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랑, 딸랑. 딸랑, 딸랑.”
또 그 계절이다. 딸랑대며 내 속을 불편한 죄책감 같은 것에 몰아넣는 바로 그 계절 말이다. ‘추운 날씨 핑계 대고 죽치고 집 안에 박혀 있어야지,’ 하며 맘 먹어도 하루 이틀이지 빵도 사야하고 약국도 가야 하니 겨우내 구겨박혀 있을 순 없다. 식품점, 약국 앞엔 으레 종을 흔들어 대는 사람이 있다. 그 딸랑대는 소리를 못 들은 척, 자선냄비는 못 본 척 서둘러 지나려면 뒤꼭지가 가렵다.
“안녕하세요? 어떻게 지내세요?” 친절한 인사말에 더 고개 숙이는 나. 그럼에도 지갑은 열지 않고 도망치는 나. 그런 내 등에 대고 더 세차게 종 흔드는 그.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복 많이 받으세요” 휘익 불어오는 바람에 쓸려온 그의 목소리가 허둥지둥 도망치는 내 귓전을 때려댄다. 그래도 못 들은 양 나는 내뺀다.
나로 말하자면 바람 쌩쌩 부는 겨울날, 구세군의 자선냄비를, 또 그 옆에서 종을 치고 있는 사람을 싫어하거나 그들이 사라져 주기를 바랄 정도의 치한은 아니라고 믿는다. 아니, 그와는 반대라고 봐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추운 날 내가 감히 못 하는 일을 하는 그들이 고맙고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큰 것은 사실이다. 단지 그들 옆을 지나면서 돈 한 푼 넣지 않고 가는 내 모습이 초라해서, 왜인지 자꾸 죄인 같은 생각이 들어서, 자선냄비와는 반대쪽으로 얼굴 돌리고, 그러고도 고개는 있는 대로 푹 꺾고 가는 내 모습이 그놈의 냄비 지날 때마다 속상해서다.
그렇다고 지갑 열고 돈을 꺼내자니 그도 꺼림칙하다. 나이 먹고 돈벌이도 없는 주제이니 일 불짜리를 뒤져 찾아야 하는데 그게 없을 가능성 많고, 그렇다고 일 불짜리 아닌 지폐를 선뜻 내 주려면 손이 자꾸 민적거린다. 10불짜리나 20불짜리 제치고 일불짜리 찾아 지갑 뒤지고 있는 내 꼴도 인두겁 쓰고 할 짓은 아닌 것 같다. 그놈의 구세군 딸랑거리는 종소리 들으면 돈에 매달린(?) 파렴치한 내 꼴이 늘 볼썽사나운 생각이 들어 어찌하면 내 맘도 편하고 남 보란 듯 어깨 펴고 잘난듯 돈 집어넣으며 거드름 필 수 있을까 궁리해 본다.
맞다. 해결책 찾았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데…. 하며 은행으로 종종걸음 했다. 일 불짜리 한 다발을 찾았다. 그 뭉치를 핸드백에서 꺼내기 쉬운 곳에 넣고 그 나름으로 동네 가게로 향했다. 그야말로 의기양양해서 말이다. 나도 남들처럼 자선의 대열에 끼련다, 보란 듯이 돈 턱 꺼내 자선냄비속에 탁하고 넣으리라, 뭐 그 비슷한 꿈(?)을 꾸면서.
그런데 종 쳐대는 사람 앞에서 막상 핸드백에 들은 일 불짜리 뭉치 풀어 딱 하나만 끄집어내려니까 손이 시린가(?) 잘 집히질 않는다. 몇 장이 더 딸려 나온다. 다 줘 버리고 손 탁탁 털어도 누가 뭐라하진 않겠지만 그러려니까 다음번 딸랑대는 종소리를 어떻게 견딜 요량인가 하는 염려(?)에 될수록 덜 꺼내기 위해 뒤적거린다. 그런 내 꼴이 한없이 초라한 생각이 들어 황당스럽다. 일불 집어넣고 난척 하려 드는 내 꼴이 추잡스럽기 짝이 없다. 다시 죽을 죄 진 듯 전과 다름없이 고개 푹 숙인 채 가까스로 꺼낸 일 불짜리를 냄비 속에 쑤셔 넣고 도망치듯 피한다.
별일이다. 그놈의 냄비속에 돈을 넣든 안 넣든 죄진 듯한 마음은 여전하질 않는가? 내가 워낙에 수전노라 그런 건가? 난 자선이라는 것과는 번지수나 거리가 먼 인간이라 그런가? 그도 저도 아니면 내 양심이란 게 워낙 일 불짜리 가치도 없이 하도 알량한 때문이라 그런가?
도망치는 내 등에 대고 종 치는 이가 외친다.
“고맙습니다. 복 많이 받으세요.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딸랑, 딸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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