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LA 다운타운 자바시장은 멕시코 마약자금 돈세탁 사건으로 큰 상처를 입었다. 연방정부 수사당국은 엄청난 수사 인력을 투입해 자바시장을 발칵 뒤집어 놓으면서 무려 1억달러라는 현금을 압류해갔다. 이 사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마치 정해진 각본처럼 당국은 다운타운 패션 디스트릭에 ‘특정지역 수사권’(GTO: Geographic Targeting Order) 발동이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강력한 현금거래 규제 조치를 내렸다.
수사관들조차 엄청난 현금다발에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였다고 하니 이번 사건의 규모가 어땠는지 쉽게 가늠할 수 있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기 속에서 분투하던 한인 의류업체들은 이 사건으로 더욱 숨쉬기가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됐지만, 이 보다 더 가슴 아픈 것은 아메리칸 드림을 위해 불철주야 시장과 공장을 오가며 열심히 일만 하던 대다수 선량한 한인 의류업체들이 졸지에 불법을 저지른 것처럼 오명을 뒤집어 쓴 것이었다.
자바시장이 어떤 곳인가. 1970년대 후반 유대인들이 움켜쥐고 있던 철옹성 같은 시장을 오로지 근면과 성실로 뚫어가며 오늘의 성공신화를 일궈낸 40여년의 피와 땀의 결정판이 바로 이곳이다. 그리고 자바가 있었기에 오늘의 거대한 한인 경제권을 이룰 수 있었고, 리저널 뱅크를 꿈꾸는 한인은행들이 잇달아 탄생할 수 있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이번 사건으로 타격을 받은 자바의 현실은 고스란히 한인타운 경제에 반영되고 있다. 얼마 전 만난 한 일식당 업주는 요즘 다운타운 손님들이 부쩍 줄었다며, 한창 바빠야 할 저녁시간에 식당이 텅 빈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이에 대해 다운타운에서 의류업을 크게 하고 있는 전 단체장은 “경기가 나쁜 탓도 있지만, 그 보다는 이 사건으로 마음의 여유가 없어져 사업에만 전념하고 식사 같은 것은 간단히 때우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말로 답을 대신했다. 이번 사태가 불러온 심리적인 영향이 그만큼 컸다는 얘기다.
이번 사건은 아직 진행형이다. 연방 수사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는 업체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도 관심사지만, 대다수 한인업체들은 180일로 규정된 GTO가 끝나면 다음 단계의 무엇인가가 또다시 뒤따르지 않을까 하는 데 더욱 촉각을 세우고 있다.
어쩌면 다운타운 보다 앞서 샌디에고 남쪽 샌이시드로 지역에 발령된 GTO의 결과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달 초 한인 은행권과 경제단체들이 자발적으로 긴급 모임을 갖고 이번 사태를 계기로 근본적인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를 거꾸로 보면 앞에서 언급했듯이 자바시장이 금융권과 단체, 비즈니스 등 한인경제 곳곳에 미치고 있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반증으로 이번 일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의미도 된다.
아직 구체적인 대책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자바시장의 거래 투명화를 유도하고, 유사사건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들의 움직임을 주목하는 이유는 체계적인 대응 시스템 구축 여부 때문이다.
그동안 한인사회는 가지고 있는 역량에 비해 이를 조직화하는 데는 미흡한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생기면 예방이 아닌 수습에 무게를 두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 모임을 통해 각 경제단체와 기관들이 각기 역할과 기능을 명확히 구분하고, 사안에 따라 대응할 수 있는 유기적인 협조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향후 경제관련 이슈에서 능동적인 대응을 펼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 이는 다른 성격의 기관과 단체에도 적지 않은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불러올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기회에 관련 단체와 기관들은 구체적인 전략과 시스템을 내놓아야 한다. 서로의 성격과 전문성을 극대화하고 조직화해 시너지 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잘못된 관행을 과감히 없애고, 경제활동을 투명하게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한인사회에도 유익한 일이다. 비록 돈세탁 사건은 자바에 깊은 상처를 남겼지만, 이를 교훈삼아 자바시장은 물론 한인사회가 힘을 모은다면 새로운 차원의 도약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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