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oday’s Focus/아베 ‘야스쿠니 참배’ 파문
▶ 미 일 밀월관계에 뒤통수 맞은격
아베 신조 총리(왼쪽)가 26일 도쿄 야스쿠니 신사에서 참배소로 가기 위해 신관의 안내를 받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26일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바라보는 미국의 속내는 복잡해 보인다.
전례 없이 강한 논조로 ‘실망감’을 표출했지만 속으로는 동북아 전략운용에 대한 밑그림이 흔들리지 않을까 난감해 하는 기류가 역력하다. 일본이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고 역내 패권을 유지하는데 필수적 파트너이지만 동시에 주변국과의 갈등을 야기하며 부담을 줄 수 있는 존재임을 여실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일단 아베 집권 이후 사상 최고의 ‘밀월관계’를 구가하던 미·일 관계에는 일정 정도 ‘그늘’이 드리워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게 워싱턴 외교가의 대체적 시각이다. 미국이 주일 대사관을 통해 보인 첫 공식반응의 형식과 강도가 이를 보여주고 있다.
미국이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공식 성명’ 형태로 ‘실망’을 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2006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야스쿠니 참배를 했을 때에는 ‘내부문제’라는 식으로 넘어갔다.
미국의 이 같은 입장표명은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일본이 ‘자제력’을 발휘해 줄 것을 희망해 온 미국의 기대가 그만큼 컸다는 것을 말해 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시아 중시’ 전략을 표명한 미국으로서는 ‘역내 대리자’로서의 일본의 전략적 가치와 역할을 중시하는 태도를 보여 왔다. 시퀘스터(자동 예산감축)에 따라 국방예산이 대폭 깎인 미국으로서는 독자적으로 역내 전략자산을 운용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집단자위권’ 추진을 용인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이런 맥락이다.
다만 미국으로서는 과거사 문제를 놓고 일본이 더 이상 긴장을 고조시키지 말 것을 독려해 왔다. 한·일 양국이 갈등구도를 형성할 경우 한·미·일 삼각협력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기본 전략구도에 저해가 되기 때문이다. 이달 초 조 바이든 부통령이 일본을 방문해 아베 총리를 만났을 때에도 이런 취지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한국을 겨냥해 ‘과거사’와 ‘안보협력’을 분리 대응하라고 주문하고 있는 것은 일본이 더 이상 ‘도발적 언동’을 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강행하면서 미국으로서는 그야말로 ‘뒤통수’를 맞은 상황이 됐다.
한·일 관계 선은 물론 한·미·일 삼각 안보협력을 원활히 추진하기가 어려워졌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과거사 이슈를 중심으로 한·중과 일본이 대립하는 구도가 형성될 가능성이 커졌고 이 경우 미국이 전략적으로 운신하기가 매우 어려워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내년 상반기 중으로 검토되던 오바마 대통령의 일본 방문이 재조정되거나 자연스럽게 하반기로 밀릴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특히 한국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일본 측이 전향적 태도변화에 나서지 않으면 한·미·일 삼각 안보협력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는 지적이다. 현실적으로 동맹의 틀에 의존하지 않고는 동북아 전략을 운용하는데 한계가 있는 워싱턴으로서는 어떤 식으로든 한·일 갈등을 중재하는 행보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이 일으킨 전쟁의 A급 전범들 합사된 곳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도쿄 중심지인 지요다구에 있는 야스쿠니 신사(사진)는 청일전쟁, 러일전쟁, 만주사변, 태평양전쟁 등 근대 일본이 일으킨 크고 작은 전쟁에서 숨진 전몰자들을 영령으로 합사해 떠받드는 곳이다.
전몰자 유골이나 각각의 위패는 없고 합사한 신들을 상징하는 거울과 검, 전몰자 이름이 기재된 ‘레이지보’(합사명부)를 봉안해 놓고 제사를 지낸다.
메이지 유신 때 천황 중심 집권체제의 기틀을 닦는 과정에서 전사한 관군들을 기리기 위해 1869년 창건된 도쿄 초혼사가 야스쿠니의 시발점이다. 10년 후인 1879년 메이지 일왕의 명명에 의해 야스쿠니 신사라는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으며, 당시에는 일본 육·해군성이 관할하는 일종의 군사시설이었다.
현재 야스쿠니에는 246만6,000여명이 합사돼 있으며 이 중에는 태평양 전쟁 전범들도 포함돼 있다. 일본 정부는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을 거쳐 1948년 교수형에 처해진 도조 히데키 전 총리 등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을 1978년 비밀리에 합사했다.
이들은 태평양전쟁을 주모한 전범 수괴자가 아닌, 연합군에 의해 오명을 뒤집어쓴 ‘순난자’이며 이들의 죽음은 일본 국내법상으로 ‘공무사’라는 게 합사의 명분이었다.
일본이 일으킨 전쟁에 군인·군속으로 강제 동원돼 목숨을 잃은 한국인 2만1,000여명도 합사돼 있다.
<관계기사 한국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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