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헌 (맨체스터대학 교수)
긴 여름이 가고 벌써 아이들은 학교로 돌아갔다. 기후 변화의 영향인지 여름이 여름 같지 않게 서늘해서 여행하는 데는 안성맞춤이었다. 브라셀(Brussels)에 들렸다가 유명한 나폴레옹 전쟁터였던 워털루 (Waterloo)에 갔었다.
최근에 읽은 앤드류 로버츠 (A. Roberts)의 책 ‘워털루’ 생각도 나고, 30여 년 전 학생 때 찾아갔던 기억도 더듬을 겸, 작은 차를 하나 빌려서 다녀왔다. 가는 길에 새로운 집들이 좀 더 들어선 것 외에는 별로 변 한 것이 없었다. 30만에 달하는 대 병력이 격돌하여 피로 물들었던 전쟁터는 이제 모두 밭이 되어, 옥수수와 이름을 알 수 없는 채소들이 자라고 있었다.
영국군이 진을 쳤던 언덕 한 쪽, 영국과 연합 했던 네덜란드 황태자가 부상을 당한 지점에 세운 사자동상을 다시 보려고 가파른 수백 계단을 오르는 데, 갑자기 몰려온 폭풍우로 온 몸이 흠뻑 젖어버렸다. 워털루 전쟁 바로 전 날도 이런 폭풍우가 몰아쳤다고 한다. 전장은 진흙탕이 되었고, 속전속결을 주 무기로 삼던 나폴레옹의 전술은 진흙탕 때문에 제대로 전개 되지 않았고, 결국 패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침부터 저녁 까지 10여 시간이나 계속된 이 전쟁을 시시각각 복원 기록한 학자들에 의하면 장비와 병력의 수에서 우세했던 나폴레옹이 패전한 가장 큰 이유는, 영국군의 이동을 퇴각으로 잘못 판단하고 모든 기병을 동원해 감행한 기병대의 돌격 이었던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보병의 지원 없는 기동력은 필패(必敗)의 전술이라는 것이 증명된 것 이다.
이상한 것은 영국이 얼마 후에 나폴레옹이 범한 실수를 똑 같이 저질렀다는 사실이다. 남진하는 러시아를 견제 한다는 명목으로 영불 연합군이 크리미아 전쟁을 일으켰다. 러시아군이 퇴각하는 것으로 착각한 영국군은 기병을 동원해서 추격하다가 러시아군의 반격에 거의 전멸을 당했다. 유명한 “경기병의 돌격 (The Charge of the Light Brigade)”이 바로 그 것이다. 보병의 지원 없는 기병대의 빠른 기동력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 셈이다. 아이시스(ISIS)라는 테러집단이 다시 중동을 전화로 몰아넣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열강들이 이 테러집단과 전면전쟁을 선포했다. 중동의 몇 국가들도 참여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밝힌 전략에 따르면 미국과 서방 열강은 공군력을 제공하고, 지상 전투는 이라크군을 재훈련 시켜서 아이시스를 격파한다는 내용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의 지상군 개입은 없을 것이라고 단호히 선언 했다.
보병의 지원 없이 대 돌격을 감행했던 나폴레옹군의 전략을 빼 닮은 것 같다는 느낌이다. 초음속 전투기의 빠른 기동력으로 아이 시스의 탱크를 부술 수는 있겠지만, 민간에 흩어져 있는 아이시스 게릴라들은 어떻게 할 것 인가? 이라크군을 투입해서 이들을 소탕할 수 있다면 아이시스는 생겨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미국은 지난 10 년간 막대한 돈과 장비를 들여서 이라크군을 훈련 무장시켰으나 아이시스가 침공하자 이라크군은 싸우지도 않고 모든 무기를 버려둔 채 도주해 버렸다.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을 폭격하려던 것이 불과 몇 달 전이었다. 아사드 반대편에 선 반군들은 우방인 줄 알았는데, 그 반군 중에서 아이시스가 생겨났다. 이제는 미국을 악마로 부르는 이란과 아사드에게 손을 내밀 형편이 된 것 이다. 지상군의 개입 없는 승리는 거의 불가능 한 일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지상군을 파견할 수도 없는 일이다. 미국의 형편이 참 딱하게 되었다. 지도자란 분들이 왜 들 이렇게 허둥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긴 안목과 넓은 식견을 가진 지도자는 어디에 있는지 참으로 그립기만 한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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