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선 <전 커네티컷한인회장)>
지난여름, 근육이 굳어가는 ‘근위축성 축색 경화증’(일명 루게릭병)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 기부를 활성화하기 위해 시작된 ‘아이스 버킷 챌린지’ 캠페인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폭발적인 관심을 모았었다. 유명인들이 앞을 다투어 동참함으로써 루게릭 환우를 비롯한 고통 중에 있는 어려운 이웃에 대한 관심이 제고되는 큰 계기가 되었다. 천문학적으로 모금된 돈의 재정 투명성에 논란이 많았지만 얼음물을 뒤집어 쓴 참가자들의 환한 웃음은 한여름의 무더위를 식혀주던 유쾌한 기억 중 하나로 남아있다.
그리고 지난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 이후 SNS상에는 감사 릴레이가 유행처럼 번졌었다. 지명 받은 이들이 각자의 삶을 돌아보며 한 줄 한 줄 써내려간 감사의 고백을 읽고 공감하며, 만약 나에게 그 차례가 돌아온다면 누구에게 어떤 감사를 전해야 할 지 생각해 보곤 했었다. 그런데 막상 마음으로 의지 하던 지인에게 갑자기 감사 릴레이를 이어가라는 지목을 받았을 때 선뜻 써내려갈 수 가 없었다. 그동안 많은 사람이 지나갔고, 더 많은 사람을 지나쳐 왔다.
그 중에는 고마운 사람, 미운 사람, 내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었던 사람 , 간절한 내 이야기를 지나가는 이야기로 웃어넘긴 사람, 어수룩한 나를 이용했던 사람, 그리고 나보다 힘이 없는 이들과 나로부터 이용당했음을 알고 난처한 얼굴로 외면했던 사람까지…! 오랜 세월동안 지나쳐간 사람들 마음속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지 생각하며, 숙제 받은 아이의 마음이 되어 가슴에 남아 있는 감사를 천천히 풀어보며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었다.
그리운 것은 모두 등 뒤에 있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받은 사랑은 늘 등 뒤에 있는 것 같다. 짧지 않은 세월동안 내가 겪은 희로애락을 모두 풀어 놓아도 아직 한 폭의 그림조차 그려내지 못하고 심지어 내가 무엇을 그렸는지, 아니 무슨 색깔을 사랑했는지 조차도 희미하기만 하다. 힘들게 얻어낸 성취를 만끽한 시간이 있었고 차라리 허망하여 소리 내 울지도 못했던 시간들이며, 일순간에 모든 것을 잊게 한 내려놓는 순간들이 그저 연결되지 않은 작은 점으로 남아있다, 그 애증의 시간들은 촛농처럼 흔적을 남기며 지금의 변변치 않은 나를 이루고 있으나, 다시 돌아 갈 수 없으니 더욱 아쉽고 그리운 시간이다.
누군가 나에게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때는 언제였냐고 묻는다면 선뜻 지금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시간을 되돌아보면 아름답지 않은 것이 어디 있을까만, 고마운 순간들이 살아가는데 큰 위안이었음을 고백한다. 그래서 화양연화(花樣年華)라는 글귀가 뒤돌아서서 ‘당신은 제대로 잘 살고 있느냐’고 되묻고 있는 듯하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우리 삶의 여정 안에 화양연화(花樣年華)는 지금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눈이 띄게 숲이 비어가고, 그 사이로 부는 바람이 제법 차갑다. 이름 부를 수 없는 그 모든 것이 그리움으로 남아 바람 끝에 머무를 것이다.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머무르고 싶으면 또 머무르는 대로 조용히 바라볼 일이다. 세상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작은 것에 소홀하지 말아야겠다. 더불어 ‘아이스 버킷 챌린지’ 나 ‘감사 릴레이’ 등이 잠시 지나가는 유행이 아니라 한번쯤 그들을 이해하고 후원하며 자신의 현재를 돌아보는 깊은 성찰의 기회가 되었기를 바란다. 무상의 은총을 담는 그릇이 다름 아닌 감사의 마음을 안고 사는 것임을 깨닫고, 주위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따뜻한 하루가 되었으면 한다. 이 감사의 계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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