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전 피해 잠시 머물려던 케냐의 작은 마을 ‘다다브’ 20년 세월 발 묶이며 세계최대 난민촌으로 뿌리내려
▶ 국제 원조에 기대어 사는 발전없는 무기력한 미래 / 난민촌서 자란 2세들, 귀국과 유학으로 탈출 꿈꿔
다다브 난민촌에서 열린 세계 난민의 날 행사 중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소말리아 국가를 부르고 있다.
케냐의 국경마을에 세워진 다다브 난민촌에서 사막을 걸어가는 소말리아 가족. 현재 35만 6,000명의 난민이 다다브에 거주하고 있다.
밤이면 그는 바다를 꿈꾼다. 젊은 청년이었던 시절 누아르 하산 생지오는 남아프리카에서 유럽과 중동의 항구들로 사과와 오렌지를 실어 나르는 화물선에서 일했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와 사랑에 빠졌고 시실리와 더반, 두바이의 활기찬 항구 거리에 마음을 빼앗겼다. 지금 65세의 그는 끊임없이 모래바람만 불 뿐 잿빛 하늘에 가려 아무 것도 자라지 않는 사막에 산다. 마지막으로 바다를 본 것은 22년 전이었다. 자신이 원해서 이곳에 온 것이 아니었다. 하긴 원해서 온 사람은 한 명도 없다.
1991년 고국 소말리아에서 내전이 발발했을 때 생지오의 가족은 이웃 나라 케냐 국경을 넘어 인근 다다브라는 작은 마을에서 피난살이를 시작했다. 잠시만 머물면 될 것으로 믿었다.
“우리 모두는 기껏해야 1~2년이면 내전이 끝나 돌아갈 것으로 생각했지요”라고 생지오는 말한다.
그러나 내전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케냐의 사막 메마른 땅에 세워지기 시작했던 몇 개의 텐트는 20여년이 흐르면서 세계최대의 난민촌으로 확대되었다. 20 평방마일 크기의 다다브 난민촌엔 피난민 35만6,000명이 살고 있다. 대다수가 소말리아 국적이다.
어떤 면에선 다다브 난민촌도 다른 마을과 비슷해 보인다. 나뭇가지로 울타리 친 작은 마당을 가진 진흙 벽 집들이 줄지어 서있고 학교와 사원과 묘지도 있으며 부산한 상가에선 중국산 의류와 전자제품을 판다. 난민들 스스로가 구성한 자치제도의 지도자를 뽑는 선거 땐 여느 정부 못지않게 치열한 캠페인이 전개되기도 한다.
그러나 정상상태는 거기까지다.
케냐의 법에 의해 난민들은 취업도, 난민 캠프 외부로의 이동도 엄격한 제한을 받고 있다. 지난해 ‘샤바브’라고 불리는 소말리아 반군에 의한 나이로비 테러공격 이후 특히 난민들의 외출에 대한 경계가 강화되었다.
그것은 난민의 절대다수가 외국의 식품원조에 생계를 의지하며 자립은 꿈도 꾸지 못하고 발이 묶인 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지오는 돌아가고는 싶지만 아직도 너무 위험해 보이는 소말리아와 자신들을 원치 않는 케냐, 이 두 나라 사이에서 꼼짝 못하게 덫에 걸린 듯 느낀다고 말한다. “난 여기에 있지만 이건 ‘라이프’가 아닙니다”덫에 걸린 듯 막막함을 느끼는 것은 난민촌에서 성장한 2세들도 마찬가지다.
무하메드 오마르 오토와(26)는 소말리아를 기억하지 못한다. 소말리아 군부독재자가 타도된 후 부족 간 전쟁이 벌어졌을 때 부모 따라 다다브로 피난 온 것이 4살 때였다. 그러나 요즘 그는 돌아갈 것을 생각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다다브 인구는 2011년 소말리아 기근 중 46만3,000명으로 피크를 이룬 이후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일부는 뇌물주고 얻어 낸 위조신분증을 갖고 케냐의 도시들로 숨어들었고 일부는 가뭄이 해소되고 정세도 약간 안정된 소말리아로 돌아갔다.
오토와는 지난해 케냐-소말리아-유엔이 공동 서명한 협정에 따라 실시되는 난민송환에 관심을 보인 1만 명 중 하나다.
전기가 없어 낮에만 공부하는 난민촌 학교 출신으로 유엔 장학금을 받아 나이로비에서 칼리지를 다녔다. 그러나 도시에서 공부할 허가증을 가졌는데도 뇌물을 주지 않으면 체포하겠다는 위협을 몇 번 당한 이후 다다브로 돌아왔다. 난민촌에선 선택의 여지가 너무 제한되어 있어 목숨을 걸고라도 소말리아로 돌아가려고 한다고 그는 말했다.
“여기 아이들도 교육을 받지요. 그러나 졸업장과 학위를 받은들 무엇에 쓸겁니까?” 그는 다다브 난민촌에선 “앞으로 나아갈, 발전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18세 여고생 루만 나시브와 살리마 아브디는 20여 년 전 다다브 난민촌이 세워진 이후 이곳에서 태어난 10만6,000명 아이들 중 두 명이다. 소말리아 땅을 밟아본 적도 없으나 법에 의해 케냐시민이 아닌 소말리아 난민으로 분류된다.
그들도 난민촌엔 ‘미래’가 없다는 걸 알지만 오토와처럼 소말리아 귀국을 생각한 적은 없다. 그들의 꿈은 캐나다로의 유학이다. 캐나다 내 대학진학 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루 몇 시간씩 공부에 열중한다. 지구 저편의 틴에이저들과는 달리 셀폰도, TV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러나 “우리의 책이 우리의 텔레비전”이라며 깔깔 웃는 모습은 10대 소녀들답게 밝고 싱싱하다.
걸스카웃 단원이기도 한 두 소녀는 세계 난민의 날 축하행사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거기서 소말리아 국가를 부르고 ‘스카웃 서약’과 함께 난민촌 친구들을 위해 쓴 시를 낭송할 것이다.
“당신들은 이 세상 최고이고요/세상은 약속으로 가득 차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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