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용주<코네티컷 토요한국학교 교장>
비오는 어느 날 오후였다. 지루해하는 아이들을 위해 선생님은 재미있는 활동을 하나 생각해냈다. 하얀 종이 위에 그 반 아이들 모두에게 서로의 장점을 하나씩 적어 주도록 했던 것이다. 성격이 수줍고 자신은 항상 외톨이라고 생각했던 한 소년은 그날 같은 반 친구들이 적어 준 자기 장점들을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친구들이 자신을 꽤 괜찮은 아이로 봐 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에는 더 이상 자기는 외톨박이가 아니라고 느끼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당시 초등학교 학생이었던 그 소년은 건장한 청년으로 자라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쟁터에 나갔다가 그만 전사하고 말았다. 그의 유품이 가족들에게 전해졌는데 낡고 꾸겨진 종이 한 장이 발견되었다. 어린 시절 친구들이 써주었던 자신의 장점들이 적힌 그 종이 한 장을 그는 죽기 직전까지 보물처럼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전에 누군가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소년이 누군지도 알 수 없고 이 이야기가 얼마나 사실적 근거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로부터 자신의 장점을 전해 듣는 것은 큰 격려와 힘이 된다는 이야기의 교훈만큼은 분명하다. 어린 아이들뿐 아니라 우리 어른 네들도 자신의 장점을 인정받는 체험은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경험이 될 수도 있다.
몇 해 전부터 오랜 지인들이 모여 생일을 축하해주는 모임을 갖고 있다. 우리는 생일을 맞이한 친구를 위해 따뜻한 밥 한끼를 대접한다. 그리고 그 친구의 장점을 하나씩 돌아가면서 이야기 해준다. 누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적어 보내주기도 한다. 자신이 생각하지도 못한 장점을 다른 친구가 이야기 해줄 때 어떤 친구는 눈물까지 글썽일 때가 있다. 자신은 단점으로 생각했던 걸 다른 이는 장점으로 봐 준다는 사실이 고맙다고도 이야기 한다.
서로의 장점에 주목하다보면 어느새 각자의 단점은 어디론가 숨어버리는 듯하다. 값비싼 선물이 오고 가지는 않지만 그 무엇보다도 귀중한 생일 선물을 받았다고 좋아하며 평생 잊지 못할 거라고들 한다. 우리 모임에서 이런 시간을 갖자고 처음으로 제안한 나도 뿌듯하다. 처음에는 쑥스럽다며 어색해 하던 친구들도 이제는 다른 이들의 장점을 일부러 생각해 보는 좋은 버릇이 생겼다며 흡족해 하기도 한다.
내가 장점에 주목하는 일에 남다른 관심을 가지게 된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난생 처음으로 팀 리더가 되어 어떤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의 일이다. 프로젝트를 잘해 보려고 의욕은 넘쳤지만 잘 따라오지 못하는 팀 멤버들이 모두 원망스럽기만 했다. 이 사람은 이래서 마음에 안 들고 저 사람은 저래서 마음에 안찼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 따져보니 결국 팀원 전체 중 한사람도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큰 프로젝트를 결국 나 혼자 하다 보니 잘될 리가 만무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리더로서 나의 크나 큰 잘못을 깨닫게 되었다. 각 팀원들의 단점에 신경이 곤두서서 그들의 장점을 보지 못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일부러 우리 팀원들의 장점을 하나씩 하나씩 찾아보기 시작했다. 나부터 내가 가진 장점이 무엇인지 적어보았다. 그렇게 장점에 주목하기 시작하니까 그토록 미웠던 팀원들이 거짓말처럼 예뻐 보이는 것이 아닌가?
칭찬에 인색했던 내가 그들의 장점이 무엇인지 일부러 집어보기 시작하면서 부터는 다른 이들을 향한 칭찬이 끊이지 않게 되었다. 분명히 똑같은 사람들인데 그들을 주목했던 나의 시선이 단점에서 장점으로 바뀌고 나니 어느새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일을 경험한 후에 나는 사람들이 싫어지고 미워질 때 그들의 장점을 적어보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내가 어떤 사람에게 섭섭하다고 느끼는 그 순간에 나는 노트북을 꺼내어 그 사람이 나에게 베풀었던 호의들을 꼼꼼히 기억하여 적어보기도 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부정적인 감정이 어느새 사라지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생기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유대인 부모들은 아이가 수학을 잘하고 영어를 못할 경우 아이가 잘하는 수학을 과외 시킨다고 한다. 보통은 수학은 잘하기 때문에 신경을 안 쓰고 못하는 영어에 집중하는 게 당연한 것 같지만 때로는 유대인처럼 단점보다는 장점에 초점을 두는 게 더욱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에게 서툰 장점에 주목하는 일도 연습이 필요하다. 좀 어색하더라도 지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서로의 장점을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오늘 당장 노트북을 꺼내어 나와 같은 배를 타고 있는 다른 이들의 장점을 하나하나 적어보면 어떨까? 내면에서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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