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솟는 월세 감당 못해 노숙자 전락 위험 커져
▶ 주택시장 붕괴 이후 아파트 수요 급증, 렌트비 오르고 저소득층 아파트는 줄고
워싱턴의 비올레타 토레스는 월 828달러인 렌트를 감당할 수가 없다. 거실 매트레스에서 잠을 자는 조건으로 룸메이트를 들여 겨우 월세를 내고 있다.
미전국의 저소득층 주민들이 아파트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길거리로 내몰릴 위기에 처했다. 주택시장 붕괴 이후 집을 잃었거나 집을 살 형편이 안되는 사람들이 대거 임대 아파트로 몰리면서 렌트가 치솟은 것이 한 원인이다. 아파트 수요가 폭등하자 아파트 소유주들은 월세가 비싼 고급 아파트에 치중, 저소득층이 들어갈 만한 아파트는 점점 줄어드는 추세이다.
워싱턴 인근에 사는 비올레타 토레스(54)는 아파트 렌트를 내기가 벅차다. 월세 828달러인 형편없는 원베드룸 아파트를 토레스는 얼룩 하나 없이 깨끗하게 유지하면서 아는 사람을 룸메이트로 들였다. 거실에 매트레스를 깔고 잠을 자게 하면서 한달에 400달러 가량을 받아서 렌트에 충당한다.
그런데 토레스의 원베드룸 아파트가 있는 곳이 하필 한창 붐을 이루고 있는 컬럼비아 하이츠 지역이다. 그만한 아파트를 수리하고 새로 단장하면 월세를 쉽게 두 배는 받을 수 있다. 아파트 소유주는 그러잖아도 세입자들을 내보내려고 계속 시도를 해왔다. 고장 난 화재경보기가 한밤중에 울리는 가하면 주민 공동구역은 너무나 더럽다. 아파트에는 쥐가 나오고 바퀴벌레들이 득실거린다.
지난 3월 아파트 소유주는 렌트 인상을 통보했다. 대부분 엘 살바도르에서 온 이민자들인 세입자들은 한달에 261달러를 더 내라는 주인의 요구를 그냥 묵살해버렸다. “그럴 돈이 없다”고 토레스는 말한다.
토레스는 지금 이 아파트에서 그냥 살기도 힘들고 아파트를 나갈 형편도 안된다. 어린 아이 둘을 돌보며 그가 버는 돈은 한달에 1,000달러 정도. 그 돈에서 250달러를 어머니에게 보낸다. 어머니는 최근 당뇨로 쓰러졌다가 일어난 후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한다. 그리고 어머니 간병인에게 100달러가 나간다. 렌트를 내고 나면 수중에 남는 것은 200~250달러에 불과하다.
오늘날 수백만 빈곤층 미국인들이 이와 유사한 덫에 걸려있다. 주택시장이 붕괴하면서 저소득층이 감당할 만한 아파트가 턱없이 부족해졌다. 모기지 융자 크레딧 기준이 까다로워지고 불경기로 집을 살만한 다운페이를 마련할 수가 없는 가정들이 많아지면서 임대 수요가 폭등했다. 아울러 공급은 줄었다. 주택 건축자들과 아파트 소유주들이 비싼 임대료를 받을 수 있는 고급 아파트들에만 치중하기 때문이다.
“미국 역사상 아파트 구하기가 이렇게 어려웠던 적이 없다”고 션 도노반 주택 도시개발 국장은 최근 말했다.
소득이 적은 가구일수록 받는 타격은 크다. 재정적으로 도무지 여유가 없는 이들은 까딱하다가는 노숙자가 될 위험에 처해 있다고 전국 저소득 주거연맹의 쉴라 크라울리 회장은 말한다.
이는 전국적인 문제로 특히 근로 저소득층이 가장 심한 타격을 받고 있다. 해당지역 중간소득의 30% 미만 즉 연소득 1만9,000달러 정도의 극빈층 세입자 숫자는 지난 2001년에서 2011년 사이 300만명에서 1,180 만명으로 폭등했다. 지난 9일 발표된 하버드의 합동 주거연구 센터 보고서의 내용이다. 그런데 이들 저소득층이 감당할 만한 아파트 숫자는 700만으로 전혀 늘지 않았다. 그리고 2011년 이들 아파트 중 260만 채는 그보다 소득이 많은 세입자들 차지가 되었다.
그 결과 소득의 30% 이상을 주거비로 쓰는 세입자 비율은 2000년 38%에서 2010년 50%로 껑충 뛰어 올랐다. 연소득 1만5,000달러 이하인 세입자들 중에서는 83%가 수입의 30% 이상을 렌트비로 낸다.
싼 아파트 품귀 현상이 특히 심한 곳은 지역 경제가 탄탄한 대도시들로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뉴욕, 워싱턴 등이다. 워싱턴 D.C.의 경우 지난 10년 동안 저렴한 아파트는 50%가 줄어든 반면 월세 1,500달러 이상의 비싼 아파트들은 세배 이상 늘었다.
저렴한 아파트 품귀 현상은 수요와 공급 양쪽에서 일어나고 있다. 주택시장이 되살아나기 시작하기는 했지만 아파트나 주택을 렌트하려는 가구 수는 계속 늘고 있다. 지난 2011년 한해에만 100만 가구가 늘었다. 지난 30년 동안 가장 높은 연중 증가폭이다.
이같이 세입자들이 느는 이유는 우선 모기지를 못 내서 집을 잃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아울러 불경기로 소득이 줄어서 혹은 크레딧 기준이 너무 까다로워서 주택융자를 얻을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집을 사는 대신 임대 아파트를 택하기 때문이다.
아파트나 주택 렌트를 원하는 인구가 늘자 투자가들은 다투어 새 아파트를 짓고 차압당한 집을 사서 렌트를 했다. 하지만 비싼 아파트에만 치중할 뿐 저소득층이 들어갈 만한 아파트 증가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저소득층이 감당할 만한 아파트 부족 사태는 노숙자 증가를 의미하기도 한다. 렌트를 내지 못해 아파트를 비우고 나면 친구들 집에서 며칠, 친척 집에서 몇주 신세 지다가 단기 숙박시설에서 몇 달을 지내고 그래도 안되면 거리로 나앉게 되는 것이 수순이다.
저소득층 주거시설 부족은 또 이들이 사는 아파트가 낡고 오래된 수준 이하의 시설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토레스의 아파트처럼 건물에 곰팡이가 피고 물이 넘치며 뭔가 잘못 되어도 도무지 수리가 되지 않는 열악한 환경의 아파트들이다.
그런 아파트일망정 재정형편에 비해 턱없이 비싸서 다른 생계비용을 줄여야 하는 것이 수많은 빈곤층의 현실이다. 앞의 하버드 보고서에 의하면 많은 저소득층 세입자들은 집세를 내기 위해 식품비와 교통비를 줄이고 있다.
“얼마 되지 않는 소득의 60, 70, 80%를 렌트로 내고 나면 다른 모든 필요한 것들에 쓸 돈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전국 저소득 주거연맹의 크라울리 회장은 말한다.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줄여야 합니다. 굉장히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내게 필요한 처방약을 살 것인가 아니면 아이들 생일 케익을 준비할 것인가? 자동차를 포기해야 할까? 같은 것들.”
토레스는 집세 부담을 덜기 위해 룸메이트를 한 사람 더 두는 것을 고려 중이다. 그리고 두 번째 일자리를 열심히 찾는 중이다.
워싱턴, 뉴욕 등 시정부들은 지방정부 기금과 저소득층 세입자 보호 규정들을 동원해 문제를 해결해보려 시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연방차원의 지원이 대폭 삭감된 지금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다.
<뉴욕 타임스 - 본보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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