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과 11월 두 달에 걸쳐서 우리 교회의 꽃밭을 가득하게 채웠던 아름다운 국화꽃들이 갑자기 찾아 온 한파로 화려했던 예쁜 꽃잎을 접고 머리를 숙이며 한 해를 마감하려고 한다. 나는 꽃바구니를 들고 꽃밭에 들어가서 내년에 다시 피울 꽃씨들을 받기위해 꽃 봉우리를 가위로 하나씩 잘라서 바구니에 담았다.
해마다 이 때 쯤 이면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오늘따라 한 송이의 꽃 봉우리를 가위로 자를 때면 마치 국화꽃의 살을 잘라내기라도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안쓰럽고 짠해진다. 어찌 국화꽃뿐이랴. 맨드라미꽃이며 노란 데이지들도 씨앗만 당그라니 남기고 사라져 간다. 꽃들도 사라져갈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친지들도 한 사람씩 내 주위를 떠나가고 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 세상을 살다가 죽는 것은 당연한 숙명이거늘, 나 자신도 이 꽃들처럼 언젠가는 조용히 사라져 갈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니 마음이 숙연해진다.
이렇게 꽃밭 뜨락에 낙엽이 수북이 쌓이고, 차갑고 스산한 초겨울 바람이 겨드랑이를 파고들어 와 몸을 움츠리며 따스한 햇볕을 쪼이고 있노라면, 잊지 못할 그리운 사람이 보고 싶어진다. 26년 전 직장을 다니면서 노후를 염려해서 부업을 찾고 있던 중 우연한 기회에 작은 마켓을 사서 운영하게 되었다. 매일 10시간 이상씩 가게에서 일해야 하는 터라 지루한 시간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던 끝에,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고객들에게 들려주기로 했다. 꽤 성능이 좋은 오디오 시스템을 설치해 놓고 클래식이며 영화음악, 뮤지컬 등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주민의 대부분이 중산층 백인, 더욱이 은퇴한 사람들이 살고 있어서 내가 이 분들에게 드리는 음악들을 그분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백발에 얼굴이 잘생긴 한 백인 노인이 찾아왔다. 그는 에디 라는 전직 고교 교장인 총각 할아버지였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 음악을 좋아 하시나 봅니다. 어떤 음악을 좋아 하십니까?”라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그에게 취미로 음악을 즐긴다고 말해 주었는데 때마침 스피커에서 내가 좋아하는 리차드 클레이드만의 피아노곡이 흐르고 있었다. 클레이드만의 피아노곡이 끝나고 벤 크레이번의 피아노곡을 그에게 들려주었다. 크레이번의 곡을 들으면서 우리는 음악에 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에디의 해박한 음악 해설을 듣고 그의 훌륭한 음악 지식에 놀랐다. 이후 우리는 벤 크레이번의 피아노곡들을 함께 즐겨 듣곤 했었다.
꽃밭 앞에 세워 놓은 나의 차의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차속의 오디오로부터 벤 크레이번의 피아노 곡들을 듣는다.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나의 가슴속을 파고든다. 언제나 따뜻한 사랑으로 인생의 스승처럼 나를 보살펴 주었던 에디 선생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가버린 세월의 아쉬움만이 가슴에 가득히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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