주는 그곳에 도착했을 때비가 오는 데도 불구하고 결혼 사진을 찍으려는 여러쌍의 신랑신부들이 있었다.젊은 신부들은 모두 아름다운 한복을 입고 있었으며나는 비가 그쳐 그들이 행복한 날을 더 즐길수 있었으면 하고 바랬다. 사진 몇장을 찍은후 우리는 다시 밴을 타고 평양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개성 시내 경계를 넘으며 나는 다시 어머니를 생각했다. "아 엄마가 지금 나와함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평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씻은 후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이 마지막날이라는 울적한 생각이 들자 마자 나는 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일곱째 날나는 잠을 푹 잔 탓인지 한결 가벼움을 느끼며 잠에서 깼다. 지난 며칠간 마신 알콜이마침내 내 몸속에서 다 분해가 되면서 나의마음과 몸은 정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아침 식사후 나는 평양에서 2시간 30분거리에 있는 묘향산으로 가기 위해 미스터한과 메세스 안을 호텔 로비에서 만났다. 묘향산으로 가는 길은 개성으로 가는 길과는달리(개성은 평양에서 휴전선쪽으로 가지만묘향산은 북쪽으로 가기 때문) 개성으로 갈때보다 훨씬 적은 검문소를 통과했다. 우리가첫 방문지인 국제우정전시관을 보기 위해 도착했을 때 아름다운 분홍색 한복을 입은 아가씨를 우리를 맞았다.
그녀는 나를 김일성과 김정일이 전세계에서 받은 선물을 보여주는 전시관을 돌며 안내했다. 내가 북한에 머무는 동안 한순간도미스터 한이나 미세스 안이 내옆에서 떠난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두사람이 내옆에 없던 순간을 포착해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그녀에게 다른 나라를 방문해 보고싶은 마음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소심하게 그렇다고 말하면서 가고 싶은 나라들을나열했다. 그녀는 중국과 러시아를 가고 싶다고 말하고 몇초간 뜸을 들이다 숨을 쉬면서우물거리는 목소리로 미국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가 전세계에서 보내준 선물들을보면서 그 선물들을 보내준 나라들에 대한호기심이 생겼다는 것으르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만약 북한 사람들에게 여행의 자유가 생겨 다른 나라를 마음대로 갈 수 있다면어떤일이 일어날 까 상상해 보았다. 그러면서나는 그녀가 아마도 평생 그런 기회가 오지않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녀가안쓰럽게 생각됐다.
그녀는 나를 안내하면서 미국에 대해 또나의 북한에 대한 인상에 대해 여러가지를물었다. 나는 그녀와의 대화가 즐거웠지만 빡빡한 일정으로인해 다음 장소로 떠나야 했다. 다음 목적지는 수킬로 미터 떨어진 보현사였다. 나는 절의 이곳 저곳을 걸으면서 아름다음과 고요함에 마음을 빼았겼다. 절은푸른 산세가 아름다운 곳에 자리잡고 있었고 나의 심신을 힐링해 주는 듯 했다. 그러나바쁜 일정으로 빠른 걸음으로 둘러보아야 하는 것이 아쉬웠다.
점심후 우리는 다시 평양으로 돌아오는 길에 평양 시내가 가까워 오면서 지겹게 내리던 비가 그치고 햇살이 구름사이로 모습을드러냈다. 그리고 우리는 북한판 개선문을 방문해 사진을 찍고 피곤한 다리를 달랬다.
마침내 나의 여행은 끝이 났고 가이드들은나에게 안녕을 고했다. 그들은 호텔에 저녁식사가 예정되어 있다고 말했다. 나는 공손하게저녁예약을 취소하고 유명한 평양냉면을 먹고 싶다고 말했다.
호텔 지하에 평양냉면 전문점에 내가 들어섰을 때 손님은 나 혼자였고 직원들은 저녁식사 시간을 위해 준비중이었다. 나는 앉아서 평양냉면과 튀긴 두부, 맥주를 시켰다. 내가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웨이트레스가 TV를 켰고 그곳에서는 정치선동적인 비디오가방영되고 있었다.두부와 맥주가 먼저 나와 나는 갈증나는 목을 축이고 평양냉면을 기다렸다. 드디어 냉면이 나왔고 나는 주저없이 국물을 맛보았다. 나의 첫 느낌은 맛이 밍밍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먹을수록 깊은 국물맛이 느껴졌고 맛이 살아났다.
이제 미국으로 돌아가 나는 그’ 유명한’ 평양냉면을 먹어 봤다고 이야기를 할 수 있게됐다. 계산을 하기 위해 계산서를 보았을 때나는 나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큰평양냉면과 두부요리, 맥주 큰병 2개값이 단지 8달러였다. 웨이트레스가 감사를 표하면서 자주 들려달라고 이야기 했을때 나는 그날 먹은 저녁이 북한에서의 나의 마지막 저녁식사라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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