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들과 놀다 지쳐 노래와 동화가 있는 DVD를 보여주고 테이블에 앉아 쉬고 있었다. 거실에서동생이랑 DVD를 보던 큰 아들이 “엄마, 너무 슬퍼!”하며 눈시울을 적시며 나에게 왔다. 피곤에 지쳐있던 나는 “왜? 뭐가 슬퍼?”하고 퉁명스럽게 다시 물었다. 큰 아들은 자기가 본 가시고기 동화 애니매이션을 영어반 한국어반 섞어가며 나에게 설명했다. “엄마 피쉬가 알을 낳다가 너무 힘들어서 죽었는데 아빠 피쉬가 아기 피쉬를 테크 케어하느라 먹지도 못하고 나쁜 피쉬랑 싸우고 이겼는데 너무 힘들어서 죽었는데 아기 피쉬가 아빠 피쉬를 먹고 자라.” 다른 때 같으면 한국어로 해야지 하고 야단을 쳤을 텐데 이번엔 눈물 글썽이며 이야기하는 아들의 모습에 감동이 되었다.
“그랬구나, 엄마도 그 이야기 아는데 처음 보고 많이 울었어.”하고 대답했다. 사실 난 가시고기란 단어만 들어도 눈물이 핑 돈다. 십여년전 “가시고기”라는 부성애를 다룬 4부작 드라마가 화제였었다. 그 드라마를 보며 감동되어 엉엉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그 드라마의 원작 소설 “가시고기”를 찾아 읽으면서도 정말 많이 울었다. 왜냐하면 아빠 가시고기처럼 가족을 사랑하고 가족을 위해 희생하시다 일찍 세상을 떠나신 사랑하는 나의 아빠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나는 아빠의 기도, 말씀 그리고 신앙의 본을 영의 양식으로 먹고 자랐다. 그리고 아빠께서 새벽부터 일어나 자신의 몸이 으스러지도록 일하셔서 먹이신 육의 양식을 먹고 자랐다. 아들이 눈가 적시며 나에게 들여준 “가시고기” 이 네 글자는 나에게 아빠의 사랑을 다시 기억하게 했다.
가시고기 아빠의 사랑을 먹고 자라 난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엄마가 되어 적지만 나의 사랑을 아들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다. 어제 온 가족이 차를 타고 오며 다시 가시고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남편이 아들에게 “너도 아빠 먹고 살고 있잖아”하니 “내가 어떻게 아빠를 먹어” 라며 자기는 아니라고 아들이 우겼다. 내가 운전석 옆에서 “당신도 아버님 갉아 먹고 살잖아”하니 남편이 “인간은 모두 그러고 사는 거야”라고 일반화해서 대답을 했다. 그렇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부모님의 희생과 사랑을 먹고 자란다. “아들아! 엄마 아빠도 그랬던 것처럼 너도 엄마 아빠의 사랑을 먹고 자라는 거란다. 아기 가시고기들 처럼……그렇게 자라서 너도 아빠 가시고기가 되는 거란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