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는 가끔 1번 번호의 음악들을 듣곤한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1번,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1번, 시벨리우스, 멘델스존의 교향곡 1번…. 1번 음악들은 대체로 유명하지는 않다. 그러나 아무도 가지 않은 숲… 눈길처럼 순수하다. 완성된 음악은 그 완성된 모습으로 감동을 주곤하지만 보다 진한 감동은 늘 미완성의 열정 속에 있다. 처녀작들이 위대한 것은 그 속에 절대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첫사랑의 기대감같은 것이라고나할까.

1st… 첫 인상, 첫 작품을 주의 깊게 관찰해 보면 추후에 익숙하게 될… 완성된 작품… 미완의 인품을 예감케하는 예지가 스쳐가곤 한다. 날카롭고 무서운 첫 인상은 그 가려진 무서움이 결국 드러나게 마련이며, 첫 인상이 중요한 것은 그것이 편견없이 사물을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튼 첫 인상… 첫 체험이 강렬한 것은 그 곳에 구김살없는 순수함이 있기 때문이다. 시벨리우스의 음악에 반한 것도 교향곡 1번 때문이었고, 라흐마니노프를 좋아하게 된 것도 피아노 협주곡 1번 때문이었다. 특히 라흐마니노프의 경우, 피아노 협주곡 2, 3번의 유명세 때문에 1번은 별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지만 인간 라흐마니노프를 만나고 싶은 사람은 피아노 협주곡1번을 들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특히 3악장은 라흐마니노프의 모든 3악장이 그렇듯 참으로 라흐마니노프가 아니면 누구도 들려줄 수 없는 북방의 우수…

가슴 저미는 가을서정으로 설레게 만들곤한다. 멘델스존 역시 1번 교향곡 때문에 반한 경우 중의 하나이며 시벨리우스도 그렇다. 1번 음악들이야말로 인간의 격조를 다루고 있다고나할까. 우리는 하나의 음악을 통해, 산다는 것이 얼마나 깊은 고단함… 절망 속으로 함몰될 수 있는 것이며 또 노래의 날개를 타고 저 먼 무지개의 세상으로 날개짓을 펼 수 있는가를… 꿈꾸지 않을 수 없게 되곤한다. 인생은 쟁취가 아니라 취미일지도 모른다. 즐길 수 없는 사람에게 삶이란 결국 싸움터일 뿐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4형제였던 우리집의 식사시간은 늘 붐빌 수 밖에 없었다. 어쩌다 아버지까지 합세할랴치면 밥상머리는 그야말로 여섯 식구의 식사 전쟁터를 방불케했었다. 요란한 숫가락 소리… 하찮은 것도 항상 나누어 먹어야했고 늘기름진 반찬에 허기져야했다. 그럼에도 형제들이 밉다든지 하는 생각은 한번도 든 적이 없었다. 오히려 늘 그 때가 그립곤한다. 왜? 생이란 소유가 아니라 주어진 선물이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의 가장 큰 명절이라는‘땡스기빙’… ‘Thanksgiving’은 영국 청교도들이 (신대륙에서) 첫 감사 예배를 드린 것이 그 유례였다고 한다. 첫 열매… 첫 감사는 순수하다. 그것에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순정… 진심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바람부는 들판… 까칠한 광야… 널부러진 죽엄의 벌판에서 감사제를 올리는 자들을 떠올려 볼 수 있겠습니까? 역경 속에서 감사할 수 있는 자들은 축복받은 자들이다. 왜? 신은 바람부는 들판에 있기 때문이다. 생은 조건이 아니라 선물이다. 역경이 없는 영혼… 선물이 없는 삶을 과연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 중의 하나가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1번’이라고 생각한다. 북극의 툰드라, 빙하의 원시림… 변치 않은 원형의 처녀… 그 야성의 아픔을 품어 본 적이 있으십니까? 삶이 번거롭고 목표가 피곤해 질 때… 가끔 우리는 우리들의 처녀 본성… 1번 작품들을 들어볼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