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방암 치유휴 환자간 체험 공유위해 선교회 창립
▶ 의료선교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 평생 해야할 일
한인사회에서 암환자들의 치료와 재발방지를 위해 활동하는 기관이 있다. 그 곳은 암 환자 상호간 체험사례와 투병극복 사례 등을 공유하고 있다. 10년 동안 암 환자들의 소통의 장이 되고 있는 곳은 바로 ‘새 생명 선교회’다. 이 선교회의 대표는 심의례(70) 전도사. 그는 유방암을 치유해 새로운 생명을 얻은 자신의 체험을 계기로 지난 2005년 1월 이 선교회를 창립했다. 그리고 오늘까지 꾸준히 수많은 암 환자들과 함께 가족처럼 지내고 있는 것이다.
■운명처럼 다가온 ‘의료 선교’
그는 1944년 12월 강원도 평창의 언덕 위 초가집에서 9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끼니 걱정을 할 정도로 어렵게 살던 시절이라 미운털(?)이 박힌 막내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다. 6.25 한국전쟁이 끝난 뒤 동네의 사랑방 예배당인 속사리성결교회에서 첫 신앙생활을 시작한다.
초등학생의 어린 나이지만 가족의 가난을 경험했기에 기도를 통해 ‘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불쌍한 사람을 돕는 일을 할 것’이라고 결심한다. 그의 계획은 1970년 군의관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됨으로써 물거품이 됐다. 평생 혼자 살겠다는 의지는 무너졌지만 보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의사인 남편을 만났으니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위해 의료선교를 하겠다고 결심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결심마저도 남편이 1972년 미국병원에 취직이 되어 도미함으로써 깨지고 말았다. 첫돌인 아들과 한국에 남아 신학을 공부하고 심방전도사로 활동하다 1989년12월 미국을 방문하게 된다. 그 후 퀸즈한인교회(1년)와 퀸즈장로교회(1993-2011년) 전도사로 활동한다. 미국에 먼저 온 의사남편하고는 우여곡절 끝에 2000년 다시 재회해 가정을 꾸리게 된다. 그리고 그 때부터 그동안 잊고 살았던 의료선교의 꿈을 또 다시 서서히 끄집어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3년여의 세월이 흐르던 동안까지 의료선교를 시작하지 못하고 있던 2003년 12월 유방암 진단을 받게 된다. 다행히 초기라 20일 만에 수술을 하고 항암치료를 받아 암을 치유하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생명을 주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2005년 1월 드디어 의료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는 일을 시작하게 된다.
그는 “철모르는 어린 나이에 결혼도 안하고 주의 종이 되겠다고 기도한 후 27년간의 전도사의 일로 나의 사명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가정으로 돌아간 후 암이란 병을 통해 의료선교의 사명을 일깨워주는 음성을 들었다. 그래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운명처럼 다가온 의료 선교에 나서게 됐다”고 말한다.
■새 생명을 주셨으니…
그는 유방암 치료를 받고는 새 생명을 주셨다는 의미에서 ‘새 생명 선교회’라는 모임을 시작했다. 2005년 1월 강혜신 내과에서 6명의 암 환자들과 첫 모임을 가졌다. 그 후 내년 1월 창립 10주년을 앞두고 있는 현재까지 꾸준하게 암 환자들을 위한 각종 사역을 하고 있다. 그가 이 선교회를 이끌며 주로 하고 있는 일은 암 선고를 받고 낙심과 절망 가운데 있는 한인들에게 위로와 소망이 되고자 노력하며, 수술 후 항암 치류를 이길 수 있는 마음과 대체의학의 정보교환 및 경험담 나누는 체험 사례 모임을 이끌고 있다.
또한 완치 후 재발하지 않도록 식생활 개선과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는 방법, 암 환자나 병원의 심방을 통해 믿음으로 이길 수 있는 희망과 용기를 갖도록 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말기 암 환자들에게 천국의 소망을 주고자 하는 신앙과 기도를 통한 호스피스 사역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매월 정기모임을 갖고 매주 암 환자들을 위한 기도 예배를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새 생명 선교회의 이름으로 지난 2007년부터는 암 환자를 위한 사랑의 음악회를 연례행사로 하고 있다. 설립기념 예배, 음악치료 야유회, 식생활 건강세미나, 추수감사절 모임, 암 투병기 수기 공모, 회원 자녀 장학금 전달 등도 하고 있다.
그는 “현재 등록된 회원은 60명 정도, 그 가운데 15-20여 명은 자주 나오는 회원들이다. 그들 중에는 이미 암을 극복한 이들도 있지만 여전히 죽음의 위기를 앞두고 삶의 한 가닥 희망으로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암 환자 모임은 암으로 절망가운데 있는 회원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고, 수술 후 암 치료에 대한 정보와 경험담 나누기, 재발방지를 위한 식생활과 평안 유지법, 환자 심방, 말기 암 환자에게 소망을 주는 호스피스 사역 등을 하고 있다”고 거듭 강조한다.
■시련이 다시 찾아오고
그는 10여 년 동안 암 환자들의 모임을 하다 보니 참으로 안타까운 사연이 너무 많다고 한다. 사연이 너무 많아 다 말할 수 없지만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연락하지 않고 홀로 암 치료를 받다가 숨져서 무연고 장례를 한 할아버지가 떠오른다고.
암을 극복하고 한국에 있는 언니한테 가서 살다가 다시 암이 재발돼 미국으로 돌아와 투병하다가 숨졌지만 언니의 형편이 어려워, 대신 장례를 해 준 할머니는 너무 가족처럼 지내서 더욱 슬픔이 더 했다고 한다. 재혼한 뒤 암이 재발하자 집에서 폭행당하고 내 쫓기다시피 해 방황을 하면서 암 치료를 하던 아주머니는 어려운 상황을 잘 극복하고 암 역시 이겨내 그나마 지금은 편안하게 살고 있단다. 이 외에도 렌트비가 없어 홈리스 센터를 전전하며 암 치료를 받다가 하늘나라로 간 회원 등 소외되고 어려움을 당하며 숨진 암 환자들이 너무 많다고 회상한다.
그에게 가장 가슴 아픈 일은 2007년 한 해 동안 무려 13명의 암 환자 회원들이 숨진 것이라 한다. 가족 같은 회원들을 너무 많이 하늘나라로 보내면서 “과연, 내가 이 일을 더 해야 할까?”하는 고민으로 수많은 날들을 보낸 적도 있었다고.
무엇보다 그 에게 찾아온 가장 큰 시련은 어느 날 갑자기 오랜만에 해후해서 잘 지내고 있던 남편을 잃은 것이다.
2009년 8월 의료선교의 정신적 지주이자 동반자였던 남편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영원히 의료선교가 필요 없는 하늘나라고 간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0년에는 왼발이 부러져 수술을 해야 했는데 한 달 뒤에는 왼발마저 다치는 사고로 너싱홈에 입원해야 하는 시련이 계속 됐다. 지속되는 시련 속에 그는 낙심과 좌절로 의료선교를 포기하려는 결심을 했다. 하지만 ‘포기하자’와 ‘계속 하자’는 엇갈리는 자신의 생각을 수차례 반복하다가 결국은 “그래도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는 “암전문의인 남편이 갑자기 죽고, 나의 육체적인 고통도 뒤따르면서 낙심과 좌절을 하고 있는 가운데 이런 고통이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에 의지하라는 메시지라 생각하고 또 다시 힘을 얻어 암 환자 모임을 계속 이끌기로 결심하게 됐다”고 말한다.
그래도, 내가 해야 할 일은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 16장26절)”
그는 암 진단을 받으면 꼭 병원의 지시를 받고, 의사를 믿는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암을 치료해야 효과가 좋다고 강조한다. 암 진단을 받고도 불안해하며 포기하는 심정으로 수술을 안 받는 사람, 수술을 받고도 항암 치료를 못 받아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사람, 심지어 의사를 믿지 못해 항암치료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접할 때마다 너무 안타깝고 아쉽기 때문이란다. 그는 건강비결로 기쁘고, 즐겁게 그러면서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면 모두가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며 긍정적인 생각의 중요함을 건강의 척도로 꼽았다.
행복은 자신의 어떤 환경에 있어도 생각에 따라 달라지는 것처럼 행복 역시 자신이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한다. 인생이란 하나님의 말씀처럼 사는 것이라 말하는 그는 의료 선교는 “사람들은 육신의 병보다 생각의 병이 더 많기 때문에 관심 갖고, 나누어 주고, 함께 하는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래서 그는 암으로 투병중인 환자들, 암을 이겨내고 건강하게 지내고 있는 환자들과 함께 하는 삶이 바로 자신의 사명임을 깨닫고 있다고 한다. 그에게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 바로 의료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그는 “내가 평생 해야 할 일은 의료선교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암환자들이 치료를 받는 동안만이라도 거할 수 있는 센터와 회원들이 아무 때나 모여 기도와 찬양을 할 수 있는 모임의 장소를 구입하는 것이 앞으로의 비전이다. 그동안 도움을 주신 한인들에게 감사한다.
앞으로도 보다 더한 후원의 손길이 있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암환자 모임을 운영하는 데 힘든 경제적 부담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그는 “내가 할 일은 암환자들이 힘든 암과의 전쟁에서 포기하지 않고 싸우듯이 그들을 위해 의료선교 사명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꿋꿋하게 말한다.<연창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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