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 -한 정신 의학자의 정신병 산업에 대한 경고
▶ 앨런 프랜시스 지음ㆍ사이언스북스 펴냄
반항심·자아 강한 10대소녀
정신분열증 오진 입원 생활
2년간 공포스런 약물 치료…
폭식·짜증 등도 병으로 둔갑
과잉진단·처방전 유도하는
의학계·제약사의 검은 상술
민디 루이스는 자의식이 강한, 반항심 많은 10대 소녀였다. 고압적인 어머니와의 갈등으로 술과 마리화나에 의존하던 민디는 결국 어머니 손에 이끌려 간 정신병원에서 ‘정신 분열증’이란 오진을 받는다. ‘생기가 빨려나가는’ 정신병 치료약, 약물 부작용과 단조로운 생활까지. 2년 간 민디가 받은 치료는 공포스럽고 억압적인 처치였다.
정작 소녀를 치유한 것은 치료약도, ‘정신 분열증’이란 진단을 내린 전문의도 아니었다. 입원한 아이들을 믿고 지지해준 병원의 영어교사, 공감과 이해로 환자를 이해해준 한 수줍은 의사 덕에 민디는 정서적 어려움을 극복했고, 퇴원 후 멋진 그래픽디자이너이자 작가로 성장했다. 훗날 민디는 병원에서의 생활을 이렇게 표현했다. “내 모든 행동과 말이 증상으로 분류되었다. 내 모든 일시적 기분이 경고를 울리는 원인이었다.”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한 정신 의학자의 정신병 산업에 대한 경고’의 저자 앨런 프랜시스(Allen Frances)는 정신 장애 진단의 ‘바이블’인 정신장애 진단 통계 편람(DSM) 개정작업에 참여한 저명한 정신 의학자다. 동시에 치료라는 이름으로 민디 루이스라는 소녀에게 공포스러운 처치를 지시했던 의료진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수년간 일상적인 근심과 고난이 정신병으로 둔갑하는 현상을 목격한 프랜시스 박사는 이 책을 통해 정신 의학계를 내부고발하고 스스로 양심선언에 나섰다.
저자는 ‘문제는 질병이 아닌 진단에 있다’고 말한다. 일상의 근심과 고난마저 정신병으로 규정되는 시대의 뒷면엔 과잉진단과 과잉검사, 과잉치료라는 정신의학계의 ‘진단 인플레이션’이 있다는 것이다.
1980년대 이후 DSM이라는 정신의학 진단 매뉴얼이 수차례 개정되는 과정에서 일시·일상적인 심리증상들이 정신질환으로 규정됐고, 그 결과 정신 장애의 과잉진단과 의약품 과잉 처방, 주기적인 정신병의 유행이 초래됐다.
저자는 지난 30년간 DSM이 바뀌면서 유행처럼 몰려왔다 사라진 정신 질환들을 짚어내고 과잉 진단 문제를 꼼꼼히 점검한다. 1980년엔 주의력 결핍 장애와 자폐증, 소아 양극성 장애가, 1994년엔 아스퍼거스 증후군과 성인 양극성 장애가 DSM에 새로운 정신질환으로 등장하자 하루 아침에 수많은 사람들이 정상인에서 정신 이상으로 진단 받고 발병률이 가파르세 치솟았다. 결국 이 질병들은 전 세계에 퍼진 유행병이 됐고, 특수(?)를 맞은 제약회사들은 창고에서 잠만 자고 있던 향정신성 의약품들을 시중에 쏟아냈다.
문제는 과잉 진단을 넘어선 초과잉 진단과 대규모 유행병이 눈앞에 펼쳐질 수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5월 DSM 개정 5판이 출시되면서 폭식장애나 아이들의 발작적 짜증, 노화로 인한 건망증, 저장장애, 행동중독 등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으며 심지어 일상적인 증상들도 진단 대상에 포함됐다. 예전에는 충분히 삶의 일부로 생각하고 감내했던 문제들이 엄청난 정신 유행병으로 둔갑해 일상을 잠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책 말미에 제시된 ‘일상의 질병화로부터 나를 지켜낼 수 있는 지침’도 눈여겨볼만 하다. 마지막 지침이 저자의 마음을 가장 잘 드러낸 것이 아닐까 싶다. “상황이 가다듬어질 시간, 자연이 치유력을 발휘할 시간을 허락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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