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하 바이얼린과 활의 제작, 수리 장인이 바이얼린의 파트별 명칭과 역할을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시간 흐를수록 아름다운 소리내는 악기...오래살게 해야죠”
세계적 명장 니고시안으로부터 기술 전수
1990년 ‘미국 바이얼린 제작자 인명록’에 등재
뉴욕필 악장 외 강효.김진 교수 등 단골고객
뉴욕에서 현악기를 전공한 사람치고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각국의 명장과 온갖 명기가 모여 있는 뉴욕 맨하탄에서 바이얼린과 같은 현악기와 활의 제작과 수리의 장인으로 외길인생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바이얼린을 꼭 닮은 노신사다. 75세 노익장인 김진하 주인공의 인생이야기를 들어본다.
■우연한 인연이 운명으로
김진하(미국명 John C, Kim))씨는 1939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고향인 그 곳에서 쭉 자라면서 계성고교와 경북대 경영학과를 졸업했고, ROTC 1기로 군대생활을 했다. 그렇게 사는 동안 음악을 좋아했고 노래하는 걸 즐겼다. 고교시절엔 노래하는 게 좋아 합창단으로 활동했다. 대구 미 8군 교회에서는 빼어난 노래솜씨로 성가대에서 찬양을 했다. 그 당시만 해도 성가단원은 보수를 받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음악을 전공하거나 악기를 배워 연주한 적은 전혀 없었다. 그런 그가 현악기 제작과 수리의 장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우연한 인연 때문이었다.
그는 1972년 청운의 꿈을 안고 뉴저지로 유학을 왔지만 1년 동안 공부를 하다 사업을 하기 위해 학업을 접었다. 그 때부터 잡화가게, 그로서리 등을 운영하며 힘든 날들을 보내야 했다. 그러던 중 1979년 우연히 자신의 길을 찾고, 운명마저 바꿔놓는 계기가 찾아왔다. 단골손님인 한 미국인이 그에게 바이얼린 제작을 배워볼 것을 권유했기 때문이다.
그는 선뜻 따라나섰고, 처음간 곳은 ‘스트라디바리우스’ 명품악기를 전문으로 다루는 바이얼린 제작과 수리 전문점이었다. 그곳에서 스승으로 세계적인 바이얼린 제작과 수리분야의 명장인 바하칸 니고시안(Vahakan Nigogcsian)도 만났다. 그렇게 그는 현악기 제작과 수리의 명장을 만나 외길인생의 첫 걸음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는 “너무 힘든 날들을 보내면서 뭔가 다른 일을 찾고 있을 때 바이얼린 제작을 권유한 미국인을 만나 나의 운명이 바뀌게 됐다. 그 때부터 현재까지 바이얼린과 활을 벗 삼아 살고 있는 지금은 참 행복하다”고 말한다.
■바이얼린 제작자 인명부에 등재
그의 배움은 1979년 10월부터 맨하탄 57가 바이얼린 제작, 수리 전문점에서 시작됐다. 그곳에서 세계적인 명장 바하칸 니고시안(Vahakan Nigogcsian)을 스승으로 삼고 4년 동안 개인적으로 가르침을 받았다. 그는 근면, 성실과 열정으로 바이얼린 제작과 수리에 관한 기술을 전수받았다. 손재주와 눈썰미가 남달랐던 그는 남들보다 빠른 시일에 기술 전수를 마칠 수 있었고 그곳에서 스트라디바리우스 같은 명품 악기를 다루어보며 경험을 축적했다.
그는 1987년 바이얼린뿐 아니라 활의 제작과 수리를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샬코(Salchow)사를 찾아간다. 샬코사는 현악기의 미국 메카로 영국의 ‘Hill’사와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의 현악기를 켜는 활(bow)을 제작, 수리하는 곳이다. 그곳에서 샬코사의 창업주인 윌리엄 샬코와 만나 오랜 동안 인연을 맺고 일을 했다. 아쉽게 샬코는 지난 5월 87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샬코의 손자들이 운영하는 그곳에서 월, 수, 금 파타임으로 계속 일을 하고 있다.
그는 1990년 초까지는 바이얼린을 제작했지만 그 후부터는 악기제작보다는 바이얼린 수리에 전념하며 활의 제작과 수리는 함께 하고 있다. 그는 1990년 초 ‘미국의 바이얼린 제작자 인명록’에 등재됐다. 그 당시 인명록에는 ‘kim chin H. 1939년생 바이얼린과 수대의 현악기 제작자‘로 기록되어 있다.
그렇게 그는 그 때부터 지금까지 35년 동안 바이얼린과 활의 제작과 수리의 장인으로서 외길 인생을 걷고 있는 것이다. 그는 “최소 10년 정도의 경험을 쌓으면 제대로 된 바이얼린을 제작할 수 있다. 하지만 제작하는 데는 200-250시간이나 걸리기 때문에 다른 일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1990년 중반부터는 제작보다는 악기 수리에 더 열중하고 있다”고 말한다.
■악기 수리는 의사의 의술 같은 것
그는 오래된 명품 악기들이 자연적으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미세한 상처로 자신의 소리를 잃어갈 때 제 소리를 찾아주거나 희귀한 명품으로 남을 수 있도록 생명을 연장시켜 주는 일을 하고 있다. 바이얼린의 사운드 포스트가 작은 위치변화로 소리차이가 나거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깨짐이나 접합부분이 조금이라도 균열이 생겨서 제 소리를 내지 못할 때 그 악기 고유의 소리를 찾아주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제 소리를 찾아주는 작업을 의사가 사람의 인체를 수술하는 것에 비유한다. 바이얼린을 수리할 때 작은 부분도 놓치지 않고 세심하고 꼼꼼하게 살피며 어느 것 하나 소홀히 여길 수 없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그는 악기 수리를 악기 의사라고 여기며 끊임없이 악기의 자기 소리와 제대로 된 모습을 찾아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바이얼린, 비올라, 첼로 등 수십만 달러 이상의 매겨지는 스트라디바리와 같은 진품 악기를 갖고 있는 연주자들이 그 악기나 활이 고장 나면 그를 찾아오고 있다. 그만큼 그의 악기수리 명성이 널리 알려져 있고, 연륜의 명의가 병을 잘 고치듯이 외길인생을 살고 있는 그가 악기의 장인으로서의 자리매김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악기수리는 손재주, 눈썰미 등 솜씨도 있어야 하지만 사람의 귀중한 생명을 다루듯 천천히 세밀하게 인내심을 갖고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나를 찾는 사람들
뉴욕의 줄리아드, 맨하탄, 메네스 음대 등에서 현악기를 배운 한국 유학생과 한인 학생들은 예전이나 지금도 그를 찾아온다. 줄리아드와 예일대학의 강효교수, 메네스 음대의 김진교수 그리고 첼로를 전공한 한양대 박경옥 교수 등 미국과 한국에서 활동하는 많은 교수들과는 여전히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뉴욕 필하모닉 교향악단의 미셀 김악장과 리사김 바이얼린 파트장 등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단골고객이다. 럿거스와 프리스턴의 교수들과 학생들도 그의 스태튼아일랜드 자택에 마련된 작업실로 악기를 수리하러 찾고 있다. 그리고 이름도 알 수 없는 수많은 연주가들도 그를 찾아와 악기를 수리하고 고마움을 표하고 있다.
한국에서 소문을 듣고 와서 바이얼린 제작과 수리를 배우고 간 사람들도 여럿이 있다. 이렇듯 고집스런 장인의 외길을 걸으며 이 분야에서 최고의 솜씨를 갖고 있는 그를 찾고 있는 것이다.
그는 뉴욕 필하모닉 글렌딕테로 전 악장과도 인연이 깊다. 그가 악장시절 제일 좋아하는 활을 부러뜨린 것을 완벽하게 수리해준 뒤, 단골고객이 됐기 때문이다. 그는 글렌딕테로 악장이 모든 단원 앞에서 그가 완벽하게 수리해준 것을 칭찬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참으로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한국에서 뉴욕으로 유학 온 학생들 가운데 소리가 좋은 바이얼린을 갖고는 있지만 수천달러에 불과한 악기를 많은 돈을 주고 샀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매우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웠다고 한다.
그는 “35년 이상 악기를 제작하고 수리하면서 수많은 연주가들을 만나고 특히 한국 사람들 중에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특별한 인연들을 많이 맺었다.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보람 있었고 그들이 믿고 찾아주며 칭찬으로 입소문을 내준 데 대해 감사하며 살고 있다”고 말한다.
■영원한 나의 반려자
75세 노익장인 그는 교회, 성가대원, 고교동창과 ROTC 등 자신가의 인연을 맺은 좋은 친구들과 골프를 즐기면서 건강을 지키고 있다. 또한 뉴저지 엘리자베스한인교회 장로이자 최고참 성가대원이며 뉴저지 장로성가대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무병장수 하는 것이 행복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남은여생에 가장 정성을 기울여야 하는 대상으로 아내를 꼽는다. 바이얼린의 제작과 수리의 길을 걸으면서 힘든 상황과 맞닥뜨릴 때마다 아내의 조력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초창기 이 일을 시작했을 때도 간호사(RN)로 30년 생활하다 은퇴한 아내가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었기에 할 수 있었다고 고마워한다. 오직 자신만 믿고 그리고 자신이 하는 일은 뭐든지 응원해주고 따라준 아내가 있었기에 외길인생을 걸을 수 있었다고 자랑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명품악기처럼 살면 살수록 아내를 자랑하게 된다며 다정한 미소를 지는 그에게서 진정 ‘삶의 장인’의 모습도 엿볼 수가 있었다.<연창흠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