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국제시장’이 미주 한인사회에서도 화제다. 엊그제 LA 코리아타운에 있는 어느 영화관에서 관람했는데 놀란 것이 두가지가 있다. 첫째, 극장이 초만원을 이루어 하루 전에 표를 구해야 할 정도이고 둘째,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다. 미국에서 상영된 한국영화 중 관람객 동원 기록을 세울 것으로 보인다.
‘국제시장’을 본 관람객들은 왜 그처럼 눈물을 흘릴까. 흥남부두 철수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6.25와 피난생활, 서독에 광부와 간호사 파견, 월남 참전, 이산가족 찾기 캠페인 등 한국의 현대사가 배경을 이루고 있으며 그 시대에서 아버지 노릇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던가가 주인공 ‘덕수’의 생애를 통해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특히 50대 이상인 사람들에게는 “아니 이건 내 이야기네” 할 정도로 픽션 아닌 기록영화처럼 느껴진다.
‘덕수’가 동생의 대학학비를 보태기 위해 서독광부를 지원한 1964년 한국의 국민소득은 77달러에 불과 했다. 당시 필리핀 국민소득은 170달러, 태국은 260달러였으니 한국이 얼마나 가난한 나라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수출할 상품이라고는 하나도 없어 광부와 간호원 등 사람을 수출한 것이다. 파독 광부의 월급을 162달러(650 마르크)로 경제기획원이 서독정부와 합의했는데 이는 말단 공무원 봉급의 8배에 준하는 대우였다. 경쟁이 10대1이나 되었고 부산에서 어느 청년이 불합격을 비관하여 자살했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합격자도 무슨 고시나 패스한 것처럼 정부가 신문에 명단을 발표했을 정도였다. LA의 서독광부 출신인 안이준 한미은행 이사(77)는 “광부를 모집하는데 광부를 해본 사람이 없었으며 지원자의 30% 정도가 대학출신이었다”며 “탄광 현장에 가보니 독일인들은 대학졸업자가 2명밖에 없는 것에 놀랐다”고 회고하고 있다.
당시 신문보도에 의하면 박정희대통령이 서독방문에서 감동했던 것은 한국인 광부와 간호원들이 더 많은 송금을 위해 모두 오버타임을 원한다는 이야기를 에르하르트 수상으로부터 들었을 때였다고 한다. 독일정부는 이들의 송금을 담보로 한국정부에 1억5000만 마르크(3,000만달러)를 빌려주어 한국에 처음으로 비료공장이 세워졌다.
‘국제시장’을 둘러싸고 너무 신파조며 보수적이네, 구세대의 자화자찬이네 등등 이념 세대 논쟁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필요이상의 의미를 부여해 정치적 논쟁으로 끌고 가려는 어색한 논쟁이고 이 영화는 할아버지와 손자가 함께 볼 수 있는 국민영화다. “평생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감사함을 전하려고 만든 영화”라고 설명한 윤제균 감독의 말처럼 우리들의 부모세대에 헌사를 바친 작품이다.
사실 우리(50대 이상)는 고생 끝에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우리 부모들의 일생은 너무 고생스러웠다. 전쟁과 피난살이로 찌든 삶을 보낸 배고픈 세대였다. 한번 밖에 없는 삶이므로 일생(一生)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고생만 하다가 끝나버린 삶이다. ‘국제시장’은 내가 부모를 위해 무엇을 했는가를 돌아다보게 해주는 거울역할을 하고 있다. 자신이 불효자처럼 느껴지는 죄책감 때문에 눈물이 더 쏟아진다. 반면 그동안 적절히 평가 받지 못했던 우리 세대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 같아 2세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기도 한 영화다. “이 힘든 풍파를 우리 자식이 아니라 우리가 겪는 게 참 다행이다”라는 덕수의 편지와 마지막 장면의 “아부지,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하는 그의 독백은 우리 세대를 대변하는 압축된 표현이다. 언젠가는 미주 한인 이민과정을 그린 ‘제2의 국제시장’이 나올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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