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선 <수필가>
오늘은 남편이 잔디를 깎고 집 뜰과 주변을 정돈하는 날이다. 점심시간을 지나고 부지런히 가게 문을 나서는데 남편의 꽁무니에 갑자기 소나기가 따라 붙는다. 오전 까지만 해도 화창하던 날씨가 오락가락 몇 차례 변덕을 부리더니 살랑대는 바람과 햇살이 다시 찾아와 남편의 구원투수가 되어 준다. 남편의 차가 홀연히 떠나간 가게 주차장에 어린 딸아이와 함께 차에서 막 내린 손님 부부가 가게 안에 있는 날 보고는 빨리 나와 보라고 정겨운 손짓을 한다.
맑게 게인 하늘 저편에 일곱 색깔 무지개가 커다랗게 반원형을 그리며 부채같이 펼쳐 있다. 참 오랜만에 만나 보는 반가운 무지개다. 나도 그들과 같이 서서 무지개 너머 저 끝자락에 무수히 존재 할 것 같은 색깔 없는 선을 마음에 그려 넣으며 하늘에서 떼어낸 무지개를 나의 스마트폰에도 곱게 저장해 두었다.
무지개를 보면 왠지 좋은 소식이 전해 올 것 같은 설렘이 일렁인다. 무지개다리 건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룰 수 있는 꿈이 몰래 숨어 있는 것만 같았다. 한 점 물방울에 불과한 물체가 햇빛에 투영되어 굴절이 되고 또 굴절의 각도마다 다른 색깔을 만들어 낸 아름다운 무지개는 비가 내린 뒤에 맑은 하늘에서만 볼 수 있다.
고생이 끝나면 그 보람으로 즐거움이 있게 된다는 뜻으로 "고진감래"라는 고사성어가 떠오른다. 젖은 날개를 털어 내며 새 한마리가 시공을 가르고 푸드득 달아난다. 나도 잠시 일상을 이탈한 자리에서 비상하지 못 하고 파닥거리는 현실로 되돌아온다. 날마다 똑같은 일로 즐거운 때도 있었지만 요즘은 달리던 열차에서 잠시 내리고 싶은 무료함이 자주 찾아온다.
시간이 끌고 간 젊음이 슬프게 하고 소멸해 버린 꿈들이 아쉬워 우울해 지기도 한다. 변하고 이미 지나간 것이 시간 뿐 아니라 내가 나에게서 너무 멀리 떠나 있는 모습에 홀로 분노한다. 그래도 그 자리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다시 평화가 찾아오는 것이 은혜라고 깨닫게 될 때 내 안에 무지개는 다시 뜬다.
원래 무지개는 언약이다. 인류의 대홍수 후에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겠다는 약속의 증표로 하늘에서 보내준 특별한 선물이다. 어둠에 마침표를 찍고, 불신의 자리에서 일어나고, 모든 것이 다시 살아나는 호흡의 시작이다. 하늘이 푸르고 빛이 머물러 있는 동안에는 영원은 항상 그 안에 존재하고 어두운 시간이 내게와 부딪쳐도 아침을 재촉하는 나팔이 울린다는 소망이 연약한 자리를 지키게 한다.
세계의 한 모퉁이에서 수고 없이 잠들지 아니하고 시시로 사랑과 자비의 손을 펼치며 평화만을 추구하다 흙으로 돌아가리라고 수 천 번 외우는 남편의 기도도 결실의 계절에 언약으로 이루어지길 엎드려 두 손 모은다. 이제는 낙엽의 연민도 거두어들일 때가 된 것 같다.
"낙엽이나 철새 또는 놓친 세월에 연민하지 마세요" 고은 시인의 글을 읽으며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번민을 멈추고 가을과의 이별을 준비한다. 시드럭부드럭 나뭇잎들은 맨땅에 뒹굴고 벌거벗는 나목위에 세찬 바람이 발길질 하며 남은 세월을 서럽게 밀어낸다. 무정한 밤에 먼데 개짓는 소리가 허공에 매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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